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또래블 Sep 12. 2019

16. 여행기간이 짧아도 산티아고 걸을 수 있을까요?

'내가 여기 왜 왔지?!' 젠장, 산티아고 순례기



걷기 13일 차 _  부르고스(Burgos) ▶ 온타나스(Hontanas) : 32.5km




남보다 많이 걷기


프랑스 생장에서 시작하는 순례길 코스는 산티아고까지 보통 34일이 걸린다고 한다. 나에게 순례길을 걸을 수 있는 날은 26~27일 정도였기 때문에 일정상 부르고스에서 레온까지 약 200km는 버스를 타고 점프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순례길을 걸으면서 만난 사람들이 부르고스에서 레온까지, 일명 메세타(고원) 구간도 좋다고 한 번 걸어보라고 권유했다. 미리 어디를 점프할 것이다 정하지 말고 걷다가 힘들면 그때 가서 점프를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 많이 걷기 위해 무리한 스케줄을 짜기 시작했다. 보통 순례자들이 하루에 20~25km를 걷는데, 나는 25~35km 이상 걷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메세타 구간에 진입했다.




부르고스를 벗어나 메세타 진입


오늘도 역시나 아침에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부르고스 시내를 벗어나는 것이 조금 힘들었다. 이른 아침이다 보니 어둡기도 했고, 큰 도시는 워낙 길이 많아서 화살표를 놓치기 십상이다. 화살표가 보이지 않고, 헷갈릴 때는 멈췄다. 가만히 멈춰서 주변을 살피면 이내 노란 화살표가 나타났다.    

  

메세타 (고원) :  똑같은 풍경이 이어진다고 사람들이 많이 점프하는 구간이다. 그래서 사람이 많지 않다.




비 내리는 순례길


오늘은 비가 내렸다. 아침부터 흐렸는데 9시가 되니까 제법 쏟아졌다. 10월에 비가 내리니 스틱을 잡은 손이 시렸다. 장갑을 끼고 싶었는데 털장갑이라서 젖으면 더 추울 것 같아 그냥 맨손으로 갔다. 빨리 bar가 나오기만을 바라며 걸었다. 드디어 첫 bar가 보였다! 비가 와서 그런지 실내가 더 복작복작하게 느껴졌다. 카페 콘레체와 베이컨, 감자, 계란으로 만든 또띠아를 주문했다. 합쳐서 2.70유로. 역시 저렴하다.


앉아서 먹는데 잘생긴 이탈리아 청년이 앞에 앉는다. 이름은 다니엘. 벌써 두 번째로 산티아고를 걷는다고 한다.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그냥 시칠리아에 가봤다고 자랑했다.     



온타나스 도착 


다시 걷기 시작했다. 원래는 산볼이라는 곳에 머물려고 했다. 산티아고를 6번이나 걸은 한국인이 추천해준 숙소였다. 넓은 들판에 알베르게 딱 하나만 있어서 새벽에 별이 잘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그 알베르게는 문이 닫혀 있었다. 산볼에는 정말 딱 이 알베르게 하나만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음 알베르게까지 가야 했다. 그래서 30km 넘게 걸었다. 오늘 머물 마을에 도착하니 4시가 다 되었다. 호호님은 혹시 내가 지나쳐 가버릴까봐 알베르게 앞 벤치에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고마웠다.   

  

씻고 나서 일단 가볍게 라면을 끓여 먹었다. 점심을 부실하게 먹다 보니 숙소에 도착하면 배가 고프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라면 냄새를 맡으니 엄청 기침이 난다. 안 그래도 매운 거를 못 먹는데 안 매운 거에 익숙해져서 그런가보다.      


오늘 머무를 작은 마을 온타나스. 




오늘의 저녁미사


호호님이 오늘 미사는 6시라고 알려주신다. 호호님은 미사를 드리지 않는데도 내가 미사를 챙기니까 배려를 해주신다. 감사하다. 덕분에 주일미사를 드렸다. 오늘은 복음보다는 제 1독서의 내용이 와 닿았다.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7,7-11    
 
내가 기도하자 나에게 예지가 주어지고
간청을 올리자 지혜의 영이 나에게 왔다.
나는 지혜를 왕홀과 왕좌보다 더 좋아하고
지혜에 비기면 많은 재산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였으며
값을 헤어릴 수 없는 보석도 지혜와 견주지 않았다.
온 세상의 금도 지혜와 마주하면 한 줌의 모래이고
은도 지혜 앞에서는 진흙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나는 지혜를 건강이나 미모보다 더 사랑하고
빛보다 지혜를 갖기를 선호하였다.
지혜에서 끊임없이 광채가 나오기 때문이다.
지혜와 함께 좋은 것이 다 나에게 왔다.
지혜의 손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재산이 들려 있었다.      


나에게 지혜가 오길 기도했다. 지혜가 생겨 좋은 사람을 알아보고, 그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길 기도했다. 


온타나스의 작은 성당. 미사가 끝나고 신부님께서 순례자들에게는 특별히 십자가 목걸이를 하나씩 선물해주셨다.




감사한 저녁


미사 후 저녁을 만들어 먹었다. 밥과 고추장찌개. 먹고 나서 호호님이 레몬 맥주까지 사주셨다. 우리는 알베르게 앞 벤치에 앉아 마셨다. 저녁 8시. 칠흑 같은 어둠은 아니었다. 아직 하늘은 푸른빛이 살짝 감돌고 있었다. 푸른 하늘에 주황색 가로등 불빛이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좋았다. 혼자였다면 방에 누워 핸드폰만 보고 있었을 텐데.. 감사하다!     


내가 좋아하는 레몬맥주


계속..



산티아고 순례길 TIP


Q. 여행 기간이 짧은데 산티아고를 걸을 수 있을까요?

전구간 다 걸을 필요 없다! 원하는 구간만 골라서 걸어도 된다. 시작을 아예 산티아고와 가까운 곳에서 할 수도 있고, 중간중간 버스나 택시를 타고 건너뛸 수도 있다. 다만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자! 하루에 너무 많은 거리를 무리해서 걸으면 몸이 상하고 최악의 경우 도중 순례길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름을 걷고 나머지 절반은 다시 오겠다는 사람도 봤고, 일주일 계획으로 사리아에서 산티아고까지 100km만 걷는 사람도 봤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전구간 다 걸을 필요는 없다. 한번에 다 걸을 필요도 없다. 각자 상황에 맞게! 

매거진의 이전글 15. 산티아고 순례길, 도시 사람들 보고 위축된 순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