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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래블 Jan 24. 2020

29. 산티아고 순례길 - 산티아도 도착하면?

'내가 여기 왜 왔지?!' 젠장, 산티아고 순례기

아르카 도 피노 arca do pino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Santiago de compostela) : 18.9km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순 없어!!


오늘은 드디어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날이다.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설레어서 잠을 못 잔 게 아니라 잠자리가 너무 안 좋아서 4시쯤 깨버렸다. 다시 자려고 해도 잠이 안 와서 누워있다가 6시부터 일어나 나갈 준비를 시작하고 7시가 되기 전 숙소에서 나왔다. 역시 바깥은 어두웠다.


숲 속을 걸었다. 가로등은 하나 없는데 달빛이 비쳐 숲 속이 환했다. 달빛에 나무 그림자가 생길 정도였다. 달빛이 비쳐주는 길을 따라 숲을 걸었다. 내가 언제 이런 숲 속을 걸어보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시작부터 발이 아프기 시작했다. 내가 뒤쳐졌다. 조조님에게 먼저 가라고 했다. 조조님은 산티아고 우체국이 문을 닫기 전에 짐을 찾아야 해서 마음이 급하신 것 같았다.


어두울 때는 그래도 그럭저럭 걸었는데 환해지니까 사람들이 계속 앞으로 추월해갔다.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다들 신나고 걸음도 빠르게 걷는 것 같았다. 나만 뒤쳐지고 나만 절뚝거리는 느낌이었다. 19km를 6시간 30분 동안 걸었다. 체력이 좋았다면 5시간이면 충분히 걸었을 거리였다. 걷다가 오늘 여기서 포기하게 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걸음 한걸음 걷는 게 고통스러웠다.


설상가상. 마지막 날인데 비까지 내렸다. 우비를 입으면 비가 그치고, 벗으면 다시 내리고 그야말로 오락가락하는 날씨었다. 그런데 무지개가 보인다. 힘내라고! 포기하지 말라고! 산티아고 거의 다 와간다고! 하늘에서 플랜카드를 걸어준 느낌이었다. 게다가 쌍무지개였다.


산티아고 도착하는 날 하늘에 뜬 무지개! 끝까지 힘내라고 응원해주는 것 같았다!
자세히 보면 쌍무지개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아무리 작은 보폭이라도 걷다 보면 언제나 목적지에 도착하기 마련이다.


오늘도 역시 산티아고라는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드디어 다 왔구나!

그런데 산티아고 신시가지에서 구시가지 안쪽으로 들어가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젠장.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산티아고는 큰 도시였다. 하긴 공항도 있는 도시니깐.


드디어 산티아고 입성. 하지만 대성당까지는 한참을 더 가야했다.


두근두근. 이제 이 골목만 돌아서면 산티아고 대성당이 모습을 드러내겠구나 싶었다. 여전히 발은 아팠지만 거의 다다르자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산티아고 대성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왔구나! 해냈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해냈다!!!!



성당 앞마당에 앉아 하염없이 산티아고 대성당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수십일 동안 오직 이곳만 보며 걸어왔다. 수십일? 아니 그 전부터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상상하며, 여행을 준비해왔다. 이 기쁨을, 이 순간을 오래 오래 느끼고 싶었다.





오늘 밤은 싱글룸


생장에서 순례길을 처음 시작할 때 캐리어를 산티아고로 보냈었다. 짐을 보낸 곳은 산티아고에 있는 한 호텔이었는데 짐을 보낸 사람은 숙박료가 할인된다고 한다. 할인된 가격은 생각보다 저렴한 편이라 아주 오랜만에 싱글룸을 썼다. 객실에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드라이기도 있고, 화장실에 온열기도 있었다. 방에 3~4시쯤 들어갔는데 6시가 넘어서야 밖으로 나왔다. 그동안 샤워도 안 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서 핸드폰만 했다. 아 이거시 진정한 행복ㅋ 행복은 작은 방, 작은 핸드폰만에 있는 것을... 왜 돌고 돌아왔는지... (파랑새인 줄.)


사실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산티아고가 아니라 그냥 혼자 쓰는 방 한칸이었는지도 몰라... ㅠㅠ



터미널에서 사고쳤다...


내일 나는 산티아고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포르토로 갈 예정이었다. 그래서 근처에 있는 버스터미널에 포르토행 티켓을 사러 갔다. 근데 여기서 사고를 쳤다... 버스 자판기에 카드를 넣었는데 얘가 내 카드를 먹은 것이다!! 안 빠짐!!! 아무것도 안됨!!! 멘붕... 멍청한 자판기 탓만 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현금 넣는 데다가 내가 카드를 쑤셔 넣은 것이었다. 직원들은 이미 다 퇴근한 후였다.. 자판기가 고장 났으면 어쩌지? 나한테 기계 물어내라고 하면 어쩌지? 누가 내 신용카드 가져가면 어쩌지? 란 생각도 들었지만 솔직히 하나도 무섭거나 걱정되지 않았다.      

이 정도 사고쯤이야 내일 와서 직원한테 도와달라고 하면 되겠지?! 이런 느낌?? 산티아고에 도착했다는 기쁨 때문에 이런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다행히 다음날 아침 일찍 버스정류장 가니 이미 직원이 내 카드 뽑아서 보관하고 있었다. 내가 카드 받으러 왔다니까 웃으면서 여권의 이름 확인하고 카드를 돌려주었다.)



순례길 인증서 받기


암튼 당시에는 내일까지는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사고 수습을 못하고 다시 산티아고 대성당 쪽에 있는 순례자 사무실에 가서 인증서를 받았다. 순례자 여권을 보여주면 인증서를 준다. 그리고 3유로를 더 내면 거리까지 표시해주는 인증서를 준다. 나보고 다 걸었냐고 묻길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는 버스를 탔다고 얘기하니 그냥 799km라고 적어준다. 오호ㅋㅋ 뭐 그 정도 버스 탄 거는 다 걸은 셈 쳐주나 보다.

   


산티아고 대성당 미사


그리고는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들어갔다. 12시에는 향로 미사를 하고 저녁 7시 30분은 그냥 일반 미사였다. 산티아고 대성당의 상징인 향로 미사를 드리고 싶었지만 오늘 산티아고에 1시 넘어서 도착했고, 내일은 12시 버스를 타고 포르투갈로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저녁 미사를 드렸다. 이거라도 어디인가.


산티아고 대성당 미사가 끝나고 오르간연주



산티아고에서 저녁 만찬


미사를 마치고 조조님과 만나서 같이 빠에야를 먹었다. 빠에야는 짰다. 그래도 좋았다. 생장에서 같은 날 시작해 산티아고에 함께 도착한 사람이 있다니. 당시에도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도 정말 정말 감사한 일이다. 특히나 내가 중간에 점프를 해서 일정이 뒤죽박죽이었는데도 함께 시작하고 함께 도착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기적 같다.     


 

다음 편은 에필로그





여행 TIP

Q.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무엇을 하나요?     

     

1.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 앉아서도 찍고, 서서도 찍고 마음에 들 때까지 찍으세요~!     

     

2. 성당에 다니지 않더라도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미사를 드려봅니다.

- 12시 미사와 저녁 7시 30분 미사가 있는데 12시 미사는 향로 미사입니다.      

     

3. 순례자 사무실에 가서 순례 인증서를 받습니다.

- 무료, 거리를 표시한 인증서는 3유로

- 저녁에 가니깐 줄 하나도 없고 바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4. 기념품을 삽니다.

- 근데 산티아고 도착하면 기념품이 비싸집니다! 미리 살 수 있으면 미리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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