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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래블 Jul 29. 2019

11. 산티아고 순례길, 베드버그에 물리면?

'내가 여기 왜 왔지?!' 젠장, 산티아고 순례기

걷기 8일차 _ 로그로뇨(Logrono) ▶ 나헤라 (Najera) :27.5km     



길의 의미


내가 겪는 고통에 의미가 없다면 멘탈이 더 심하게 흔들리는 법이다.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내가 왜 산티아고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속으로 툴툴거리며, 고개를 숙이고, 스틱을 툭툭 발로 치며 앞으로 걸어갔다. 몸은 베드버그에 물려 울긋불긋했다.     


그러다가 어제 빈센트 할아버지를 만난거다.

나도 이 길의 의미를 찾아보기로 했다.


해가 뜨기 전 별이 쏟아지는 하늘



단순히 멋진 풍경을 보기 위해 이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물론 스페인의 아기자기한 풍경과 맛있는 음식을 기대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길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길에 담긴 스토리때문이었다. 2천년 전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야곱이 처음 걸었고, 그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걷고 있다는 그 이야기 때문이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호숫가. 



빈센트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내 이야기를 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성당을 다니지 않다가 일상이 너~~무 지루해 우연히 성서모임을 시작했다고. 근데 그 이야기가 너무 재밌어서 성당에 다시 다니기 시작했고, 미사 반주까지 하게 됐다고. 그렇게 반주를 하며 신부님과 친해졌고, 신부님이 이 길을 추천해주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말이다. 빈센트 할아버지는 다 하느님의 뜻이라며 끝까지 힘내서 걸으라고 응원해주셨다.     


  

포토밭이 펼쳐진 길을 따라 걸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전 루르드에서 만난 밀리안 수녀님도 말씀하셨다. 인생에서 감사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봉헌하는 마음으로 걸으라고, 그리고 그 길 끝에서 얻게 될 지향이 무엇인지도 생각해보라고.   


중간에 들린 성당. 성당 방명록에 나의 깨달음을 적었다. 


이 길을 걸으면서도 느끼지만 난 행운아다. 

좋은 부모님, 좋은 가족, 좋은 직장 동료, 좋은 친구, 뭐 하나 나무랄데 없다. 집은 넓고 쾌적하며 내가 원하는 것을 누리며 산다. 이 한 달 휴가도 마찬하지다. 누가 일을 하며 한 달 휴가를 얻겠는가. 그 감사한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매일 기도하고, 나의 작은 발걸음을 봉헌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것이 나의 지향이자 내가 이 길을 걷는 이유이다. 그래서 매일 저녁 평일미사를 드리기로 결심했다. 적어도 산티아고에 있을 때는 더 많이 기도하는 것으로. 그리고 방문하는 마을마다 성당에 들려 스탬프를 찍고, 간단한 기도라도 하는 것으로.     




베드버그와의 사투


그런데 걷다보니 팔뚝이 따끔하다! 아니 이틀 연속 옷과 침낭을 건조기에 돌렸는데 아직도 설마 베드버그가 남아있나?! 흑 ㅜㅜ 흔들리는 멘탈을 겨우겨우 붙잡으며 목표한 마을까지 걸었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길은 바로 돈이다!!!

직장 생활을 하며 우울할 때는 돈을 쓰면 울적한 마음이 어느정도 풀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오늘은 저렴한 알베르게 대신 호텔에서 혼자 머물기로 했다. 호텔에 와서 옷을 벗고 화장실에 가서 몸을 둘러 봤다. 그동안 비좁은 공용 화장실을 쓰며 쫓기듯 대충 샤워하다가, 넓직한 화장실을 혼자 쓰면서 내 몸을 찬찬히 둘러 보니 여기저기 참 많이도 물렸다. 내 생각보다 상태는 심각했다.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말 그대로 나의 모든 살림거리를 세탁에 맡겼다. 고어텍스라 건조기에 돌리면 안되다는 모자, 바람막이 뿐만 아니라 각종 파우치까지 건조기에 넣을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넣었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살고 보자!!      

    

     

산티아고를 걸으며 처음으로 혼자 잔 날. 


나헤라는 참 예쁜 도시였는데 베드버그로 내 멘탈이 부서진 상황이라 제대로 둘러보지도 못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그냥 호텔 방 안에서 보냈다. (사실 옷과 속옷을 다 세탁에 맡겨서 밖에 입고 나갈 옷이 없었다...) 호텔 방 안에 혼자 머물며 오랜만에 듣고 싶은 노래도 마음껏 듣고 좋았다. 미사에는 가지 못했지만 그날 복음 말씀이 참 와닿았다.          


루카 10장 38~42절

그들이 길을 가다가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하고 말하였다.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나는 쓸데 없이 너무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산티아고 순례길 TIP


Q. 배드버그에 물리는 사람이 많나요? 물리면 어떻게 하나요?

순례길에 가기 전 이미 다녀온 3명을 만났는데 그중 베드버그에 물린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아무 준비 없이 갔다. 그런데 올해가 이상했던 건지 나를 포함 베드버그에 물린 사람을 꽤 많이 봤다. 베드버그에 물리면 약국에 가서 먹는 약과 바르는 약, 그리고 베드버그 퇴치제를 산다. 약을 먹고, 간지러울 때마다 절대 긁지 않고, 대신 약을 바른다. 그리고 자기 전에는 침대 주변에 퇴치제를 뿌린다. 그리고 모든 옷과 침낭을 건조기에 돌린다. 베드버그가 열에 약해서 건조기에 돌리면 다 죽는다고 한다. 베드버그에 물리면 흉지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나는 안긁고 계속 약을 발랐더니 흉터는 다행히 하나도 남지 않았다. 참고로 핸드크림 정도 크기의 바르는 연고를 일주일만에 다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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