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면, 해임당한 나는 왜 '멋진' 교수인가?
2007년에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서 져서 행정소송을 한 후, 나는 1심과 2심에서 승소하여 2009년 3월에 복직했다. 사직을 가장한 내 사표 수리의 발단은 총학생회장의 징계와 관련 있다. 총학생회장은 해병대 출신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그런 경력에 잘 어울리는 학과 소속이었다. 그의 이름은 내 이름과 유사했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하지만 화나는 것은 이것이다.
총학생회장이 MT에서 학생회 임원진과 술자리를 가졌다고 해서, 그를 퇴학시키려는 징계는 누가 보더라도 정상이 아니다. 학교 측의 자료를 살펴보면 사실 더 가관이다.
그는 음주 자리에 있었지만, 음주하지 않았다. 공식 회의가 끝난 직후의 비공식 자리였지만, 그는 좌장이라는 이유로 술을 마시지 않았다. 술을 마실 기회가 없었던 것도 같다. 다른 간부 일부는 명백히 술을 마셨다. 그러나 학생들이 술에 취해서 추태를 부렸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었다.
비공식 자리가 더 길었다면 상황은 달랐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 생각하면 신학과 학생들이 그를 도운 것도 같다. 신학과 학생 둘이 증거라고 찍은 2G 폰의 사진은 흐릿했다.
학칙을 찾아보니 학생이 음주하면 징계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씁쓸했지만 종교 기관이 세운 학교 다웠다. 나는 소위 ‘악법도 법’이니 일단 그 조항을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반성문 정도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 후 그런 조항을 없애고 싶었다.
하지만 징계위원 다수는 그게 아니었다. 총학생회장이 학생들과 함께 학교를 돌면서 시위한 것을 용납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시위 목적이 학교 비리와 관련된 것이니, 그것이 이슈화되는 것을 감추고 싶었던 것 같다.
‘목사’만 총장을 할 수 있는 규정이 있는 학교에서, 총학생회의 시위는 총장이나 이사장이라는 형식적 지위에 대한 도전만이 아니었다. 목사에게 ‘감히’ 학생이 덤볐다는 것이, 더 큰 이유였다고 생각한다.
그들 목사의 오만은, 견제받은 적 없고, 존경이라는 미명으로 숭배의 대상이 된 것에서 비롯된 것 같다. 무엇보다도 그들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자들의 무식함이 한몫한 것 같다.
2년간의 재판 동안 총학생회장이 한 번 전화했다. 도와달라고 했다. 나는 나도 ‘부당해고’를 당해서 도울 힘이 없다고 했다. 그는 더 이상 전화나 문자를 하지 않았다.
총학생회장은 내가 부당해고 된 후에, ‘결국’ 학교에서 쫓겨났다. 무기정학을 받았다. 그는 복학하지 않았다. 나는 복직 후 1년쯤 되었을 때 총학생회장에게 연락했다. 그가 전화를 받았다. 최선을 다할 터이니 복학하라고 했다. 그동안의 학교 잘못을 모두 보상받는 방안도 마련해 보겠다고 했다. 그는 단호했다. 복학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가 복학을 타진했을 때, 학과 교수들이 자신의 복학을 원치 않았다고 했다. 분명하게 두 명의 교수 이름을 나에게 말했다.
내가 알기에 ‘평소’에 사람 좋아 보였던, 그 ‘교수들’이 학생의 복학을 마뜩잖게 생각했다는 것에서, 알지 못할 분노가 슬슬 올라왔다. 총학생회장이었던 학생이 복학한다고 자기들 이익에 얼마나 해가 될까?
돈벌레보다 못해 보이는 그들 교수가 불쌍해서 오히려 슬펐다.
나는 지금까지도 총학생회장에게 빚이 있는 느낌이다. 학생의 등록금으로 월급 받고 생활하는 한 사람으로서,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과, 내 무능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학생을 그렇게 버린 학교가 내 직장이라는 슬픔이 함께했다.
그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내가 학교의 대표 자격은 없다만, 미안하다.
보란 듯이 잘 살고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