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애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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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성

공간을 떠도는 비인격체들의 차가운 기계음. 위와 아래, 옆으로 끝없이 줄지어져 있는 컨테이너. 높은 컨테이너에 붙여진 하얀색 이름표. 그것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고,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었다.


무엇이 컨테이너를 끝없는 것으로 만들었는가. 무엇이 컨테이너를 세상의 핵심으로 만들었는가. 그 원인은 공간을 관찰하며 모든 것을 통제하는 거대한 기계다. 기계는 세상과 인간에 맞춰 새로운 컨테이너를 하염없이 생성해 낸다. 보이지 않게. 또한 인지하지 못하게. 그러나 기계가 생성해 낸 컨테이너들은 유동적으로 폐기되지 않고 쌓여, 아래의 고정된 컨테이너를 시야에서 가려지게 한다.


결국 고정된 컨테이너는 아득한 아래에 갇힌다. 컨테이너로 가득한 장소. 철 내음이 약하게 느껴지는 곳.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다. 어쩌면, 고정된 컨테이너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계는 고정된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계가 고정된 컨테이너를 부숴 보이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고정된 컨테이너란 없었던 것일까. 거대한 기계는 오늘도 편의에 따라 컨테이너를 생성한다.


기계가 잠깐 멈추는 낯선 소리가 들리고, 3개의 컨테이너가 철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하나는 어두운 초록색. 하나는 밝은 하늘색. 하나는 건조한 주황색. 거대한 기계가 3개의 컨테이너를 다시금 확인한다. 초록색은 맥락에 따라 내용물이 달라지는 컨테이너. 하늘색은 세상에 따라 내용물이 달라지는 컨테이너. 주황색은 인간에 따라 내용물이 달라지는 컨테이너. 모든 컨테이너의 보이지 않는 내용물은 계속해서 변화한다.


인간은 컨테이너 앞에서 더 이상 웃지 않는다. 웃는 대신, 정확한 눈으로 외면하는 것을 택했다. 질책하는 자는 없다. 책망하는 자도 없다. 그저 모든 컨테이너로부터 눈을 돌리며 말한다. 바꿀 수 없다. 그 말이 고요한 공간에 울리는 순간, 기계는 더 활발히 컨테이너를 생성한다. 거기에 인간을 바라보는 거대한 기계가, 만들어진 컨테이너를 고정된 컨테이너라고 착각하게 한다.


컨테이너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몇몇 인간들은 거대한 기계를 끝까지 바라보는 것을 택했다. 적어도, 컨테이너가 생성되는 과정을 보기 위해서. 거대한 기계 앞에 눈 감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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