'내가 여기 왜 왔지?!' 젠장, 산티아고 순례기
걷기 7일차 _ 산솔(Sansol) ▶ 로그로뇨 (Logrono) : 20km
베드버그에 물린 게 확실해졌다. 어제 손목에 붉은 자국이 생겼을 때는 긴가민가했다. 근데 하루 지나고 나서 보니 크게 부풀어올랐다. 약국에 가서 약을 사 먹고, 바르는 약도 샀다. 다행히 많이 가렵지는 않았다.
베드버그까지 물리고... 오늘은 정말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이 고생을 하면서까지 내가 왜 여기를 걷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한 한국인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세례명은 빈센트라고 했다. 처음에는 별 얘기 안 했다. 그냥 한국인이냐고 반갑다고, 그러다가 성당 다니냐고 그래서 성당 다닌다고 서로 반가워했고, 왜 산티아고에 오게 됐냐 등 항상 했던 일반적인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가 더 깊게 얘기를 나누게 됐던 것 같다. 할아버지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정말 눈물, 콧물 흘리면서 걸었다. 누군가는 이곳에 오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하고, 또 그만큼 이 길을 걷는다는 의미가 크구나. 내가 힘들다고 걷기 싫다고 함부로 폄하할 수 없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계속 감사하다고 했으며, 또 계속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의 뜻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한테도 다 뜻이 있어서 여기에 온 것일 것이며, 분명히 끝까지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응원해주셨다.
모든 일의 이유와 의미를 그 순간에 다 알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떤 것은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아, 그래서 이게 이렇게 된거구나.'라고 깨닫게 될 때가 있다. 지금은 내가 여기에 온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분명 다 뜻이 있고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산티아고를 걸으며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빈센트 할아버지다. 단 하루, 그것도 길에서 만나 잠시 대화를 나눴던 것이 전부였지만 나의 산티아고 순례길은 그를 만나기 전후로 확실히 나뉜다. 그를 만나고 나서 힘든 것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전에는 왜 내가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불평만 늘어놓았다면, 그를 만난 후에는 이 길이 쉽지 않은 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재미와 기쁨을 찾기 위해 노력한 것 같다. 사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지치고 힘들었지만 어쨌든 끝까지 걷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고, 다짐이 흔들릴 때면 빈센트 할아버지와의 만남과 대화를 생각하였다. 그것이 길을 걷는데 큰 힘이 되었다.
어제는 일요일이었는데 미사를 못 드렸다. 빈센트 할아버지와 헤어지며 앞으로는 되도록 많은 미사에 참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알베르게에 도착하자마자 미사 시간을 물어봤다. 저녁 7:30에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가 있다고 한다. 같이 동행하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는 혼자 저녁 미사를 드리기 위해 성당으로 갔다. 미사 시간 중 우리 가족의 건강과 빨리 베드버그에서 벗아날 수 있기를, 또 내가 무사히 산티아고까지 갈 수 있기를 기도했다.
미사를 마치고 한국사람들과 중국 뷔페 wok에 갔다. 일주일 동안 함께 한 아롱 언니, 재재 언니와 헤어지는 날이다. 산티아고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 언니들이다. 고맙다. 또다시 길에서 만날 수 있길 빈다.
Q.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매일 미사를 드릴 수 있나요?
산티아고 순례길은 2000년 전 야곱이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파하기 위해 걸었던 길이고 스페인은 천주교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마을마다 성당이 참 많다. 성당의 위치와 미사 시간을 알려주는 어플이 있지만, 나는 알베르게에서 성당 위치와 미사 시간을 물어보았다. 그것이 훨씬 편하고 정확했다. 거의 대부분 마을에서 순례자들을 위한 저녁 미사가 진행된다. 미사가 끝나고 나면 신부님이 직접 찍어주는 도장을 받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