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정선 운탄고도 트레킹
둘째 날은 여행의 하이라이트 운탄고도 트레킹을 하는 날이다.
운탄고도는 과거 석탄을 나르던 길을 트레킹 코스로 재탄생시킨 곳을 말한다.
우선 하이원리조트에서 고한역까지는 차를 타고 이동했다. 역에 차를 세워놓고 만항재로 이동하는 행사 셔틀버스를 탔다. 만항재는 우리나라에서 차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라고 한다. 곧게 뻗은 나무가 빽빽히 심어져 있고, 그 사이로 산책을 할 수 있도록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만항재에 도착했을 때는 안개가 자욱했다. 아침이라 춥기까지 했다. 만항재 구경은 뒤로 하고 우선 얼른 출발하기로 했다.
시작점에는 풍력발전기가 군데군데 가까이에 있었다. 풍력발전기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안갯속에서 소음을 내며 돌아가는 풍력발전기를 보니 예전에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우주전쟁>에 나온 세발 괴물이 생각났다.
트레킹 코스는 이렇게 길의 폭이 넓었다. 석탄을 나르던 길이다 보니 아무래도 차가 다닐 수 있도록 넓게 만들어진 것 같다. 코스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이런 식으로 되어 있다. 계속 비슷한 모양의 길을 걷기 때문에 단조로워서 아쉬운 면도 있다. 그러나 자전거를 타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길이라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니 점차 안개가 걷히고 맑은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분이 좋아져 같이 간 사람들과 노래를 부르며 걷기 시작했다. 만항재부터 도롱이 연못까지 한 4시간 30분에서 5시간 걸렸던 것 같다. 생각보다 트레킹이 길어지자 한곡으로 노래가 안 끝났다. K팝을 불렀다가 민요를 불렀다가 동요를 불렀다가 클래식을 불렀다가 정말 내가 알고 있는 온갖 노래를 불렀던 것 같다. 계속 걷기만 하니까 심심했다. 내가 이렇게 많은 노래를 알고 있다니 정말 신기했고, 인간의 뇌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드디어 트레킹의 종착지인 도롱이연못에 도착했다.
트레킹 안내서에 트레킹 예상 시간이 약 4시간이라고 나와서 트레킹이 끝나고 점심을 먹고 어제 못 간 카페도 가자고 얘기를 했는데 점점 시간이 지체됐다. 도롱이 연못에 도착할 때쯤 이미 녹초였다. 카페는 무슨 집에 갈 힘도 없었다.
도롱이연못은 숲 속의 굉장히 작은 연못이었다. 사람이 오지 않았다면 아마 동물들이 지나다니면서 목을 축였을 그런 작고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도롱이 연못은 솔직히 사진빨을 아주 잘 받는 곳인 것 같다. 우리가 도롱이 연못에 도착할 때쯤 다시 하늘을 흐려져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기대보다 작고 소박하고 평범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사진을 찍었을 때는 연못에 비친 나무의 모습까지 꽤 근사한 장면이 나왔다.
이곳 근처에서 캠핑도 많이 한다고 한다. 모든 것이 갖춰진 캠핑장이 아니라 이런 곳에서 하룻밤을 자는 것은 어떨까 궁금하다. 무서울 것 같기도 하면서 맑은 날엔 별도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을 것 같기도 하다.
도롱이 연못에서 잠시 쉬다가 곤돌라를 타고 다시 하이원리조트로 내려가기 위해 이동했다. 금방 가면 될 줄 알았는데 한 40분 이상 오르막을 올라 걸어가야 했다. 오후 3시에 가까워진 시간으로 이미 점심시간은 한참 지나있었다. 간식으로만 허기를 채우며 몇 시간을 걸었던 터라 정말 많이 지쳐있었다.
밤부가 비상 식량으로 가져온 몇 개의 과자까지 알뜰하게 나눠 먹었다. 마지막 과자를 밤부에게 건네받았을 때는 정말 밤부에게 고마웠다. 이거라도 없었으면 진짜 너무 힘들었을 것 같았다.
++ 참고로 하이원리조트에 머문다면 운탄고도 트레킹 코스를 모두 가기보다는 곤돌라를 타고 올라와서 스카이 1340을 구경하고 도롱이연못까지 살짝 트레킹을 하고 다시 곤돌라를 타고 내려가는 것을 추천한다.
드디어 곤돌라가 있는 스카이 1340에 도착!
아마도 해발고도가 1,340m여서 이렇게 이름을 붙인 것 같다. 정말 끝없이 산이 펼쳐져 있었다. 저 ~~~ 끝까지 산! 평소에는 우리나라 면적이 작다고만 생각했는데 굽이굽이 펼쳐진 산을 보니 우리나라가 정말 깊고 넓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후 3시 30분까지 곤돌라가 운영한다고 하는데 겨우 시간에 맞춰서 곤돌라를 타고 내려 올 수가 있었다.
다시 고한역으로 내려오면서 고한역에서 제일 가까운 밥집이 어딘지부터 검색했다. 그리고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오후 4시쯤? 문을 열고 가게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누워서 주무시고 계신 것이었다. 문 여는 소리에 아주머니가 일어나셨고 영업 중이라고 하여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점심도 아니고, 저녁도 아니고 왜 이 시간에 밥을 먹으러 온 건지 물으셨다. 운탄고도에 갔는데 이렇게 트레킹이 오래 걸릴 줄 몰랐다고 얘기를 드렸다.
곧 뜨끈뜨끈한 순두부찌개가 나왔다. 반찬으로 고등어구이도 나왔다. 아 트레킹하고 나서 배고플 때 먹어서 그런 것일까 엄청 엄청 맛있었다.
줄리는 고한역에서 기차를 타고 청량리로 갔다. 밤부는 차를 타고 집으로 가기로 했다. 나는 청량리로 가면 다시 전철을 타고 1시간을 더 가야 하기 때문에 집 앞 버스터미널로 바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기로 했다.
시외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우선 고한역에서 사북고한공용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타야 했다. 버스정류장에 다행히 버스 운행 시간표가 붙어있었다. 그런데 시간표를 아무리 봐도 그래서 버스가 언제 온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동네 지명이 익숙하지 않았고, 또 평소에는 버스의 실시간 위치와 도착 예정 시간이 뜨는 버스 어플을 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일단 사진을 찍어 정류장 앞 카페로 들어갔다. 어차피 시외버스 시간이 한참 남았기 때문에 앉아서 버스시간표 분석을 해볼 생각이었다. 핫초코를 하나 시키고 시간표에 나온 지명들을 지도에 하나씩 다 검색해봤다. 검색해보니 모든 정류장의 도착 시간을 표시한 것이 아니고 몇 군데만 표시한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있는 버스 정류장과 가장 가까운 정류장의 도착시간을 확인하고 그에 맞춰서 정류장으로 나갔다.
그리고 예상했던 시간에 버스가 나타났다!!
고한사북공용버스터미널에 오니 예전에 와봤던 터미널이다. 그때 이렇게 작고 오래된 터미널에 다 와보다니 놀랐는데 또 여기에 오게 되었다. 사람 인생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운탄고도 여행기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