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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래블 Jan 14. 2020

27. 산티아고 순례길 _ 가장 멋진 일출을 본 날

'내가 여기 왜 왔지?!' 젠장, 산티아고 순례기

곤자르(Gonzar) >> 멜리데 (Melide) : 31.9km



아침에 눈을 떳는데 7시가 넘어있었다.      

7시 20분!     

맙소사!     

서둘러 준비하고 나왔다.      

     

어제 같이 저녁을 먹은 라우가와 둘이서만 방을 썼는데 라우가도 늦잠을 자서 방에 불켜는 사람도 없고, 준비하는 사람도 없어서 아침이 되는줄 모르고 계속 잤던 것 같다.      

     

급하게 나와서 언덕을 허겁지겁 올라갔다. 그러다가 우연히 뒤를 돌아봤는데 일출이 장관이었다. 앞을 바라보면 분홍빛 하늘에 휘엉청 둥근 보름달이 떠있었고, 뒤를 돌아보면 붉은 해가 출렁이며 떠오르고 있었다. 게다가 언덕 아래는 안개가 자욱히 깔려 장관이었다. 이 세상이 아닌듯한 환상적인 느낌이 들었다. 산티아고를 걷는 동안 매일 봤던 일출 중에 오늘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다. 


지는 달을 바라보며 언덕을 허겁지겁 올라가는데
우연히 뒤를 돌아보니 이렇게 멋진 일출이
다시 앞을 보니 분홍빛으로 물든 새벽 하늘
분홍빛 하늘에 취해있다가 또 뒤를 돌아보면
해가 뜨는 하늘이 두둥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봤던 일출 중 단연 최고!


떠오르는 해와 지는 달을 한번에 볼 수 있는 언덕에 올라서서 한참 사진을 찍다가 계속 갈 길을 걸었다.      

     

걷다가 조조님을 다시 만났다. 걸음이 워낙 빠르시고 체력이 좋으셔서 버스를 탄 나를 금방 따라잡으셨다. 조조님은 오늘 아침 길을 잃어 이상한 곳에서 헤매고 있다가 어떤 사람이 다시 산티아고 길까지 차로 태워줘서 겨우 돌아왔다고 한다. 아침을 먹어야겠다며 이내 사라지셨다.      

     

나는 계속 걸었다. 확실히 사리아부터 사람이 많아진듯하다. 굳이 생장에서 시작할 필요 없이 레온에서부터 여유롭게 걸을껄 그랬나 잠시 후회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생장에서 다같이 처음 걷기 시작할 때의 설렘을 함께 느낄 수 있어서 좋았고, 메세타에서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생긴 돈독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참 좋다.      

태양이 너무 뜨거울 때도 있지만 오늘은 숲길이 많아서 그런지 시원하고 참 좋다. 가지 끝에 얼마 남지 않은 나뭇잎이 바람에 살랑이는 것이 참 아름답다.




오늘은 숙소에 도착하니 거의 6시가 다 됐다. 30km도 어느 정도 적응되어 꽤 수월하게 걸었던 것 같다. 공립 알베르게에 안 가고 사립 알베르게에 왔는데 내가 도착했을 때 2층 방을 쓰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깔끔하고 사람이 얼마 없어서 샤워하기도 편하고 좋았다.      

     

오늘 머무르는 마을 이름은 '멜리데'로 이곳은 문어가 유명하다고 한다. 조조님과 같이 문어를 먹기로 했는데 연락이 안 된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왔는데 알베르게 안에 앉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어 문어를 먹기 위해 혼자 식당에 갔다. 혼자 주문을 하고 멀뚱멀뚱 앉아 있는데 필리핀에서 온 여자 3명이 합석했다. 생일을 맞이하여 사리아서부터 산티아고까지 일주일 동안 걷는다고 했다. 내가 생장에서 시작해서 20일 넘게 걸었다고 말하니 나보고 비 오는 날에도 순례길을 걷냐고 물어본다. 우비를 입고 걷는다고 했더니 대단하다고 칭찬했다. 괜히 우쭐해졌다.      

세명 중 한명이 한국 드라마를 좋아한다고 했다. 어떤 드라마를 얘기하는지 처음엔 몰랐는데 설명을 계속 들어보니 '가을동화'의 송승헌을 좋아한다는 거였다. 한국 드라마의 인기는 그야말로 신기하다.      


문어와 화이트 와인

     

한참을 얘기하는데 조조님이 식당에 왔다! 인터넷이 안되서 연락을 못했다고 한다. 조조님은 공립 알베르게에 머문다고 했다. 이렇게 안 보다가 만나면 참 반갑다. 함께 문어를 주문해 먹었다. 문어는 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지난 5월 시칠리아에서 문어를 먹고, 유럽 문어에 빠지게 되었다. 다양한 문어 요리를 먹었는데 특히 문어를 올리브유에 버무려 샐러드처럼 먹는 것이 참 맛있었다. 그 맛을 생각하면 몇날 며칠을 걸었는데 쩝... 아쉬웠다.       

그래도 화이트와인에 문어 한접시를 남김없이 다 먹었다.      

알베르게로 돌아왔는데 방에 나 혼자다. 갑자기 가족 생각에 눈물이 났다.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당신을 보호하는 방법은 그들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아니라, 그들을 그리워하는 시간이다. 그리워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외로운 시간이 필요하고, 아무 말도 없이 깊은 내면으로 고독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열한계단> 364p_채사장   

   

     

     

산티아고는 어쩌면 가족에게 더 잘 하라고, 가족의 품과 안락한 우리 집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내가 얼마나 사랑받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오게 된 것 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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