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by 류다




'첫.사.랑.'

한 글자씩 천천히 음미하며 발음하노라면 연분홍 벚꽃이 마음속에서 토옥 톡 터지며 샤랄랄라 봄바람에 날리는 것 같은 낱말이다. 얼마 전 누군가가 자신의 첫사랑에 대해 짧은 글을 쓴 것을 읽고 나의 첫사랑은 누구일까 기억 속을 헤매보았다.



올해 알게 된 다른 반 아이의 이름은 금방 잊어버리는 중년인데 오래전 국민학교 3학년 때 좋아했던 잘생긴 남자아이의 이름은 왜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을까. 국민학교 때 좋아했던 아이는 1년마다 바뀌었다. 그러다 여자 중학교로 가게 되면서 좋아하는 남자가 없어졌다. 좋아하는 선생님도 별로 없었으니까.


그러다 20대 후반에 정말 좋아했던 잘 생긴 직업학교 선생님이 있었다. 미대를 나온 분이었는데, 훤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에 많은 여자들이 좋아하던 선생님이었다. 공부하느라 연애는커녕 미팅도 한번 못 해본 나였기에, 온 마음과 열정을 다 바친 짝사랑이었다. 먼발치에서 담배 피우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독한 남자의 멋에 반했다. 어쩌면 내 마음속에서 이상적인 남자를 그리며 내 환상을 사랑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좋아했지만, 그 마음을 표현하기는 내가 너무 작아 보였다. 직업학교를 마치면서 구구절절한 고백 편지를 써서 보냈지만 삐삐는 오지 않았다. 사귀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누군가를 좋아하고 싶은 마음이 컸을 것이라 지금은 생각한다. 당시에는 짝사랑의 열정과 상심이 너무 컸던지, 저녁에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길이면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짝사랑'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풋사과 같은 느낌보다는 버스에 앉아 눈물 흘렸던 내 모습이 저절로 재생된다. 그래서 멀리서 바라본 나의 애절한 짝사랑에 '첫사랑'의 월계관을 씌워주고픈 마음이다.


누군가가 손도 잡고 첫 키스도 해야 첫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한다면, 불행히도 남편을 첫사랑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나는 왜 좋아한다고 따라다니는 사람도 없고, 남자가 안 꼬일까 20대에 고민한 적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내 사주 때문이기도 하겠고, 친구들이 말하는 바로는 남학생이 말을 걸면 차가운 표정으로 도도하게 말을 해서 남자에 아주 무관심하게 보였다고 했다. 엄격한 아버지 때문에 비혼, 당시에는 '독신주의'를 선언하면서 더 그렇게 차가운 태도로 남자를 대했을 것이다.


젊을 때 내가 관찰한 바로는 남자들은 모두 무리에서 제일 예쁜 여자를 좋아했다. 순위라도 매기듯이 제일 예쁜 애가 안 나오던가 애인이 생기던가 하면 그다음으로 예쁜 여자에게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런 모습은 좀 더 나이가 많은 남자들에게도 비슷하게 관찰되었고, 외모가 출중하지 않은 나에게는 그런 모습이 참 보기 싫었다. 인기녀가 아니라 더 그랬을까?


그렇게 남자와 인연이 없이 살다가 30대 중반에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내성적인 편인데도 말을 좀 잘한다. 고향을 떠나 외로웠던 나는 남편의 수작에 넘어가서 연애를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했다. 그 나이에 처음 남자를 알게 되고 연애를 처음 했으니 얼마나 호기심이 많았겠는가.


이런 순진함은 나중에 뒤통수를 맞게 된다. 남편은 연애 한번 못 해본 순진한 나를 '아무도 좋아해 주지 않아서 안 팔린 노처녀' 취급을 하면서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나를 놀려먹었다. 왜 30대 중반까지 결혼을 안 했느냐는 말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나를 좋아해 주지 않아서'라고 솔직하게 대답한 내가 정말 어리석었다. 연애를 안 해봐서 밀당이 뭔지도 모르는 나였다. 솔직한 말이 부메랑이 되어 지인들과 술자리에서 그렇게 튀어나오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연애를 많이 해본 사람이 결혼도 잘 한다는 말이 있는 것인가. 부디 나의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남자 앞에서 너무 솔직하지는 말고, 신비스러운 전략을 고수하도록 엄마의 짧은 노하우를 전수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첫사랑이 누군인지 묻는다면 절대 남편이 아니고 짝사랑하던 그 선생님을 말할 것이다. 지금 그분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결혼은 했을지, 편지를 받고 어떤 생각을 했을지 조금 궁금해지는 밤이다.


#첫사랑 #짝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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