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 이내 북한산 등산코스
작년 4월, 성당에서 알게 된 J언니, C오빠, Y동생이랑 같이 북악산에 다녀왔었다. 다음에 또 가자고 하고 헤어졌는데 코로나와 나의 수험생활 시작으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1년 8개월이 지난 지금 어느새 우리가 함께 있던 카톡방은 사라져 있었다.
내가 수험생활을 끝내고 등산을 다닌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자 J언니가 같이 등산 가자고 댓글을 달았다. 처음엔 그냥 안부인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댓글과 DM이 오가다가 진짜로 등산 날짜를 잡게 되었다. C오빠에게도 연락해 보니 마침 그날 시간이 된다고 하여 같이 가기로 했다. 날짜를 잡고 북한산으로 목적지까지 정하고 나니 갑자기 산행이 너무너무 기대되었다♥
백운대까지 올라가기는 너무 힘들 것 같아서 보다 쉬운 코스로 가기로 했다. 다들 사는 곳을 고려하여 3호선 불광역 쪽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족두리봉을 시작으로 향로봉, 비봉까지 가는 비봉능선을 많이 추천했다. 우리는 일단 족두리봉까지 올라가 보고 괜찮으면 향로봉, 비봉까지 가기로 했다.
3호선 불광역에서 시작하려 했으나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6호선 독바위에서 시작하여 족두리봉까지 올라가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고 한다. 그래서 6호선 독바위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오전 10시가 넘은 시각. 한산한 독바위역에 내리는 승객 10명 중 7~8명은 등산복을 입고 있었다. 나도 역시 등산화에 등산가방을 메고 있었다.
내가 가장 먼저 도착하여 1번 출구 바로 밑에서 기다렸다. 등산객이 많이 찾는 역이라 그런지 지하철에 이렇게 커다랗게 북한산의 여러 등산코스가 소개되어 있는 지도가 있었다. 언니, 오빠를 기다리며 우리가 오르게 될 봉우리를 찾아보았다. 저 왼쪽 끝에 족두리봉, 향로봉, 비봉이 표시되어 있었다. 커다란 북한산의 정말 한쪽 끝이었다.
언니, 오빠를 만나 1번 출구로 나왔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는데 한 등산객이 건너편 골목을 따라 올라간다. 저 사람을 따라가면 되겠다 하고 건너갔다. 그 사람도 우리가 따라오는 걸 느꼈는지 갈림길에서는 뒤를 돌아보며 이쪽으로 오면 된다고 안내를 해주셨다. 우리가 "어? 이쪽 길 맞아?" 살짝 의심하려 하면 지름길이라고 여기가 맞다고 확신의 어조로 알려주셨다. 근데 진짜로 지름길이 맞았다. 수리 초등학교 담장을 따라 옆길로 가니 등산로로 이어졌다. 초등학교 담장을 따라 걸으며 여기 초등학생들은 매일 이 길을 오르니 정말 건강하겠다고 생각했다. 초반부터 경사가 가팔랐다.
그런데 족두리봉이 정말 등린이를 위한 코스가 맞는 것이 분명한 게 산행을 시작한 지 몇 분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저 아래로 도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 더 걷자 이번에는 북한산의 멋진 산새도 감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걷기 시작한 지 한 시간도 채 안돼서 족두리봉 정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한 시간도 안 올라왔는데 이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니. 가성비 최고인 등산코스였다. 날씨도 한몫했다. 가까운 불광역 근처는 물론 한강, 남산타워, 저 멀리 김포와 일산까지 보였다.
산 위에서 바라보니 서울 시내에 아파트는 물론 산도 참 많았다. 굽이 굽이 흐르는 산 사이로 도시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 멋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인생 사진 몇 장 건질 수도 있을 것 같은 포토 스팟이었다. 그러나 사람도 많고, 바람도 많이 불고, 무엇보다 정상 위 바위가 울퉁불퉁하여 가만히 서있는 것도 괜히 무서웠다. 이곳에 온다면 장갑, 등산화는 필수다. 바위를 타고 올라가야 해서 손도 많이 써야 하고, 운동화는 자칫 미끄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족두리봉까지 너무 순조로워서일까 향로봉까지도 가기로 했다. 족두리봉에서 본 풍경도 멋지긴 했지만 여기서 끝내기엔 산행이 너무 짧아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족두리봉에서 향로봉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독바위역에서 시작한 우리와 달리 불광역에서 시작한 사람들이 합쳐지면서 갑자기 사람이 많아졌고, 경사도 가팔랐다. 그래도 올라가다 뒤를 돌아보니 방금 우리가 올라갔던 족두리봉이 보였다. 풍경 하나는 정말 끝내줬다.
