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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pan123mE1(식사편) 강말금 배우.

비일상으로 일상 복원하기

by 피스타치 유


우리 대부분은 일상의 매 순간에 어떤 역할을 연기한다. 배우는 무대 위에서 인물을 연기한다.
그러므로 연기하지 않는 순간은 없고 무대와 현실의 경계는 사라져 간다.
사라진 경계 속에서 우리는 퇴장이 한 번도 없는 공연에 오른 초보 배우처럼 연속된 긴장으로 삶의 여러 순간들을 무심히 지나쳐 가고 있는 것이다.
이 공연은 일상을 연기하는 것으로 사라진 일상을 복원하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과연 비현실(연기)을 통해 현실(일상)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


무대 한켠 소파에서 잠을 깬 배우가 일상을 연기하기 시작한다. 아니 이미 일상은 잠을 자는 행위 이전부터 연기되고 있었다. 하지만 더 개인적인 일상으로 들어가기 위해 그녀에게는 2번의 전화가 필요하다. 첫 번째 전화는 일이 있어서 집을 나서야 할 것 같다는 것이고. 두 번째 전화는 반대로 약속한 일에 나가지 못할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집을 나서야 하는 것과 집에 남아야 하는 것. 집을 나섰지만 남아있는 것. 즉, 타인이 인식하는 공간에서 사라지고 나만의 공간에 존재하는 것. 그 미지의 공간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이 시작된다.

배우는 잠에서 깨어난 순간부터 계속해서 먹는다. 사과를 잘라먹고 바나나를 쪼개서 요거트와 함께 먹는다. 빵에 치즈를 올려 오븐에 구워 먹는다.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마신다. 과자를 먹는다. 계속 먹는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허기는 채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점점 허기가 커진다.

먹는다는 행위에 가끔 죄스러울 때가 있다고 <소년이 온다>에서 한강이 말했던가. 그건 먼저 죽어간 자들에 대한 죄책감일 것이다. 거대한 비극 앞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먹는 행위는 이상한 죄스러움이 있다. 그 말은 누구에게나 비극이 잠재해있다고 바꿔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비극은 실존과 생존 사이에서 결국은 생존을 택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먹어도 달래지지 않는 허기는 반찬(아마 어머니가 챙겨주신)과 밥을 먹는 것으로 이어진다. 여러 개의 반찬과 따뜻한 밥이 있다. 그리고 샴페인이 있다. 이제야 식사가 시작된다. 그전에 허기짐이 계속된 것은 아마 그것들을 ‘식사’라고 부르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야 허기가 채워지기 시작한다. 여기서 채워진 것은 위장에 대한 허기가 아니라 그리움에 대한 허기다. 그녀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한다. 어머니가 무엇을 먹는지 확인한 뒤 재빨리 전화를 끊는다. 그녀는 식사를 계속하며 해질 녘의 노을을 바라본다. 무표정하지만 슬퍼 보인다. 우걱우걱 음식을 삼키는 목구멍이 메어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먹는다는 것은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 죄스러움을 등에 지고 누군가를 기억하는 방식이 아닐까.


극도로 소리가 자제된 50분의 공연 동안 마치 우주에 있는 것 같았다. 가장 개인적인 공간은 우주 한복판에 떨어져 있는 것과 같으니까.
향기로운 음식과 여름의 해 질 녘을 좋아한다는 강말금 배우의 소개글에서처럼 해 질 녘 창밖을 바라보며 마무리되는 공연은 결국 그들이 보여주고자 한 솔직함과 일상성에 어느 정도 도달한 것처럼 느껴진다. 커튼콜 때 수줍은 듯한 배우의 미소가 그것을 증명해줬다.

누군가의 일상(혹은 연기된 일상)으로 누군가가 일상을 돌아볼 수 있다면 그 일상은 복원의 가능성이 높아졌으리라.
결국 현실이 아닌 환상이 현실을 구원할 수 있다.



밥에 대하여
이성복
1
어느 날 밥이 내게 말하길
[참 아저씨나 나나....
말꼬리를 흐리며 밥이 말하길
[중요한 것은 사과 껍질
찢어버린 편지
욕설과 하품, 그런 것도
아니고 정말 중요한 것은
빙벽을 오르기 전에
밥 먹어 두는 일.

밥아 , 언제 너도 배고픈 적 있었니?

2
밥으로 떡을 만든다
밥으로 술을 만든다
밥으로 과자를 만든다
밥으로 사랑을 만든다 애인은 못 만든다
밥으로 힘을 쓴다 힘쓰고 나면 피로하다
밥으로 피로를 만들고 비관주의와 아카데미즘을 만든다
밥으로 빈대와 파렴치와 방범대원과 창녀를 만든다
밥으로 천국과 유곽과 꿈과 화장실을 만든다 피로하다 피로하다 심히 피로하다
밥으로 고통을 만든다 밥으로 시를 만든다 밥으로 철새의 날개를 만든다 밥으로 오르가즘에 오른다 밥으로 양심가책에 젖는다 밥으로 푸념과 하품을 만든다 세상은 나쁜 꿈 나쁜 꿈 나쁜
밥은 나를 먹고 몹쓸 시대를 만들었다 밥은 나를 먹고 동정과 눈물과 능변을 만들었다, 그러나
밥은 희망을 만들지 못한 것이다 밥이 법이기 때문이다 밥은 국법이다 오 밥이여, 어머님 젊으실 적 얼굴이여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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