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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래블 Dec 22. 2019

25. 산티아고 순례길- 혼자 가도 괜찮을까?

'내가 여기 왜 왔지?!' 젠장, 산티아고 순례기

22일 차 _ 폰프리아 (Fonfria) >> 사리아 (Sarria) : 31.1km



와우~

어젯밤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침대 옆벽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처음에 뭐지 싶었는데 계속 듣다 보니 남녀의 신음소리다. 저러다 말겠지 했는데 점점 소리가 커졌다. 도미토리 말고 2인실 방도 있는 알베르게였는데 그 방이 내 침대 바로 옆이었나 보다. 윽. 무시하고 자려고 했는데 신경 쓰여 잠이 안 왔다. 좀 잠잠해지고 나서야 잠이 들었다. 유럽의 노부부가 아닐까 혼자 생각했다. 여기 젊은 커플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참 별일이 다 있다. 



다행히 잠은 잘 잤다. 아침에 눈을 뜨니 벌써 7시다. 알람을 맞춰놓으면 다른 사람에게 방해 될까 봐 그냥 눈 떠질 때 일어난다. 일어나면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다들 나갈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7시 30분에 준비를 마치고 출발하려 했으나 어두운 산길을 혼자 걷는 것은 위험할 것 같아 숙소에서 아침까지 먹고 8시에 천천히 출발했다. 그래도 아직 해가 뜨지 않았다. 어둡다. 




출발할 때는 어두웠지만 금세 해가 뜨기 시작했다. 하늘 색깔이 너무 아름다웠다. 분홍부터 하늘색까지. 그라데이션을 만들어 낸 하늘의 색이 땅밑으로 떨어졌다. 한국에서는 일출을 보기 힘든데 이곳에서는 매일같이 다른 일출을 만난다. 해가 뜨기 전 깜깜한 순간부터 태양이 머리 꼭대기로 떠오를 때까지 걸으면서 천천히 다 감상할 수 있다.       




순례길의 아침. 뭔가 청산도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도 우회 도로가 있는 날이다. 어제 자기 전 핸드폰으로 미리 알아봤다. 당연히 짧은 길을 선택해서 갔다. 걷고 걷고 혼자 걸으니 마음 편하고 좋다. 이젠 대화를 최소한으로 하려고 한다.      


우회도로를 알려주는 표지판
항상 휴식을 취하며 마셨던 오렌지쥬스. 1일 1 오렌지쥬스.
걷다가 본 집. 참 깔끔하고 예뻐서 찍었다.
매일매일 만나는 순례길 노란 화살표. 
지나쳤던 마을. 마을 사진을 보면 좀더 여유롭게 걸을껄 그랬다 후회가 된다.




Furela 마을까지 한 20km 정도는 매우 수월하게 걸었다. 그런데 그 이상 넘어가니까 또 몸에 이상이 온다. 25km까지도 힘들지만 걸을 수 있다. 그런데 25km 이상 걸으면 진짜 죽을 것 같다. 마지막 Calbor에서 사리아까지는 약 4km. 한 시간만 더 걸으면 되는 것인데 해는 뜨겁고, 발은 아프고, 진짜 죽는 줄 알았다. 그래서 사리아 시내로 들어가기 바로 전 벤치에 앉아서 한참을 쉬다가 시내로 겨우 들어갔다.      





오늘은 성당과 붙어 있는 알베르게다.  저녁 6시 30분에 미사가 있어 씻고, 쉬다가 미사에 갔다. 머리가 띵한 것이 체한 것인지 감기 기운인지 모르겠으나 아파서 침대에서 일어나기가 싫었다. 하지만 일어나서 미사에 갔다. 나까지 총 6명이서 미사를 드렸다. 우리나라 미사와 스페인의 미사는 거의 똑같다. 그래서 스페인어로 미사가 진행되어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전혀 없다. 그러나 작은 차이는 있다. 미사에 좀 더 정성을 들인다고 할까. 중간에 무릎을 꿇기도 하고,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는 6명 모두가 서로에게 다가가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눴다. 여기뿐 아니라 다 비슷하다. 미사 반주가 없어 화려하지 않고 사람도 별로 없어 소박하지만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미사를 드리는데 엄마, 아빠 생각이 나서 뭉클했다. 여기서 고생한다고 얼마전 돈을 보내주셨다. 힘들 때는 호텔에서 자고, 돈 아낀다고 굶지 말고 밥 제대로 챙겨 먹으라고 돈을 보내신 것이다. 그것도 엄마 따로, 아빠 따로... 여행 온 젊은 딸이 고생해봤자 얼마나 한다고.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할지 모르겠다.     


알베르게 바로 옆에 붙어 있었던 성당 
수도원을 개조해서 만들었다는 성당. 
알베르게 내부에 있는 작은 정원. 




미사를 마치니 다행히 몸 아픈 게 나아졌다.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레스토랑에 갔다. 원래는 문어 요리를 먹고 싶었으나 몸이 좋지 않아 뜨끈한 국물을 먹어야 할 것 같아 갈리시아 스프가 포함되어 있는 오늘의 메뉴를 먹었다. 따뜻한 음식으로 배를 채우니 아픈 느낌이 완전히 사라졌다.      

갈리시아스프
디저트까지 나오는 순례자메뉴. 맛은 별로임.




숙소 돌아오는 길에 찬바람을 쐬니 다시 머리가 아팠으나 따뜻한 침낭에 들어가니 괜찮아졌다. 10월 초 순례를 시작할 때는 내가 가져온 침낭이 너무 두꺼워서 불편했다. 자다가 너무 더워서 침낭 밖으로 자꾸 몸을 빼게 됐다. 그러다가 베드버그에도 물린 것이다. 근데 10월 말이 되면서 밤공기가 훨씬 쌀쌀해졌다. 오리털 침낭 가져오길 어찌나 잘했는지. 이젠 침낭 속에 들어가면 발도 빼지 않고 잘 잔다. 자기 전 침낭 속에 누워 내일 걸을 길을 미리 검색해봤다. 내일은 스테이크를 먹어야겠다. 가는 길에 스테이크 맛집이 있나보다. 혼자 걷는 산티아고도 매력적이다.      


나의 잠자리.




여행 TIP     


Q. 여자 혼자 가도 괜찮을까요?     

     

100%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순례자가 혼자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매일 비슷한 구간을 걷다 보면 눈에 익는 사람이 생긴다. 그렇게 걸으며 친구가 되기도 하니 혼자 간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아무도 걷지 않는 늦은 밤이나 어두운 새벽에 혼자 걷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따라서 어두운 새벽에는 되도록 길에서 사귄 일행과 함께 걷거나 해가 뜰 때쯤 출발하는 것이 좋다.      

     

걸으면서 힘든 것 외에는 위험한 일은 거의 없었다. 딱 한 번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뻔했는데 양을 돌보던 큰 개들이 나를 보더니 갑자기 컹컹! 짖으면서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순례길을 걸으며 큰 개를 많이 봤지만 이렇게 위협적으로 여러 개들이 나한테 몰려오는 것은 처음이었다. 다행히 저 멀리 개의 주인인 것 같은 아저씨가 제지를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소매치기 걱정도 많이 했는데 다른 유럽 관광지에 비하면 소매치기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걸으며 도둑을 만났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고, 실제로 알베르게에서도 사람들이 콘센트에 핸드폰과 충전기를 꽂아놓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정도였다. 나는 혹시 모르니 보조배터리를 충전해서 그걸 이용해서 핸드폰을 충전하곤 했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하지만 너무 겁먹을 필요도 없다. 본인이 소지품만 잘 챙긴다면 잃어버릴 확률은 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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