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또래블 Nov 23. 2019

23. 산티아고 순례길_한국과 연락, 유심 팁

'내가 여지 왜 왔지?!' 젠장, 산티아고 순례기 

20일 차 _ 몰리나세카 (Molinaceca) >> 베가 데 발카르세 (Vega de valcarce): 43.3km

실제로 걸은 거리는 23.5km / 나머지는 버스를 타고 이동. 



새로운 다짐


아침에 일어나니 7시다. 

더 잘까 하다가 나갈 준비를 했다.

나가기 전 오랜만에 가족들과 통화를 했다. 

너무 힘들고, 발이 아프다고 투정을 부렸는데 오랜만에 통화하니까 좋았다. 



한 달 안식휴가의 2/3가 지났는데 지금까지 나의 상황을 보면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것 같다. 초반에는 베드버그에 물려 고생을 하고, 중반 이후부터는 하루에 너무 많은 거리를 걸으면서 발이 아프기 시작했다. 하루 30km 이상 걸은 날은 물론 35km씩 걷기도 했다. 아침은 그래도 괜찮은 편이었지만 1~3시, 뜨거운 태양 아래를 걷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어젯밤, 침대에 누워 3년 동안 꿈꿔온 한 달 휴가를 이렇게 고통 속에서 보낼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남은 10일 만이라도 나의 행복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산티아고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대신 버스를 타고 조금만 앞으로 가자고 생각했다. 다 걷겠다는 자존심, 다른 순례자들의 시선, 상관하지 않고 폰페라다까지 가서 그곳에서 버스를 타기로 다짐했다. 





너무 발이 아파도 일단 걷는다. 방법이 없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아침, 조조님께서 길에서 주운 밤을 주셔서 그걸 까먹으면서 폰페라다까지 걸었다. 오늘 시작점인 몰리나세카에서 폰페라다까지는 7.8km로 2시간이 안 걸려서 도착했다. 아침부터 발이 너무 아팠다. 오늘도 이 발로 30km 가까이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끔찍했다. 더는 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일단 쉬기 위해 처음 보이는 Bar에 들어갔다. 근데 빵이 없다. 혹시 샌드위치나 빵 같은 거 없냐고 물어보니 대답이 시원찮다. 그냥 돌아서 나오는데 스웨덴 순례자 한 분이 따라서 나온다. 나한테 어떤 빵을 원하는 건지 물어본다. 자기가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겠다고. 괜찮다고 하고 다른 바를 찾으러 나서는데 눈물이 찔끔 난다. 너무 힘들고 발은 아픈데, 처음 본 사람한테 저렇게 친절한 순례자가 있는 이 산티아고 순례길이란 정말...☆


터덜터덜 다른 카페를 찾아 앞으로 걸어가는데 먼저 간 조조님과 호호님이 한 카페에 앉아있다. 그리고 처음에 산티아고를 함께 걷기 시작한 재재언니도 그곳에 앉아 있었다. 



어머나, 재재님!!!!


재재님은 부르고스에서 레온까지 점프를 하고 폰페라다에 먼저 왔던 것이었다. 오랜만에 재재님을 만나니 너무 반가웠다. 


게다가 스페인에 와서 이렇게 좋은 카페는 거의 처음 봤다(산티아고 순례길은 거의 시골길이다). 한국의 세련된 카페 같았다. 빵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눈이 돌아갔다. 안 먹던 치즈케익도 주문하고, 다른 빵도 하나 더 시켜보았다. 역시 힘들 때는 단 것이 최고다. 


폰페라다에서 들린 카페 


방금 전까지는 힘들어서 눈물이 났는데 순례길을 함께 시작한 한국 사람들과 맛있는 케익을 먹으며 앉아있으니 기운이 났다. 하지만 그래도 더 걸을 수는 없었다. 나는 오늘 버스를 타고 점프를 할 예정이라고 말씀드렸다. 





