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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래블 Sep 02. 2019

14. 산티아고 순례길, 영어 못해도 괜찮을까요?

'내가 여기 왜 왔지?!' 젠장, 산티아고 순례기

걷기 11일 차 _ 벨로라도 (Belorado) ▶ 산 후안 (San juan de ortega) : 24.3km




다양한 사연을 가진 순례자들 


산티아고를 걷다 보면 정말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만난다. 4달 된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가는 부부, 개와 함께 자신의 집인 체코에서부터 걸어온 아저씨, 지난 2년 동안 휴가 때마다 조금씩 걸어 자신의 집인 독일에서부터 걸어 산티아고로 가는 할머니 등. 2000년 전 야곱이 걸었던 그 길을 따라 사람들이 아직도 줄지어 걷고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다. 



10일 차가 넘어가니까 이제 조금씩 이 길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깜깜한 아침에는 조조님과 함께 시작하고, 첫 bar에 도착하면 늦게 출발한 호호님이 합류하여 셋이서 아침을 먹는다. 그 뒤에는 내가 걸음이 느려 혼자 걷는다. 혼자 걸으면서 오늘은 스페인 발렌시아 지방에서 온 페르난도 아저씨, 동독에서 살았던, 평화를 매우 중시하는 이브 아줌마와 얘기를 나누고, 또 그저께 처음 만난 한국인 부자와도 인사를 나눴다.     



이 길이 인생과 비슷하다. 하루 7~8시간 걷고(일하고), 길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오늘 머물 집에 도착하면 씻고, 책 보다가 음식을 준비하고 맛있게 식사한 후 잠에 든다. 








마을 도착, 평화로운 오후


아침 7시에 출발하면 이제 걷는 데 익숙해져서 오후 1~2시면 오늘 머물 마을에 도착한다. 오늘은 산후안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성당과 알베르게, 그리고 하나 있는 bar가 전부인 아주 작은 마을이다. 씻고 나와서 알베르게 앞 벤치에 앉아 조조님, 호호님과 수다를 떨었다. 수다를 떨고 있으니 캐나다에서 온 마크와 일본에서 온 아야, 그리고 브라질에서 온 라우라가 합석한다.      



그리고 나는 친언니가 결제해준 전자책 손원평의 <서른의 반격>을 읽기 시작했다. 해외에서는 결제가 어려워 언니에게 결제해달라고 부탁했다. 보통 저녁 먹기 전인 5시까지는 여유롭기 때문에 이 시간에 멍하니 있기보다는 책을 읽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오늘부터 시작했다. 꾸준히 읽으면 여행하는 동안 1~2권의 책은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더 순례길을 즐길 수 있도록 취한 나의 작은 노력이다. 





울컥했던 미사 


이 동네는 저녁 미사가 조금 이르다. 6시다. 조조님과 함께 저녁 미사를 드리러 갔다. 신부님 인상이 너무 좋았다. 얼굴에 인자함이 뚝뚝 묻어났다. 강론 시간에 순례자들을 위해 좋은 말씀을 해주신 것 같은데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정말 아쉬웠다. 신부님께서는 한국인 순례자들을 위해서 한글로 미사 순서가 쓰여 있는 파일을 가져다주셨다. 맨날 아무 느낌 없이 읊었던 전례문인데 한글로 써 있는 것을 보니 새롭게 다가왔다. 이게 이런 의미였구나. 


영성체를 모시며 노래를 하는데 가장 앞 쪽 네 사람은 마을 주민인 것 같았다. 순례자들을 위해 매일 저녁 미사에 와서 노래도 하고, 독서도 하고 그래 주시는 것 같아 감동이었다. 근데 우리 뒤에 앉아있던 순례자가 갑자기 영성체 후 묵상 시간에 일어나 독창을 했다. 아베마리아였나. 신부님의 인자한 눈빛과 아름다운 선율에 울컥해서 갑자기 눈물이 났다. 눈물 날 정도는 아니었는데 왜 눈물이 났는지. 창피했다.





산티아고 순례길 TIP


Q. 영어를 못해도 외국인과 소통에 어려움이 없을까요?

가기 전 외국어가 걱정이었다. 어학연수, 교환학생 경험이 없는데 내가 가서 잘할 수 있을까? 근데 외국인과의 소통에서 중요한 것은 외국어 실력이 아니라 활달한 성격이었다. 함께 걸은 조조님이 나보다 영어를 훨씬 못하는데 나보다 더 많은 외국인 친구를 사귀고 친하게 지내셨다. 친구 사귀는 것은 성격이다~ 


(또한, 나는 생각보다 영어를 잘했다 움하하! 그동안 영어 쓸 일이 없어서 익숙하지 않았을 뿐 막상 혼자 유럽에 떨어지니 다 알아듣고, 말도 점점 나오기 시작했다. 한 달 어학연수보다 한 달 산티아고 순례가 영어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힘들어서 말하기 싫음;; 그냥 혼자 걷고 싶음. 그것이 나의 문제^^)    

 

그리고 유럽의 젊은이들은 영어를 잘 하지만, 나이 많은 분들은 영어를 못하고, 스페인어만 하거나 불어만 하는 경우가 많다. 다 똑같이 영어 못하니 영어를 못한다고 너무 걱정 안 해도 된다. 꼭 의사소통이 필요한 경우에는 영어를 잘하는 한국사람에게 도움을 청해도 좋고, google 번역 앱이 워낙 잘 되어 있으니 그것을 사용해도 된다. 걱정 안 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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