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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래블 Sep 07. 2019

15. 산티아고 순례길, 도시 사람들 보고 위축된 순례

'내가 여기 왜 왔지?!' 젠장, 산티아고 순례기

걷기 12일 차 _ 산 후안 (San Juan de Ortega) ▶ 부르고스(Burgos) : 26km



아침 순례길


밤에 잠을 잘 못 잤다. 자다 깨다 했다. 몸 여기저기가 간지러워 베드버그에 물린 줄 알았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화상실에 가서 확인해보니 안 물렸다. 다행이다. 예전에 물린 곳이 아직도 가려운가 보다.     


새벽에 빛나는 별 


조조님과 아침 일찍 출발했다. 밤하늘에 별이 촘촘했다. 이렇게 어두운 밤, 혼자 출발했다면 무서웠을 것이다. 조금 수다스럽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함께 있으면 활력이 넘쳐서 좋다.     


걷다 보니 어느새 첫 번째 bar에 도착했다. 깔조네 같이 생긴 홈메이드 빵이 있어서 조조님과 반씩 사 먹었다. 생각보다 짜서 먹음직하게 생긴 것에 비해 맛은 그닥. 그래도 한국에 돌아가면 아마 아침에 먹는 이 카페콘레체가 가장 그리울 것 같다.     


아침을 먹은 첫 번째 bar
오늘의 아침
아침을 먹고 있으니 모여드는 고양이
귀여운 고양이


아침 먹고 다시 출발~ 

등 뒤로 해가 떠올랐다. 오늘은 아주 날씨가 좋을 것 같다. 하늘색 하늘이 해가 떠오르니 분홍 빛깔로 변한다. 멋있다. 매일 다르게 떠오르는 태양. 신기하다.     



분홍빛 하늘
등 뒤로 떠오르는 태양
길게 늘어진 그림자



순례길을 걸으면서 듣는 질문


걷는 동안 일본인 '아야'와도 얘기를 잠깐 나누고, 뉴멕시코에서 온 아주머니와도 얘기를 나누고, 브라질 의사 '라우라', 캐나다에서 온 아줌마와도 얘기를 나눴다. 외국인들에게 내가 south korea에서 왔다고 하면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많이 물어본다. 자세하게 얘기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영어가 부족한 것도 있지만 국내 정세에 무지한 것도 없지 않다. 한국에서는 정치에 관해서 나의 의견을 말할 기회가 거의 없다. 묻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러다 보니 어떤 사안에 대해 나의 생각을 정리한 적도 없던 것 같다. 다음에 만난 외국인이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지 생각하면서 걸었다.     




아름다운 숲길


지겨운 공장지대를 지나면 부르고스 시내로 들어가는 초입에 아름다운 숲길이 나타난다. 옆으로는 작은 강도 흐른다. 나무의 이파리는 노랗게 물들었다. 나뭇잎 사이로 가을 햇살이 반짝인다. 가을의 정취가 느껴졌다. 시원한 가을날, 동네 주민들은 그 길을 따라 자전거도 타고, 조깅도 하고 그랬다.  




초라한 순례자의 행색


갑자기 속상했다..............


다들 즐기고 있는 이 가을의 햇살을 나만 즐기고 있지 못한 것 같았다. 나도 이 무거운 짐가방과 등산화, 등산모자, 등산바지 이런 거 다 벗어던지고 저들처럼 가볍게 뛰고 싶었다. 내가 항상 걸었던 호수공원이 생각났다. 그냥 호수공원이나 걸을껄 왜 여기까지 와서 이 길을 걷고 있는지 갑자기 속상함이 밀려왔다. 도시에 가까워질수록 함께 걸었던 순례자들은 보이지 않고, 화려한 옷차림의 현지인만 보여 주눅이 들었다.




부르고스 도착


부르고스 시내에 도착하자마자 주위를 둘러보지도 않고 얼른 국립 알베르게로 갔다. 1박에 5유로로 매우 싸고 시설도 좋아 마음에 들었다. 샤워를 하고, 빨래를 하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순례길의 대표 대도시인 부르고스 시내 구경에 나섰다. 어떤 순례자들은 여기서 이틀 이상 머무르며, 관광도 하고, 휴식도 취한다고 한다.          

 

부르고스 시내에서 젤라또 한입


부르고스 대성당은 이전 성당들에 비해 훨씬 크고 화려했다. 얼핏 옆모습은 노트르담 대성당과도 비슷해 보였다. 토요일 오후 결혼식을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인지 드레스 차림의 사람들도 보였다. 원색의 빛나는 드레스에 모자까지 쓰고 정말 화려했다.      


알베르게 창문으로 바라본 부르고스 대성당


저녁은 7시가 되어서야 먹을 수 있었다. 스페인은 식당의 브레이크 타임이 워낙 길다. 아무리 빨리 열어도 저녁 7시고, 보통 오후 7:30~8시나 돼야지 문을 연다. 부르고스는 도시라도 유명 관광지는 아니다 보니 레스토랑에서 영어 메뉴판을 준비한 곳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가게를 정하고, 메뉴를 정하는데 꽤나 어려웠다. 구글 번역기를 돌려가며 우리는 스테이크와 맥주를 주문했다. 그동안 베드버그에 물려 술은 피해왔다. 술을 마시면 열이 나서 더 간지럽다고 사람들이 조언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많이 나은 것 같아 레몬맛이 나는 맥주를 마셔보았다. 사람들이 맛있다고 누누이 말했기에 기대했는데 역시나 완전 맛있었다. 밖에서 먹었는데 춥지 않고, 날씨가 딱 적당히 좋았다.     


스테이크와 레몬맥주



나도 밤을 즐기로 싶다!


내일 또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저녁을 먹고 곧장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데 클럽 앞인지 스페인의 젊은이들이 술잔을 하나씩 들고 있는, 바글바글한 곳을 지나왔다. 나도 놀고 싶었다!!!! 근데 츄리닝 바지에 등산용 바람막이, 신발은 크록스, 얼굴은 화장 1도 안 한 맨 얼굴............. 그냥 숙소로 돌아왔다....... 흐규 ㅠㅠ 홍대, 이태원에서 노는 것처럼 나도 친구들하고 놀고 싶다!!!!!!!! 나 노는 거 겁나 좋아하는데!!!!!


저 멀리 쿵짝쿵짝 밤을 즐기는 젊은이들



산티아고 순례길 TIP


Q. 산티아고를 걸으며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은 무엇일까?


산티아고를 걷다 보면 외국인들이 자주 묻는 질문이 있다. 보통 한국 사람들은 영어를 들을 수는 있지만 말하기는 어려워한다. 따라서 이에 대한 답을 미리 준비하거나 외워놓는다면 더 원활한 소통이 가능할 것이다. 

    

1. 어느 나라에서 왔니?

2. 어디서부터 출발했니? 혹은 걸은지 며칠 됐니?

3. 오늘 어디까지 가니?

4. 오늘 몸은 어때?

5. 한국 사람들은 왜 여기에 많이 와?

6. 너는 산티아고에 왜 왔어?

7.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북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위에 것들이 기본적으로 많이 묻는 내용이었고, 그 외에는 사람의 성향이나 의사소통 능력에 따라 질문이 많이 달라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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