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성이 모든 것을 말해주진 않는다
언니가 떠났다. 언니의 잘생긴 큰아들이 미국에서 졸업하기 전 마지막이라며 미국 여행을 갔다.
언니가 떠난 지 열흘인데 한 달은 지난 것 같다. 전화해서 수다 떨 데가 없다. 전화를 걸 지인이나 친구는 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고 편하게 전화해서 한 시간이고 수다를 떨 수 있는 건 작은언니뿐인데, 언니의 부재가 던진 마음의 구멍은 크다.
문득 외롭다. 코끝이 찡해진다.
나의 오랜 화두는 외로움.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쓴 시 제목이 '나는 외톨이'였으니.
외로움을 노래하는 작가 류다. 나의 선생님이 그리움의 작가라면 나는 외로움의 작가라고 자칭해 본다.
류다는 '유다'를 떠올리게 한다. 소중한 스승을 팔아치운 배반자 가롯 유다.
왜 닉네임을 처음 만들 땐 생각하지 못했을까. 나는 소중한 그 누구를 배반해서 천형의 외로움을 선고받은 것일까.
아이들이 없는 시간, 빈 집에 앉아 어제 만든 밀푀유 나베를 데워 밥 한술을 말아 조용히 떠먹는다. 내 영혼을 위한 따뜻한 스프가 이런 맛일까. 배추를 듬뿍 넣고 지나치리만큼 푹 끓였더니 고기는 질겨졌는데 배추는 부드러워졌다. 달큰한 배추와 구수한 고기의 맛이 국물에 가득 우러나와 금세 속이 따뜻해진다.
밥을 먹으며 도서관에서 빌린 부담 없는 여행 에세이를 편다. 배가 부르니 조금 덜 외롭다.
이제 곧 아이들이 들이닥칠 시간이다.
방학식을 하고 신이 나서 집으로 오고 있을 녀석들. 이 고요함도 금세 깨지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조금 전 코 끝이 찡해졌던 사람이 아닌 것처럼 조금은 이 시간이 아쉬워진다.
사람 사귀는 것도 서툴고, 듣기 좋으라고 빈말 하지 못하고, 애써 꾸며 말해본들 얼굴에서 다 감정이 드러나는 사람이 나란 사람. 불편한 사람들과 있으면 표정도 어색하고 마음도 굳어진다. 한때는 '잘 웃는 사람'이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인간관계에서 적당한 균형을 맞추기가 갈수록 어렵게 느껴진다. SNS에서도 마찬가지다. 전에는 '좁고 깊게 사귀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표현했었는데, 이제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농담하면서 사귀는 것이 재미있고 즐거울 때도 아주 가끔 있지만, 대부분 시간 낭비처럼 느껴질 때가 많고 그런 자리를 피한다.
몇 년 전 남편은 나에게 '조직생활 부적격자'라고 비웃었다. 거기에 나는 '술 마시는 사람 주변은 술친구뿐'이라고 응수했다. 사교적이고 사회성이 좋은 사람이 조직생활을 잘 할지는 몰라도, 비사교적인 사람도 자신만의 장점으로 사회에 적응하며 업무를 잘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을 의식하고 좋은 사람으로 잘 보이려 노력하는 것이 피곤하다. 이제 혼자인 것이 더 편하다. 편하면서도 외롭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사람, 대화와 관심사가 통하는 사람을 찾는다. 그러니 자꾸 우물 안 개구리처럼 편협해지고 아집만 세지는 것 같다. 거기에 대한 나의 처방전은 독서다. 나를 잘 아는 언니가 없어도, 나와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잘 없어도 다양한 책들은 많은 친구를 만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지난주에 몇 줄 쓰다가 만 글을 수정한 글입니다.
가능하다면 올해에는 일주일에 한 편 이상(목요일?) 글을 발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