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면, 해임당한 나는 왜 '멋진' 교수인가?
2007년 4월에 사표를 냈다. 교수가 된 지 2년이 조금 지난 시점이었다. 더 이상 학교에 다니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학교를 옮길 수 있다면 이 시기라고 생각했다. 옮길 자신도 있었다. 사표를 낸 이유는 이렇다.
총학생회장으로 뽑힌 학생이 학교에서 시위하였다. 뭔가 학교의 비리 때문이었지만, 뭔지는 잘 모른다. 아무튼 학생들 백여 명이 학교를 돌면서 구호를 잠시 외치는 것은 몇 번 보았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나는 별로 이상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기독교 대학인 이곳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하기야, 내가 초임으로 발령받았을 때이다. 회를 먹는데, 술이 없었다. 나는 청하를 시켰다. 다들 눈치를 주었다. 나는 눈치를 주면 더 하는 못된 버릇이 있다. 다들 사양했다. 나는 내 잔에 술을 따르고 상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잔을 상 밑으로 놓으면 어떠냐고 유아특수교육과 교수가 말했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가 위험인물로 찍힌 것은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 덕인지 아닌지, 지금은 다들 편히 술을 마신다.
당시에 교수 승진은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 정교수의 순이었다. 어쨌든 나는 전임강사에서 조교수로 승진했다. 그리고 몇 가지 보직도 맡았다. 학생 장학위원회와 상벌 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총학생회장의 시위로 학교는 그를 처벌하기 위해 별렀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합법적인 수단은 상벌 위원회를 통과하는 것이었다. 학교는 신학생을 하수인으로 삼았다. 두 명의 신학과 학생이 총학생회장이 MT에서 술자리를 가졌다고 신고했다. 학교는 음주를 금지한 교칙을 어겼다며 징계를 주기로 한 것이다.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학교도 체면이 있으니 징계를 안 줄 수는 없고, 훈계 정도로 끝내리라고 생각했다. 위원회에서 내 주장은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오산이었다.
겨울방학 전에 총학생회장이 뽑혔고, 얼마 안 있어서 간부 MT를 갔고, 술자리를 가졌고, 그것을 신학과 학생이 핸드폰으로 찍었고, 학교에 신고하였고, 학교는 그것으로 징계를 주려고 하였고, 징계의 내용은 이미 윗선에서 정해졌고, 위원회에서 그 내용대로 처리해 주길 바랐고…. 이런 순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내가 반대한 것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총학생회장이 술을 먹고 추태를 부린 것도 아니었다. 간부 학생들이 회의 중에 술을 마셨고, 총학생회장은 회의를 인도하였을 뿐이었다.
상벌 위원회 위원이 많았기에 내가 없어도 충분히 정족수가 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나를 꼭 찾았다. 처음에는 몰랐다. 하지만 나중에는 이상한 낌새를 느낄 수 있었다. 위원회에 참석해서 같은 의견을 반복했다. 다른 사람들은 별말이 없었다. 어쩌면 그들은 만장일치가 필요했던 것 같다.
그날 밤을 기억한다. 날짜는 모른다. 비 오는 화요일 밤이었다. 시간은 대략 8시가 조금 넘었다. 대학원 수업을 마치고 상벌 위원회에 참석했다. 생각하니 내 수업이 끝나길 기다린 것 같았다. 분위기가 이상했다. 총학생회장을 퇴학시키고자 하는 의견이 논의되었다. 나는 화를 참지 못하고,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리고 나왔다.
다음날 교무처 직원, 이 아무개 선생에게 사표를 제출했다. 2007년 4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교무처장을 만났다. 사표를 이 선생에게 제출했으니 처리해 달라고 했다. 교무처장은 나와 같은 상벌위원이었다. 나를 말렸다. 나는 이런 학교에서 교수하는 것은 양심에 가책을 느껴서 안 되겠다고 했다.
교무처장은 내가 사표를 내면서 징계를 강하게 반대했기에 조금은 마음이 동한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학교에 남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교무처장으로부터 몇 번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다시 잘해보자'고 했다. 사표 처리를 다시 생각해 보자고 했다. 그러면서 만나자고 했다. 만났다. 세 번째 만남에서 나는 사직을 철회하니 총학생회장 문제를 잘 해결해 달라고 했다. 세 번씩이나 나이도 나보다 훨씬 많은 교무처장이 부탁을 했으니 더 이상 고집부리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오면서 이 아무개 선생에게 사표를 돌려받을까 생각했다. 별일 없으리라 생각하고 그냥 나왔다. 그런데 오산이었다.
장례식에 참석했는데 아무개 교수가 알려주었다. 사표를 처리한다고 하였다. 나는 교무처장이 철회하라고 해서 그런다고 했으니, 별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화가 너무 났다. 그대로 나갈 수 없었다. 뒤통수를 맞은 것이 분했다. 어차피 나가려고 했기에 그냥 나가도 그만이었지만, 이런 방법은 아니었다. 농락당한 것에 분이 풀리지 않았다. 다시 사표를 쓰고 나갔으면 나갔지, 그냥은 못 나가겠다고 생각했다.
증거가 없었다. 교무처장은 내가 사표 철회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교무처장실에서 교무처장과 나, 둘이 대화했는데. 교무처장이 그런 적이 없다고 하니 방법이 없었다. 냉정히 생각했다. 교무처장이 아닌 더 높은 곳에서 분명 오더가 있었으리라 생각했다.
일단 내용증명을 보냈다. 자초지종을 적었다. 교무처장이 철회를 요청하여 언제 사직을 철회했으니 이번에는 처리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런데 며칠 후에 등기로 사직 승인이 통보되었다. 2007년 7월 17일부로 사표를 수리한다는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