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면, 해임당한 나는 왜 '멋진' 교수인가?
2007년 부당해고를 당했을 때, 분노로 심장발작이 와서 까딱하면 죽을 수도 있었다. 생각하지 말아야 할 끔찍한 복수를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나를 불편하게 했다.
복수한 후의 내 모습을 상상하니 끔찍했다. 온몸에 피가 묻은 채로 경찰에 붙잡힌 내 모습이 그려졌다. 엄마가 감옥으로 면회하러 와서 나를 보고 우는 모습도 그려졌다. 복수 생각을 하다가는 큰일을 당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들었다. 복수하지 않겠다고 계속 혼잣소리를 했다.
복수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단지 '복수의 결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때문만은 아니었다. 곰곰이 생각하니 내가 징계위원들을 심하게 자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징계위원의 태반이 목사나 장로임을 고려할 때, 그들에게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한 것은, 그들의 가슴에 내가 대못을 박은 것이다.
내 잘못이다. 그들을 극단적으로 자극하려고 한 것이 그 순간의 목적은 아니었다. 그것이 목적이었다면 후회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표현은 내가 분을 참지 못하고 우발적으로 내뱉은 것에 불과하다. 인격 수양이 덜 된 것은 나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복수를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후부터는 소송이 크게 괴롭지 않았다. 원수가 아니라, 오해를 어쩔 수 없이 법으로 푸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한결 편했다. 원수지간은 힘든 관계이지만, 오해의 관계라면 풀면 그만이고, 못 풀어도 원수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를 힘들게 한 징계위원들, 교무처장, 총장, 이사장 등을 생각하며 그들이 잘되길 바란다고 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의식적인 중얼거림이 그들에 대한 평가를 다르게 하였다. 그들은 내가 겪은 경험을 미처 겪지 못하여서 총학생회장이 술자리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중징계하겠다는 근시안적인 사고를 가졌다고 생각하니, 그들은 복수의 대상이 아니라, 내 생각을 나누어주어야 할 대상이 되었다.
항소심에서 이기고 학교로 복귀하였을 때 복수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유지하려고 무지 노력하였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걸으면서 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나를 힘들게 한 사람들에 대한 화가 자연스럽게 줄었다. 내가 그들을 보고 웃으며 악수하는 것이 위선인지 아닌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복수하지 않겠다는 중얼거림은 살면서 내가 가장 잘한 몇 가지 일 중의 하나였다. 의식적인 중얼거림은 자신을 변화시키고, 환경도, 관계도, 변화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