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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래블 Jul 06. 2019

7. 산티아고 순례길, 걷는 것보다 힘든 이것은?

'내가 여기 왜 왔지?!' 젠장, 산티아고 순례기


걷기 4일차 _ 스페인 팜플로나(Pamplona) ▶ 스페인 푸엔테 라 레이나 (Puente la Reina) : 23.7km




오늘도 밤을 새우고...


코 고는 소리에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와 근데 이번 코골이는 진짜 심했다.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침대에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옆에서 공사하는 느낌... 귀가 아플 정도... 나만 그런 게 아니었나 보다. 같은 방을 쓴 아롱 언니와 재재 언니가 방에서 나와 부엌으로 간다. 나도 따라 나갔다. 부엌은 아주 조용했다. 부엌에 있는 쇼파에 누워 잠을 청해 본다. 근데 부엌은 너~~~~무 추웠다. 이불까지 챙겨 나올 겨를이 없었다. 방은 너무 시끄러웠고, 부엌은 너무 추웠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그렇게 새벽을 보내다가 아침을 맞이했다.      


베드버그는 당연히 없을 줄 알았는데 아침에 일어나 같이 머문 한국인 남자분과 얘기하니 지난밤 베드버그에 물려 한숨도 못 잤다고 한다.      


하아. 나는 산티아고 하면 걷는 게 힘든 건 줄 알았는데 잠자리가 훨씬 힘들다. 항상 혼자 자다가 수많은 사람들과 한 방에서 자려니 정말 힘들다




사진으로만 봤던 그 풍경 속으로


어쨌든 오늘도 길을 나선다. 일어나면 자동적으로 가방을 싸매고 밖으로 나와 걷기 시작한다.     

큰 도시 팜플로나를 빠져나와 용서의 언덕을 향해 걸었다. 나무가 많지 않고 풍력 발전기가 많이 보이는 언덕이었다. 용서의 언덕 제일 위에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상징 중 하나인 철로 된 동상이 서있다. 사진으로 봤던 그 풍경이었다. 내가 갈 수 있을까 싶었던, 사진으로 봤던 그 풍경 속에 내가 들어와 있었다. 


순례길 방향을 알려주는 노란 화살표 



용서의 언덕으로 향하는 길


     


재재 언니와 아롱 언니가 함께 있어서 좋았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처음에는 외국인 친구를 사귀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있었는데 없어졌다. 굳이 많은 친구를 사귈 필요가 없다. 마음 맞고 편한 사람 1~2명이면 충분하다. 한국인이라고 다 마음이 맞는 것도 아닌데 재재 언니와 아롱 언니는 잘 맞아서 다행이다. 참 고맙다. 



용서의 언덕


    


걸으면서 하는 생각 1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일까. 왜 내가 이 길을 걷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걸으면서 하는 생각 2       


그러다가 음식을 생각한다. 뜬금없이 오꼬노미야끼가 먹고 싶었다. 그리고 또 먹고 싶은 음식을 생각했다. 김치찜이랑 직장 동료인 밤부가 가끔 만들어주는 빵이 먹고 싶었다....... 엥?! 빵이라니!! 유럽에 와서 빵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니!! 얼마나 제대로 못 챙겨 먹었으면 ㅠㅠ 아, 가난한 순례자지만 이 순간, 먹는 것만큼은 제대로 챙겨 먹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원 없이 먹자! 먹기라도 잘하자!    





걸으면서 하는 생각 3 


걷다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까도 생각했다. 

항상 생각하는 맛있는 음식, 좋은 날씨, 좋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성당에서 바이올린 반주를 하고, 성서모임 했던 것이 좋은 기억이라서 그런 활동도 앞으로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렇게 작고 사소한 것에 집중하는 것이 행복한 인생을 사는데 훨씬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스페인 시골마을의 주민들을 옅보니 부자가 아닌데도 우리보다 삶의 질이 더 높아 보였는데 그 이유가 인테리어와 요리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얀 레이스와 빨간 꽃이 핀 제라늄으로 꾸민 창틀, 아침마다 배달되는 맛있는 빵. 정말 사소하고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이런 것들이 그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용서의 언덕을 지나자 태양이 머리 위로 올라갔다. 오르막이 아닌데도 태양이 뜨거워지니 걷는 것이 힘들었다. 걷다가 힘들어서 bar에 들려 멜론과 맥주를 한 잔 마셨다. 이후에도 태양이 너무 뜨거워 쉬지 않고 알베르게까지 후딱 걸어갔다.     


bar에서 마시는 맥주와 멜론. 멜론 맛있다. 




순례자 메뉴


'푸엔테 라 레이나'라는 오늘 머물 마을에 드디어 도착했다. 마을 초입에 있는 알베르게에서 머무는데 코골이를 견딜 수 없어 한국인 여자 4명이서 4인실 한 방을 쓰기로 결정했다.     


방을 잡고 나서 저녁을 먹기 위해 알베르게에서 조금 떨어진 시내로 나갔다. 원래 가려고 한 식당이 문을 닫았다. 저녁 9시나 되어서야 문을 연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다른 가게에 갔다. 순례자 메뉴를 팔고 있었다. 3코스로 어니언 스프와 송아지 스테이크,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어니언 스프는 우리나라의 육개장과 비슷한데 건더기가 부실한 육개장 같다.ㅋㅋ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순례자 메뉴를 먹는데 나쁘지 않았다.       


   

순례자 메뉴



혼자였다면 어두운 밤에 여기까지 나와 밥 챙겨 먹기 힘들었을 것 같다. 보고 싶은 사람이 많지만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밤하늘에 별이 빛났다. 예쁘다.     






산티아고 순례길 Tip


Q. 순례자 메뉴가 무엇인가요?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는 레스토랑에서는 보통 순례자 메뉴를 판다. 가격은 약 8~10유로 정도다. 기본으로 식전 빵과 와인이 제공되고 그 외에 3코스로 진행된다. 에피타이저로 샐러드, 스프, 스튜 등의 메뉴 중 한가지가 제공되고, 메인 메뉴로 소고기, 치킨, 돼지, 생선 요리 등이 나오고, 디저트로 요거트, 아이스크림, 초콜릿, 과일 등이 나온다. 맛은 그냥 그렇다. 스페인의 맛이라고는 볼 수 없는 메뉴다. 하지만 저렴하고 걸어오느라 피곤이 쌓인 상태에서 매번 저녁을 차려 먹을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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