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기 왜 왔지?!' 젠장, 산티아고 순례기
스페인 론세스바예스 ▶ 스페인 주비리
아침에 일어났다.
직원들이 복도를 걸어 다니면서 ‘알렐루야~’ 노래를 크게 불렀다. 기상송인가 보다. 성당 캠프에 온 기분이었다. 꽤 잘 잤다. 어제 워낙 많이 걸어서 그런지 나름대로 잘 잔 것 같다. 건너편 1층 침대에서 잔 캐나다 사람이 자기네 나라에서 가져온 메이플 쿠키라면서 먹어보라고 줬다. 존맛탱이었다. 내가 생각보다 영어를 잘 알아들어 뿌듯했다.
그렇게 많은 순례자들이 있는데 아침에 화장실이 붐비지 않는다. 2층을 사용한 순례자들 수만 대충 잡아도 100명이다. 2층 여자화장실엔 샤워 칸 3개, 세면대 4개, 화장실 칸 3개밖에 없다. 그런데 붐비긴커녕 한적한 느낌. 신기하다. 하긴 나도 아침에 일어나 물세수에 양치만 하고 로션은 그냥 대충 침대 위에서 바르고 거울도 안 보고 그냥 출발한다.
짐을 챙겨 7시쯤 출발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둡다. 걷기 위해서는 플래시로 길을 밝혀야 했다. 어제 처음 만난 한국인 C가 내 뒤를 걸으며 불을 밝혀주었다. 조금 걷다 보니 bar가 있어 거기서 아침을 먹었다. 초코가 든 페스츄리와 카페 콘레체(카페라테)를 마셨다. 한국에선 잘 마시지도 않는 커피인데 여기서 마시니 어찌나 맛있던지. 뜨끈해서 해장한 기분이었다. 맛있다를 연발하며 커피를 마셨다. 빵도 맛있었다. 프랑스 빵은 너무 딱딱한데 스페인으로 넘어보니 빵이 부드러워 좋다.
걸음이 빠른 C와 호호 아저씨를 먼저 보내고 천천히 걸었다. 오늘도 길이 아름다웠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아름답다. 특히 마을마다 있는 집들이 예뻤다. 아파트가 없고, 다 단독주택에다가 창문에는 빨간 꽃이 핀 제라늄이 예쁘게 놓여있다. 집들은 통일성을 가지면서도 자세히 보면 같은 모양이 없다. 예전에 알쓸신잡에서 같은 재료를 사용하되 모양을 다르게 하면 도시의 모습이 아름다워진다고 한 얘기를 들은 것 같다. 스페인 시골마을이 딱 그런 느낌이다.
걷다가 만난 프랑스 아주머니와 얘기를 나눴다. 그녀는 산티아고를 걷는 게 두 번째라고 한다. 처음에는 힘들어서 도중에 포기했고, 다시 준비를 해와서 걷는다고 했다. 그녀는 한국영화를 좋아한다고 했다. 최근 본 한국영화를 설명해주는데 나는 그게 뭔 영화인지 모르겠다. 아마 ‘버닝’을 말한 것 같다. 길을 같이 걷다가 이게 아몬드라고 먹어보라고 도토리같이 생긴걸 몇 개 주워 주기도 했다.
어느새 산티아고 순례길의 동행자가 된 재재언니와 아롱언니와 함께 오늘 머물 마을인 주비리에 도착했다. 아름다운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 입구에 작은 개울이 흐르고 아치형의 다리를 건너면 마을로 들어서게 된다. 우리는 다리 바로 앞에 있는 사설 알베르게에 묵기로 했다. 먼저 마을에 도착한 C가 이 알베르게가 마을 초입에 있어 다음날 출발하기도 좋고, 시설도 괜찮다며 추천해줬기 때문이다.
그렇게 알베르게에 짐을 풀고 샤워를 했다. 점심도 저녁도 먹기 애매한 시간이었지만 너무 배고파서 식당에서 피자와 소시지와 샹그리아를 시켜먹었다. 맛있었다. 마을 구경을 하다가 저녁을 먹기 위해 장을 봤다. 생장에서 만난 한국인들과 함께 요리를 해 먹기로 했다. 요리를 먹고 취침~
계속...
Q. 오늘 잘 알베르게 선정은 어떻게 하나요? 미리 알아가야 하나요?
사람마다 다르다. 전날 미리 어디까지 걸을지 정하고 알베르게도 예약하고 출발하는 사람도 있으나 나 같은 경우는 미리 정하는 걸 싫어한다. 그냥 내 여행 스타일이다. 약속도 미리 잡는 걸 싫어해서 금요일 퇴근 전 번개로 놀 사람 구하는 사람이 나다. 그래서 동행 없이 혼자인 경우에는 마을에 도착하면 괜찮은 알베르게 없나 슬쩍 둘러보고 잘 곳을 정했다. (앞에 걷는 순례자가 어떤 알베르게로 가나 스리슬쩍 쫓아가서 그 알베르게에서 잔 적도 있다.) 알베르게 목록은 출발 전 순례자 사무실에서 받을 수 있다. 구글에 검색하면 위치는 바로 나오니까 찾기 어렵지 않다. 같이 다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가고 싶은 곳으로 따라가기도 했고,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제가 간 곳 좋아요. 여기로 오세요.' 해서 따라가기도 했다.
Q. 순례길을 걸으며 아침식사는 어떻게?
숙소에서 아침 식사를 제공해주는 곳도 있고, 제공이 안 되는 곳도 있다. 제공을 하더라도 대부분 유료다. 따라서 나는 아침에 준비를 끝내자마자 숙소에서 아침을 먹지 않고 바로 출발했다. 그리고 걷다가 처음 만나는 bar에서 쉬는 겸 카페 콘레체에 크로와상을 아침으로 먹었다.
그래야 아침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아침에 많이 걸어야 오후 힘들 때 여유롭게 걸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