올라가다 몇 차례 쉬기를 반복했다. 가파른 바위를 올라가야 하기에 두 손, 두발을 써야 하는 구간이 꽤 있었다. 이때 체력이 비슷한 사람들과 와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분 안 걸은 것 같은데 벌써 지쳐서 내가 먼저 쉬었다 가자고 말하면 서둘러서 가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 없이 다들 쉬었다 가자고 해줬기 때문이다. 향로봉에 도착하기도 전에 비봉은 못 가겠다고 말하며 벌써 내려가서 무엇을 먹을지에 대해 한참 얘기를 나눴다. 삼겹살, 짬뽕, 칼국수를 시작으로 서로 가봤던 서울 맛집 정보를 교환했다.
그리고 드디어 향로봉에 도착! 향로봉은 족두리봉에서의 풍경과 살짝 달랐는데 산이 깊어져서 주변에 도시보다는 산이 더 많이 보였다. 나는 특히 밝게 드러난 바위와 그 바위 사이로 우뚝 솓은 나무들이 인상적이었다. 정말 수묵화의 한 장면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깝게는 우리가 가지 못한 비봉이 보였다. 가까운 거리라 향로봉까지 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봉도 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 셋은 전혀 아쉬운 마음은 1도 없이 내려가기로 정했다.
우리의 등산코스는 결국 독바위역에서 시작하여 족두리봉을 거쳐, 향로봉까지 올랐다가 비봉으로 가는 길에서 금선사 쪽으로 하산하게 되었다. 총 3시간 정도 걸렸다. 이북5도청사까지 내려가면 버스도 있고, 택시도 부를 수 있다. 우린 택시를 잡아서 불광역 쪽으로 가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점심으로는 중국요리를 먹기로 했다. 누룽지탕이 유명한 중화원으로 갔다. 맛집답게 웨이팅이 있었지만 점심이 한참 지난 시간이라 그런지 줄이 길지 않았고, 꽤 회전율이 빨라서 기다리기로 했다. 다른 곳을 더 둘러볼 힘도 없었다. 우리는 누룽지탕1, 탕수육 작은거 1, 짬뽕 1을 시켰다.
중화요리라서 자극적인 맛을 상상했는데 생각보다 심심한 맛이라 나는 더 좋았다. 그리고 밥이 들어가 있어서 든든한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 탕수육이 제일 맛있었다.
짬뽕은 얼큰한 국물을 원해서 시켰다. 누룽지탕은 생각보다 국물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면이 되게 얇고 양도 많았다. 맛있게 먹었다.
3시간 동안 등산을 하면서 끊임없이 수다를 떨고, 또 식당에서 줄을 기다리면서도 한참을 떠들었는데도 뭔가 더 대화할 것이 남아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길 건너에 있는 스타벅스에 갔다. 사람이 꽉 차있었는데 마침 한 테이블에서 사람들이 일어나길래 얼른 그 자리에 앉았다. 운이 좋았다!!
음료를 하나씩 시키고 제대로 된 토크타임을 가졌다. J언니가 몇 개월 동안 사주 공부를 했다면서 사주를 봐줬다. 나는 10년 후에나 결혼할 수 있다고 했다. 놀랍지 않았다. 그래도 결혼할 수 있다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직장이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미래에 대한 생각이 많은 것 같았다. 요즘은 재밌는 일도 없다고 했는데 그래도 오늘은 재밌었다고 했다. 나도 그랬다 ㅎㅎ
다음에는 인천 계양산에 갔다가 목동에 완전 맛있는 고깃집에 가자고 했다. 아니면 C오빠 회사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빠르면 다음달일 수도 있고, 어쩌면 또 이렇게 2년 뒤에나 볼 수도 있고, 어쨌든 만날 것 같다.
등산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