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사람들과 만나 한참 수다를 떨다가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사람들 사실 쇼윈도 부부야. 애 때문에 이혼은 못하고 그렇게 살고 있나 보더라."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사실 놀랐다. 내 주위에 잉꼬부부도 없지만 딱히 쇼윈도 부부라고 할만한 사람이 없었고,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남의 가정사를 어찌 알고 소문을 퍼뜨리는지도 놀라웠다. 작은 도시에 살다 보니 사람들 입소문이 빠르고, 모임에 잘 참석하지 않는 나는 제일 마지막에 소식을 듣거나 모르고 지나가기도 한다.
쇼윈도 부부는 연예인, 스타들의 이야기 아닌가. 사이좋은 부부인 척 연기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이혼했어요'하고 나오는. 부부 사이라는 게, 참 그렇다. '남'이 '님'으로 발전하다가 부부의 연을 맺었으나, 그 '님'이 다시 '남'이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수도 있다.
결혼한 지 벌써 18년 차. 여러 번 이혼의 고비를 넘겼으나, 나 또한 쇼윈도 부부가 아닌가 싶을 때가 종종 있다. 이번 명절에도 싸우고 나는 아직 풀리지 않은 상태다. 먼저 화낸 것은 남편인데 다 풀렸는지 실실 웃으며 말을 거는 모습이 꼴도 보기 싫다. 겉으로는 다정한 것처럼 보이다가 어느 순간 싹 돌아서는 것보다, 남들 앞에서도 사이좋은 척 연기하지 않기에 엄밀히 쇼윈도 부부는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렇게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예 담쌓고 외면하는 것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짧고 불같은 연애를 하고 서둘러 결혼을 한 우리인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 쇼윈도 부부이든 아니든, 어쩌면 보통의 20년 차 부부가 다 이렇게 냉담하게 살아가는 것일까? 내 눈에는 사이좋게 여행하고 산책하고 이런 부부만 눈에 들어온다. 어쩌면 그런 부부도 전날 싸우고 오늘 화해했거나, 평소엔 '밥 먹자. 아이는? 자자' 이 말만 하다가 갑자기 사이 좋아진 지 1일차, 이런 것일까?
서로가 이혼이나 졸혼을 꿈꾸지만, 아이들 때문에 또는 다른 이유로 그 속내를 감추고 살아가는 부부가 생각보다 많을지도 모른다. 남편은 원래도 몸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술을 좋아했고, 친구와 밤새워 술을 마실 때도 있었다. 그리고 작년에는 잠깐 여자 문제까지 있어서 정말 이혼할 뻔했다.
어릴 때는 연속극을 보며 남자에게 속고 사느니 진실을 아는 편이 낫고, 그리고 당당하게 이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참고 사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라면서, 아이를 위해 참고 산다는 것은 오히려 아이를 불행한 가정에서 키우는 어리석은 짓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겪어보니 이혼하지 못하는 것에는 많은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다. 따지자면 이혼해야 할 이유도 많지만, 이혼하지 못하는 이유가 더 강력했다.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들 때문에 결혼을 유지하고, 싸우면서도 쇼윈도 부부처럼 살아가고 있다.
한때 사랑해서 결혼했던 우리는 서로 다른 곳을 보면서 다른 꿈을 꾸고 있다. 동상이몽이라고 할 수도 없다. 아이들 어릴 때부터 각방 쓴 지 한참 되었으니까. 남편은 일찍 퇴직하고 자신만의 꿈을 펼치고, 나중에는 방랑자로 살다가 재산을 다 기부하고 죽을 것이라고 한다. 예전부터 자기는 산에 들어가서 죽을 거라는 둥 허무맹랑한 말을 했다. 나는 그의 비상식적인 사고가 너무 이해가 가지 않았고, 남편은 결혼하면 안 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사람과는 사고가 너무 다른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그렇게 살려면 결혼을 하지 말 것이지, 왜 결혼을 하고도 마음대로 살면서 나를 이렇게 고생시키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이미 시한부 부부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글을 쓰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밖으로 꺼내놓으면 진짜 사실을 인정하고 그렇게 될 것만 같아서 참고 참았다. 내 마음이 곪아 터져도 그냥 쇼윈도 부부로 살아야만 할까. 남편은 남편의 동굴에, 나는 나의 동굴에, 아이들은 각자 자기들의 세계에 빠져 각자도생하는 우리 가족. 행복해 보이는 가족을 보면 늘 마음이 시리다. 어쩌면 나의 탓도 있겠지. 어느 날 그렇게 헤어질 날이 와도, 마음의 준비가 된 우리는 쿨하게 웃으며 서로를 보내줄지도 모르겠다.
#쇼윈도부부 #부부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