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여름의 맛
어렸을 때 살았던 외갓집은 집 근처 과수원에서 사과농사를 지었다. 여름이면 과수원에 가져갈 새참 준비로 바빴다. (봄에도, 가을에도 바빴을 텐데 내 기억에는 항상 여름이었다.) 가스레인지에는 큰 냄비 가득 멸치 육수가 끓고, 도마에는 가늘게 채 썬 노란 계란 지단이, 싱크대 위 채반에는 하얀 소면 덩이가 소복이 쌓여 있었다. 집 안 가득 비릿하고 구수한 육수냄새가 퍼지면 나는 부엌으로 달려가 빠른 손놀림으로 음식을 챙기는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가 보자기를 덮은 쟁반을 머리에 이고 부엌 쪽문으로 나가면 나도 급하게 슬리퍼를 찾아 신고 뒤를 따랐다. 앞서 가던 엄마는 몇 번이나 돌아보며 집으로 돌아가라고 채근하지만 나는 못 들은 척 졸졸 쫒아갔다. 걸어가는 내내 머리 위로 뜨거운 오후햇살이 쏟아지고, 그늘 한 점 없는 골목은 눈부시게 환했다. 과수원 앞에 도착해서야 엄마는 포기한 듯 나를 불렀다. 일하던 어른들이 하나, 둘 모이면 엄마는 챙겨온 그릇에 소면을 넣고 육수를 부었다. 그럼 나는 옆에서 계란 고명을 한 꼬집씩 올렸다. 어른들이 국수를 먹기 시작하면 나도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엄마가 말아 준 국수를 허겁지겁 맛나게 먹었다.
더운 여름날 오후, 나른한 몸을 누이면 종종 그 날의 풍경이 떠오른다. 소복이 쌓인 소면 덩이, 양은 쟁반에 그려진 화려한 꽃, 엄마 머리 위 쟁반에 반사 되던 볕살의 반짝임, 과수원에 무성히 자라던 들풀의 진한 풀 냄새. 마치 지금 눈앞에 보이는 듯 싱그러운 여름 풍경이 생생하다. 언제 떠올려도 기분 좋은 추억이지만 요즘은 그 풍경 너머 미처 보지 못 한 것들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펄펄 끊는 물에 소면을 삶느라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 무거운 쟁반을 이고 가느라 욱신거리는 허리, 다들 맛나게 국수를 먹을 때 멀거니 아이를 쳐다보는 지친 눈. 내가 매일 끼니를 만들고, 두 아이를 기르지 않았다면 몰랐을 엄마의 품.
이제야 온전히 맞춰진 퍼즐그림을 발견한 듯 내가 기대고 있는 누군가의 품에 대해 생각한다. 결국 나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걸, 우린 모두 누군가의 품에 기대 살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낀다.
매일 뉴스에서 혐오와 차별을 읽을 때마다 더 자주, 더 오랫동안 누군가의 ‘품’에 대해 생각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