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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UC Jan 19. 2023

사람의 바닥을 본다는 것은.

파면, 해임당한 나는 왜 '멋진'교수인가?

2007년 7월 17일로 사직처리가 되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 그것은 명백히 사직을 빙자한 부당해고였다. 왜 그런 야비한 일이 일어났을까? 추론하면 이렇다.     

 

시위를 한 총학생회장은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다. 상벌위원회에서 처리해 주면 되었는데, 내가 거부했다. 나는 위원들을 향하여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하였다. 위원 가운데 목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분노를 넘어 나에게 적개심을 느꼈을 것이다. 학교를 그만둘 생각이었으니, 차라리 잘된 일이다. 나 역시 그들에게 제거되어야 할 존재가 되었다. 나는 사표를 제출했다. 그런데 눈치 없는 교무처장이 나에게 사표를 철회하라고 요청하였다. 마침 총장이 일주일 이상 출장을 갔기에, 이런 사실은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총장이 오고 교무처장이 총장에게 보고를 하였다. 총장이 사표를 수리하라고 지시하였다.  

      

교무처장이 총장에게 내가 사표를 냈지만 자신이 철회하라고 요청하여 내가 철회하였다고 이야기했는데도 총장이 사표를 수리하라고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다. 집히는 것이 있다. 하지만 객관적 근거가 없기에 아니 부족하기에 나는 단정하지 않기로 했다. 교무처장과 총장 두 사람은 진실을 알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추론하기 싫다. 인간의 바닥을 보는 것은 몹시 힘든 일이다.   

    

2007년 8월 경에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을 제기하였다.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혼자서 서류를 제출하였다. 관련 서류가 오고 갔다. 소청심사에서 졌다. 뭔가 해보자는 오기가 생겼다.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변호사를 선임하였다. 법조계에 발이 넓은 친구에게 자문을 구하였다. 노련한 변호사보다는 정의감 넘치는 초년 변호사가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런 변호사를 찾았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재학 중에 사시에 합격한 사람이었다. 변호사 당시 그는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상태였다. 학력으로 치면 고졸이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홀어머니가 계시다는 것을 알았다. 집안도 부유하지 않았다.

      

재판 와중에 나와 친하지 않고, 총장과 다툼이 있었던 김 교수가 전화했다. 나를 위하는 척하면서 총장 욕을 엄청했다. 듣기 거북했지만 참았다. 핸드폰을 꼭 쥐었다. 며칠 후 심심하여 전화기를 만지작거렸다. 녹음된 내용을 발견했다. 당시 삼성폰은 핸드폰 옆에 있는 버튼을 통화 중에 누르면 통화가 녹음되는 기능이 있었던 것이다. 녹음된 파일은 나도 모르게 통화 중에 힘을 주어 의도하지 않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어떤 것은 몇 년 전 것으로 대화 중간의 몇 마디가 녹음되었고, 어떤 것은 발자국 소리만 들리기도 하였다.  

     

놀랍게도 교무처장과 내가 사표를 철회한 과정은 거의 고스란히 녹음되어 있었다. 증거를 찾은 것이다. 나는 내가 재판에서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상대방 변호사와 우리 변호사, 그리고 판사가 만나는 날이었다. 우리 변호사가 대뜸 일어나서 상대방 변호사에게 인사를 하였다. 아는 사이냐고 하니까 상대방 변호사에게 수습을 받았다고 했다. 쉽게 이야기하면 상대 변호사가 우리 변호사의 선생 변호사였던 것이다.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조사해 보니 상대 변호사는 내 재판 판사와 같은 곳에서 판사를 한 경험이 있었다. 나는 재판에서 졌다고 생각했다. 

     

법원을 나와서 걸었다. 추웠다. 한강 다리를 건넜다. 더 추웠다. 빠져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생각이 났다. 걷고 또 걸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날, 하늘과 강물과 공기가 모두 잿빛이었다는 것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학교에는 내가 교무처장을 괴롭혀서 착한 교무처장이 정신과에 다닌다고 소문이 났다. 그러면서 내가 나쁜 사람이라고 했다. 착한 것이 그저 모두에게 고분고분한 것이라면 그가 착한 것이 맞다. 그러나 착한 것이 거짓을 말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가 착하다는 것은 옳지 않다. 나는 화가 났다. 하지만 내 편은 많지 않았다. 

     

사람들은 힘 있는 사람들의 말은 옳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특히 신앙심이 좋다는 사람들일수록 그런 것 같다. 최소한 내 경험에서는 그렇다.


나는 힘없는 들풀이었고, 교무처장은 이 대학 출신에, 목사였고, 신학과 정교수였기에, 이곳에서는 성골이었다. 나는 이제 막 조교수에 불과했다. 굴러온 돌이었고, 육두품이었다.




교수들은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아니 말할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었다. 특히 C교수는 젠틀한 척했지만 최악이었다. 나는 C교수와 같이 겉으로 그럴듯하게 말하면서 실제로는 정 반대로 행동하는 교수들을 무척 많이 보았다. 그렇기에 나는 그럴듯하게 웃으면서 말하는 교수들을 잘 신뢰하지 않는다. C가 임용될 때 내가 왜 그를 지지했는지 후회가 막심했다. 그 후회는 지금도 여전하다.  

      

행정소송 1심에서 내가 승소했다. 판결문을 보니 허탈했다. 내가 사직을 철회한 것을 인정한 것은 교무처장과의 대화 시점이 아니었다. 재판부는 내가 보낸 사직 철회 관련 내용증명이 상대에게 도달한 시점을 법적 효력이 있는 사직 철회의 시점으로 보았다. 판사는 교활하고, 현명하였다. 내 편을 들었지만, 교무처장과의 대화를 사직 철회의 시점으로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동료 판사였던 상대방의 비위를 어느 정도 맞추어 주었기 때문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고용과 관련하여 양 당사자가 계약한 경우, 피고용자가 사직서를 제출하였다가 어떤 이유로 이를 다시 철회하고자 할 때는, 고용자가 사직 승인을 피고용자에게 통보하기 전에 철회하면 법적으로 철회가 인정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어찌 되었건 내가 승소하였다. 학교가 항소하지 않기를 바랐다. 며칠간 편하게 지냈다. 여수에 있는 후배 교수의 집에서 잤다. 그날은 항소 마지막 날이었다. 저녁 8시 넘어서 PC방에 갔다. 학교가 항소하였는지 확인했다. 역시나 학교는 항소할 수 있는 마지막 날에 항소를 하였다. 나는 다시 재판을 준비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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