버스로 짧은 점프 


폰페라다에 있는 인포메이션 센터로 가서 버스가 있냐고 물어봤다. 폰페라다는 꽤 큰 도시여서 버스터미널이 있었다. 처음엔 이곳에서 20km 떨어진 빌라 프랑카 델 비에르소까지 가는 버스가 있냐고 물어봤다. 그런 다음가 혹시 86km 떨어진 사리아로 가는 버스도 있냐고 물으니, 갑자기 왜 거리가 늘어나냐며 웃으며 알려준다. 약간 창피했다. 나도 다 걷고 싶다. 그런데 시간도 부족하고, 컨디션도 안 좋은 걸 어쩌겠는가. 


사리아까지 갈까 하다가 그냥 20km 떨어진 빌라 프랑카 델 비에르소까지 가기로 했다. 오전 11시 버스가 있어 터미널로 서둘러 갔다. 재재언니가 버스터미널까지 데려다줬다. 재재언니는 이 도시에 며칠 더 머무른다고 했다. 작별 인사를 하고, 산티아고를 지나 포르투에서 꼭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오랜만에 만나니 정말 반갑고 좋았다.


버스를 타고 빌라 프랑카 델 비에르조까지 갔다. 원래 오늘의 목적지였던 마을이다. 버스를 타고 오니 한 시간도 안돼 도착했다. 예쁜 마을이었다. 이곳에서 하루 쉴까 하다가 그러면 앞으로 남은 순례길 동안 또다시 많이 걸어야 하기에 조금이라도 걸어두자고 생각했다. 


빌라 프랑카 델 비에르조
빌라 프랑카 델 비에르조
빌라 프랑카 델 비에르조





난 이제 혼자 다니고 시포~~~


천천히 걸었다. 뒤에 어떤 아저씨가 따라온다. 이름은 마리오. 쿠바에서 태어났지만 50년 전 미국으로 이주했고 지금은 플로리다에 산다고 한다. 무화과를 따먹으며 친해졌다. 아저씨가 물렁물렁한 무화과는 겉이 초록색이어도 먹어도 된다고 설명해준다. 


무화과 (fig) / 스페인은 길에 먹을 게 넘쳐난다.



우린 다음 마을까지 같이 걸었다. 금세 친해졌다. 

근데 사이가 멀어졌다.... 아쒸 글로 쓰기 귀찮다. 

나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나 뉘앙스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암튼 지금 생각해도 그 아저씨가 이상했다. 서양인들이 동양인보다 개인주의적이고, 쿨할 것 같은데 내가 봤을 때 내가 여기서 제일 쿨한 것 같다. 굳이 그렇게 같은 마을에서 머물러야 하고, 같이 걸어야 하나.... 암튼 점점 순례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가까워지는 게 피곤해진다. 다들 나한테 잘해주고, 그래서 나도 잘해주고 싶은데 마음 같지 않은 것 같다. 괜히 신경 쓰이고 속상해져서 허름한 bar에 앉아 레몬 탄산음료를 마시며 가족들에게 카톡을 엄청 보냈다. 이런 이런 일이 있었다고, 엄청 하소연을 했더니 마음이 좀 풀렸다.





깊어가는 가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깊어가는 가을이 참 예뻤다. 우리나라는 붉은 단풍이 많은데 스페인은 노란 단풍이 많다. 연두에서 노랑으로 변해가는 잎 사이로 스페인의 태양이 반짝인다. 내가 걷는 높은 다리 밑으로는 계곡이 흘렀다. 자연 그대로의 계곡이 햇볕에 반짝이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깊어가는 가을. 아름다웠다. 다만 아쉬운 것은 오늘은 차도를 따라 걸었기 때문에 큰 차가 지나갈 때는 조금 무서웠다.




