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블럭놀이
아기가 블럭을 하나, 하나 집어 벽돌을 쌓듯 차곡차곡 쌓는다. 아이는 단순한 놀이가 지겹지도 않는 지, 벌써 몇 분 째 계속 블럭을 쌓아 올리고 있다. 나는 아이의 새로운 모습이 귀엽고 신기해서 소파에 앉아 빌딩처럼 높아지는 블럭 조각을 쳐다본다. 점점 높아진 블럭 빌딩이 아이 키만큼 커지자 좌우로 휘청거리며 위태롭게 흔들린다. 나는 조급한 마음에 블럭을 더 쌓으면 무너질테니 이제 그만 쌓으라고 아이에게 소리친다.
아이는 내 말을 무시하듯 노란 블럭을 맨 꼭대기에 또 얹는다. 그 위에 파란 블럭, 빨간 블럭. 이제 초고층 블록 빌딩은 점점 더 크게 좌우로 흔들리며 무너질 듯 무너지지 않은 채 간신히 서있다. 나는 곧 무너지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이를 쳐다본다. 아이는 해맑게 웃더니 갑자기 손을 들더니 블록 빌딩 옆구리를 날렵하게 친다. 그 한 번의 손짓에 블럭은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아이는 까르르 웃기 시작하고 나는 바닥에 쏟아진 색색의 블럭을 황망하게 바라본다.
“왜 열심히 쌓은 블럭을 무너뜨렸어?”
“부수려고 쌓은 건데.”
나는 열심히 쌓은 블럭이 무너지면 아이가 울지 않을까 싶어 조마조마 쳐다보는데, 처음부터 부수려고 쌓아 올렸다니……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이는 다시 바닥에 앉아 흩어진 블럭 조각을 쌓는다. 몇 분 동안 숨죽이며 자기 키 만큼 블럭을 쌓고, 또 단숨에 부숴버린다. 아이는 몇 번이고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와르르르르.
수 십 개의 블럭이 무너지면서 내는 경쾌한 소리. 나는 그 소리를 몇 번이나 듣고 서야 아이 말이 이해가 됐다. 블럭을 높이 쌓는 것만 즐거운 놀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에게는 블럭을 단숨에 무너뜨리는 것도 똑같이 즐거운 놀이였다.
꽤 오랫동안 삶은 뭔가를 차곡차곡 쌓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수록 돈도, 경험도, 작업도, 블록 조각처럼 차곡차곡 올려 더 많이, 더 높이 쌓고 싶었다. 내가 쌓는 것만 신경 쓰며 더 많은 블럭을 올릴수록 오히려 삶은 휘청대고 위태로웠다. 나는 내가 쌓은 것이 무너지지 않게 버티느라 항상 불안하고 날카로웠다.
지금 내 앞에 앉아 정성껏 블럭을 쌓고, 부수는 아이처럼 삶도 어느 순간엔 부수고, 버리고, 비워낼 때 즐겁고 자유로워 질 수도 있겠다. 요 몇 달 바닥까지 가라앉았던 것도 내 기대만큼 쌓이지 않는 일들에 집착했기 때문이었다.
삶이란 차곡차곡 쌓는 게 아니라 쌓고 부수고, 쌓고 부수며 끝내는 비워내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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