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주고 안길 수 누군가가 되기를.
겨울이면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이는 그곳이 있다. 그곳엔 쥰이 윤희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가 있고, 그 편지를 대신 부치는 그녀의 고모 마사코가 있다. 마사코는 말한다. ‘눈이 언제쯤 그치려나?’ 쥰은 고모의 말이 무의미한 기대라고 생각한다. 쥰에게 그곳은 본래 눈이 그치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봄이 오리라는 기대는 그저 사치일 뿐이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겨울 속에 머물고 있는 쥰에게 마사코는 봄을 선물하고 싶어 한다.
겨울이지만 눈이 오지 않는 이곳이 있다. 여기엔 윤희에게 온 편지를 대신 읽는 그녀의 딸 새봄이 있다. 그리고 고단한 하루를 끝내고 전봇대에 숨어 담배를 태우는 윤희가 있다. 윤희에겐 카메라가 있었다. 그녀를 대학에 보내주지 못한 미안함에 어머니가 사준 카메라다. 그 미안함은 분명 윤희에 대한 사랑에 바탕하고 있다. 고로 카메라는 사랑을 전달하는 도구다. 윤희가 그 카메라로 찍은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쥰)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사진을 찍지 못하게 되었을 때 카메라는 고장 났다. 윤희가 카메라를 잘못 다룬 탓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찍을 수 없는 카메라는 오히려 고장 나는 것이 마땅해 보인다. 아마 그때부터 윤희는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것 같다.
새봄은 윤희의 고장난 카메라를 쓰고 있다. 새봄은 아직 상처 받지 않았기 때문에(?) 카메라는 작동한다. 카메라를 다룬다는 것은 사랑을 배워나가는 것과 같다. 고로 새봄은 윤희에게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카메라를 조작할 줄 모르는 경수에게 새봄이 작동법을 알려준다. 고로 경수는 새봄을 통해 사랑을 배웠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특정 상대방을 담아내는 것. 담아낼 수 있는 것. 담아내려 하는 것. 새봄은 카메라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을 찍는 기쁨을 다시 윤희에게 알려주고 싶다.
윤희의 어머니는 윤희에게 카메라를 선물하며 사랑을 알려주었다. 시간이 흘러 어머니는 없고 그 자리는 딸인 새봄으로 채워졌다. 새봄은 윤희에게 사랑을 되찾아주려 한다. 고로 새봄은 윤희의 어머니와 같은 존재다. 윤희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고 또 다른 어머니를 낳았다. 어머니의 기억은 딸에게로. 딸의 기억은 또 그녀의 딸에게로 이어진다. 사랑과 상처의 기억이 이어진다. 서로의 상처를 서로의 사랑으로 채워주며 끊임없이 반복된다. 모녀의 관계는 역할을 바꾸어가며 끊임없이 반복되어 하나의 신화처럼 기능한다.
쥰은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윤희를 떠올렸다. 아버지 때문에(?) 쥰에게 사랑은 사랑으로 기억되지 않고 상처로 기억된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상처를 통해 사랑을 떠올렸다. 마사코(고모)가 쥰을 위로하는 방식은 ‘상처를 통한 상처 안아주기’처럼 보인다. 아버지 장례 후에 밤늦게 돌아온 쥰에게 마사코는 팔을 벌려 안아달라고 한다. 안아달라는 것은 안아주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안기면서 안는다. 또는 안으면서 안긴다. 안고 안기는 것은 정적으로 보이지만 쉬지 않고 그 역할을 바꿔가는 것의 연속이다. 안기면서 위로받고 안아주면서 위로해준다. 안기면서 위로해주고 안아주면서 위로받는다. 상처 입은 사람이 상처 입은 사람을(에게) 안아주는 것(안기는 것)이 마사코가 쥰에게 주는 위로다. 그 위로가 가능한 까닭은 마사코 또한 상처를 받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 주변에 포옹을 자주하는(?) 키가 가장 큰 친구와 가장 작은 친구가 있다. 키가 가장 큰 친구는 항상 ‘엥기라(안겨라).’라고 말하지만 안아달라고 말하는 것 같다. 안기고 싶어 하며 ‘안겨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키가 가장 작은 친구는 그 반대다. 누구를 안아도 안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안아주고 있다. 안기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이들이 그에게 안기고 그는 안아주고 있다.
료코는 쥰에게 당신과 있으면 왠지 모르게 편안하고 본인과 쥰이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왜 연애를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런 료코에게 쥰은 자신이 숨겨 왔던 것을 계속 숨기며 살라고 말한다. 그것을 밝히는 것이 본인에게 전혀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자신이 받은 상처를 료쿄가 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고로 쥰은 료쿄를 이미 사랑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말에 료쿄는 고개를 숙인다. 서로 비슷한 점이 많은 둘은 이미 사랑하고 있지만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또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하지만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못하는 모습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이 이야기는 분명한 여성서사이지만 악한 남성 캐릭터가 없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윤희의 오빠도 악인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위해 노력한다. 인호(윤희의 전남편)는 아마 윤희와 자신이 이혼한 이유를 알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인정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자신이 잘못해서 이혼한 거라고 생각하는 게 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노력한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윤희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 그는 청첩장을 윤희에게 전해주며 ‘제일 먼저 알리는 거야. 그래야 될 것 같아서… 미안해… 행복해야 해.. 꼭’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행복을 찾는 것으로 윤희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란다. 그 청첩장은 윤희에게 행복을 전해주는 또 다른 편지의 모습이다.
경수(새봄의 남자친구)는 리폼이라는 다소 독특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상처 입은 것을 치유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게 한다. 경수는 새봄을 바라보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서울로 대학을 가는 새봄을 말리지 않는다. 새봄이 어디에 있든 바라보는 것이 그가 사랑하는 방법이다. 그는 영화에서 카메라로 자신을 찍는 유일한 인물이다. 자신이 새봄을 바라보고 싶은 것처럼 자신의 모습을 새봄이 바라볼 수 있게 선물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윤희에게’의 주어는 누구일까? 쥰이? 마사코가? 경수가? 인호가? 그리고 새봄이? 모두가 ‘윤희에게’의 주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들 모두가 윤희에게 보내는 편지일 것이다. 윤희는 그들에게 기억을 선물했고, 그들은 윤희에게 희망을 선물했다. 윤희는 딸에게 새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새봄은 윤희에게 다시 봄을 선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