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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래블 Oct 15. 2021

구름을 품은 원시숲길 운탄고도 여행기 1편

여자 셋이 강원도여행



여행사에서 같이 일했던 줄리와 밤부를  오랜만에 만났다. 우리 셋이 여행가본적 한번도 없다고 다음에 여행가자는 얘기가 나왔다. 그러고 며칠 뒤 줄리가 한 링크를 보냈다.


운탄고도 트레킹 행사를 개최한다는 기사였다. '운탄고도'란 과거 석탄을 나르던 길을 트레킹 코스로 새롭게 재탄생시킨 것이었다.


사실 여행사에서 일하며 태백시, 정선군의 지역재생을 위한 관광상품을 개발하는 사업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때 이 동네의 웬만한 관광지는 다 가보았다. 그렇지만 줄리가 가자는데 어디로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무조건 고! 가자고 했다.


출발 일주일 전부터 정선, 태백의 날씨를 매일 확인했다. 둘쨋날은 괜찮은데 첫날은 비표시였다가 그냥 흐림이었다가 오락가락했다. 제발 비가 안오길 빌었다.



1. 무궁화호를 타고 사북역으로


출발하는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커텐을 걷고 창밖을 보았다. 흐리긴했지만 비가 올 것 같진 않았다. 신나서 청량리로 향했다.


플랫폼으로 들어온 열차에 올라탔는데 얼마 전 탔던 KTX와 완전 다른 느낌이었다. 조명도 어두운 것 같고 의자도 낡아보였다. 승객의 나이대도 높아보였다. 알고 보니 무궁화호를 타고 사북역까지 가는 것이었다.


덜컹덜컹 ~ 느릿느릿 ~ 창 밖의 풍경은 점점 강원도의 깊은 산 골짜기로 가득했다. 굳이 알프스까지 갈 필요가 없다고, 14,000원으로 융프라우 산악열차 분위기를 낼 수 있다며 우리만 신이 났다.

 


꼬박 3시간을 달려 사북역에 도착했다. 사북역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린 둘다 우산이 없었다. 비가 많이 내리지는 않아서 그냥 비를 맞으며 역 밖으로 나왔다. 날씨가 흐리고 비까지 내려서 그런지 역 앞 모텔과 전당포의 화려한 간판이 뭔가 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차를 가지고 온 밤부가 사북역 앞으로 우릴 마중나왔다. 밤부도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며 우리에게 걸어왔다. 등산화에 보라색 바람막이, 우산도 없이 아주 자유롭게 사북역을 걷는 그 모습이 이 곳에 사는 청년 같았다 ㅋㅋ 마치 그녀의 홈타운으로 초대받은 느낌이었다.



2. 점심으로 태백 물닭갈비


우선 점심을 먹기로 했다. 물닭갈비가 유명하다고 하여 물닭갈비를 먹기로 했다. 닭갈비 3인분에 우동사리 1개 그리고 볶음밥까지 볶아먹었다. 많을 것 같았는데 다 먹었다. 뜨듯한 방바닥에 앉아 배부르게 먹으니 슬슬 졸음이 몰려왔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져 다른 것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커피를 마시러 가기로 했다.

 



3. 몽토랑산양목장


원래는 하이원리조트 안에 있는 한옥카페 운암정에 가기로 했다. 비 오는 날 한옥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 운치있고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갔더니 화요일 휴무였다!!! 아뿔싸!!! 운암정은 그럼 내일 트레킹 끝나고 오자고 하고 정선의 다른 카페를 찾아봤다. 그런데 괜찮아 보이는 곳은 다 1시간거리에 있었다 ㅠㅠ 어떻게 하지 고민하다가 다시 태백시로 돌아와 몽토랑산양목장에 갔다. 날씨 좋은 날 오면 양들이 풀을 뜯어 먹는 야외에서 음료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우리가 간 날은 비가 와서 목장 안으로 들어가기는 힘들 것 같았다. 대신 카페 안에서 음료를 즐겼다. 나는 아포카토를 마셨다. 안그래도 비와서 추운데 아이스크림까지 먹으니 더 추웠다. 강원도는 정말 겨울이 빨리 오나보다. 어제까지만 해도 호수공원에 반팔입고 조깅하는 사람 많이 본 것 같은데 여긴 추워서 경량패팅을 가져오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에는 못 나가지만 카페 안에서 예쁜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저녁은 먹을 것을 사가지고 숙소로 가서 간단하게 먹기로 합의하고 카페를 나왔다. 그런데 계단 앞에 아기돼지들이 모여있었다. 너무 귀여웠다. 저멀리에는 하얀 토끼도 있고, 닭들도 봤다. 비가 와도 목장은 목장이었다. 신기했다.

 



4. 하이원리조트 


나이가 들어서 많이 먹으면 소화가 안된다고 점심에 먹은 닭갈비가 아직도 소화가 안된다것 같다고 하여 소화제를 하나 사고, 저녁으로 먹을 음식과 내일 트레킹 때 가져갈 물과 초콜릿, 과일 등을 마트에서 샀다.


정선은 하이원리조트의 나라 같았다. 그만큼 하이원리조트가 엄청 크고 화려했다. 호텔도 있고 콘도도 있고 워터파크, 스키장, 카지노까지. 바깥세상과는 단절된 놀이동산 같았다.

 


우리가 머무는 곳은 하이원리조트 마운틴콘도 디럭스룸이었다. 운탄고도 트레킹 참가자는 숙박비가 할인되서 저렴하게 예약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깔끔하고 방도 넓고, 화장실도 2개고, 난방도 잘돼서 바닥이 뜨듯한 것이 좋았다.


소화가 안되는 것 같다고 약국에서 소화제를 산 것이 무색하게 나는 진짬뽕을 뚝딱 해치우고 홈런볼을 끊임없이 먹었다. 홈런볼은 뭐랄까 입을 통해 뱃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입 안에서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먹었지만 내가 먹은 것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먹으면서 요즘 하고 있는 운동에 대해서 얘기했다. 밤부는 2주 동안 자가격리를 했는데 집에만 있으니까 너무 힘들어서 하루에 3시간씩 요가를 했다고 한다. 그렇게 2주동안 하니까 실력이 엄청 늘었다고 했다. 줄리는 일주일에 3번 그룹pt를 하고 pt 외에도 빡세게 유산소 운동을 한다고 했다. 운동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갑자기 운동 욕구가 생기면서 저녁 먹은 것을 소화할겸 다같이 운동을 하기로 했다. 거실에 요를 깔아놓고 요가를 하고, 다시 요를 접고 땅끄부부를 보며 옆구리운동을 했다. 정선 춥다고 난리였는데 운동을 했더니 후끈후끈 열이 올라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켰다.


아직 젊지만 20대 때와는 다른 몸의 변화를 느낄 때마다 마음이 불안하고 이렇게 늙어가는 건가라는 생각에 씁쓸해질 때가 있다. 그런데 나만 유독 그런게 아니라 내 친구도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여행의 첫날 밤이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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