오랜만에 즐기는 고요 


그렇게 오늘도 걷고 걸어 드디어 내가 목표한 마을에 도착했다. 어떤 알베르게에 가야 하나 고민이 됐다. 항상 호호님이 먼저 도착해 나는 정해진 알베르게로 갔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국립 알베르게에 갔지만 겉으로 봤을 때 너무 허름해 보였다. 그래서 안 가고 내 앞에 독일인 부부가 가는 곳을 쫓아가 봤다. 겉모습만 봐도 훨씬 깔끔해 보였다. 


체크인을 하고 오랜만에 친구와 통화를 했다. 조조님, 호호님과 함께 다닐 때는 내가 항상 늦게 도착해서 도착하자마자 얼른 씻고 같이 저녁 장을 보러 가야 했다. 하지만 혼자 있으니 일찍 씻을 필요도 없었다. 주변에 한국인도 없고, 맘 편히 하고 싶은 말 다 하면서 통화했다. 마당에 앉아 통화를 실컷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느지막이 샤워를 했다. 늦게 샤워하니까 샤워실에 아무도 없고 천천히 씻을 수 있었다. 


저녁을 먹기 위해 마트에 갔다. 근데 혼자 장을 보려니 뭐든 양이 너무 많고, 비싸다. Bar에서 사 먹을까 했는데 7:30부터 저녁 식사 메뉴가 나온다고 한다. 그때까지 기다리기는 너무 피곤하여 그냥 마트에서 냉동 파에야를 사서 전자레인지에 돌려먹었다. 맛은 별로였다. 그래도 요리 안 하고, 설거지도 안 하니까 저녁 시간이 엄청 여유로워졌다. 게다가 오늘 숙소는 나를 포함 여자 단 두명만 이 방을 쓴다. 엄청 조용해서 좋다. 오랜만에 스트레칭도 하고 내일 갈 곳도 미리 검색해보고 일기도 쓰고 그랬다. 아 얼마 만에 느껴보는 적막인지. 방에 혼자 누워 즐기는 이 고요가 너무 오랜만이고 좋았다. 


누워서 조조님과 호호님에게 못 보낸 사진을 마저 보냈다. 며칠 전 사진인데도 벌써 아련하다. 

쌀쌀한 아침 공기, 따뜻한 모닝커피, 어디서나 맛있는 빵 등. 어쩌면 이곳을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발이 아파 버스를 탔지만 버스에서 내려 오늘도 두 발로 20km 이상 걸었다. 

힘든 하루였지만 가족과 친구와 연락하며 충전할 수 있는 하루이기도 했다. 


계속...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 TIP


Q. 순례길에서 핸드폰(인터넷) 어떻게 사용했나요?


기간이 길기 때문에 로밍보다는 유심을 사 가는 것이 훨씬 좋다. 

나는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보다폰 유심을 사 갔다. 출발 바로 전날? 전전날? 샀는데 택배로 받는 것 대신 인천공항에서 수령할 수도 있다. 2G에 보너스로 4G가 더 주어져 한 달 동안 6G를 사용할 수 있는 유심이었다. 아껴서 사용했는데 아낄 필요 없을 정도로 나중에 데이터가 많이 남았다. 국제전화도 할 수 있는 유심이었는데 국제전화는 거의 안 쓰고, 통화는 대부분 보이스 톡으로 했다. 보이스 톡을 가끔 사용해도 데이터가 모자라지 않았다. 메세타라던가 일부 구간에서는 신호가 안 잡힐 때도 있었지만 그런 구간은 많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순례길에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 일부러 유심을 사 가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중간에 길을 찾거나, 음식점을 찾거나, 노래를 듣거나,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연락을 하기 위해서는 유심을 사 가는 것이 훨씬 편리하다. 물론 알베르게에 와이파이가 설치된 곳이 많긴 하지만 정~~~~말 너무 느려서. 이게 인터넷이 되는 건가 의심이 들 때가 많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22. 산티아고 순례길, 철십자가를 만난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