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지기 친구를 지웠습니다

by 류다




언젠가 여자들의 우정이란 건 그런 거냐고 비웃던 남편의 말이 떠오른다. 친구를 만나고 난 후 흥분해서 "걔가 이랬어 저랬어, 너무한 거 아니야?" 등등 이렇게 말하는 것을 남편은 이해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친군데 그럴 수도 있지 뭐." 무덤덤하게 툭 내뱉는다.

여자는 남자보다 섬세해서 작은 일에도 미묘한 반응을 일으키고, 남자들이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일에도 입을 댄다. 분하지만 그런 면이 있기는 하다.


친구가 많이 없는 나에게 거의 유일한 동갑내기 친구가 있었다. 흔히 말하는 베스트 프렌드. 우리는 서로에게 그런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서로 다른 도시에서 떨어져 산 지 오래되었으나 한 번 전화를 들면 한 시간은 우습게 지나갈 정도로 온갖 얘기를 다 하는 솔직하고 진솔한 관계라고 생각했다.


여고 동창. 그러나 여고시절보다 학교를 졸업하고 난 다음에 우리는 더 친해졌다. 둘 다 원하는 대학에 떨어졌고 진학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택했다는 공통분모 때문인지 갑자기 친해지게 된 것이다. 부모님이 넣어준 직장에서 부지런하게 일하며 야간대학, 대학원까지 나온 친구에 비해 나는 어느 곳에도 적응을 하지 못하고 겉돌았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헤매는 이상주의자로, 철없는 아이처럼 굴 때 친구는 나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동성로에서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고민을 이야기하던 시간, 그 시간이 문득문득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 시절 우리는 매년 기차를 타고 부산에 바다를 보러 갔다. 해운대, 광안리, 다대포, 몰운대도 있지만 우리가 제일 즐겨 찾던 곳은 태종대였다. 사는 것이 힘들어 가슴이 답답해질 때 태종대의 등대를 지나 울퉁불퉁한 돌멩이를 밟으며 바닷바람을 쐬면 잠깐이나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우리 둘은 성격이 잘 맞는 편은 아니었다. 아기자기한 것을 보고 쇼핑하는 것을 좋아하던 친구와 달리 기나긴 쇼핑이 피곤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취미와 성격, 관심사는 달랐지만 우린 그때 외로웠고 곁에 만나서 이야기할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러다 친구와 나는 일 때문에 고향을 떠났고 내가 결혼하고 아이가 어릴 때는 한동안 멀어지기도 했다. 둘 다 내향적인 편이라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가끔 서로의 집을 오가거나 같이 여행을 다니고, 또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렇게 십수 년이 흘렀다. 서로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서일까. 우리는 가끔 서로의 단점이나 실수에 서운해하기도 하고,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그렇게 끊길 듯 말 듯 인연을 이어갔다.



작년 가을 이후로 우리는 연락을 끊었다. 작년 두 번째 냉전이 있은 후 친구가 내 연락을 받지 않았고 나의 문자에도 답하지 않았다. 두어 번 연락을 하다가 나도 마음을 접었다. 혹시 연락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마음조차 없다. 너무나 사소한 이유, 꼰대 공방이나 코로나 감염에 대해 이야기하다 이렇게 될 수가 있을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자잘하게 이야기하자면 나도 섭섭한 것이 많은데, 그만큼 친구도 나에게 그런 앙금이 많이 있었나 보다.


우리에게 30년의 우정이란 것은 무엇이었을까. 원래부터 현실적인 친구였으니 30년이라는 시간의 무게보다는 지금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더 무겁게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친구는 같은 직업을 가진 고향 동생과 더 말이 통하는 것 같았고, 가끔 내 욕도 그녀에게 한다는 것을 직접 들어서 알고 있었다.

제일 친한 친구를 잃는다는 것은 그 친구가 지금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에 관계없이 깊은 마음의 상처를 남긴다. 연인과 헤어진 것처럼. 한동안 나는, 내가 정말 인성이 안 되어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닌가 고민에 빠졌다. 정말 진심으로 좋아하는 친구가 곁에 하나도 없다는 것은 내게도 문제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학창 시절에는 정말 좋아하는 친구들이 늘 있었는데, 어른이 되고 나니 더 까다로워진 것일까.


지인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으니 자신도 그렇게 절연당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아무 이유 없이(?)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하더란다. 뭔가 부족해서 자신을 부러워하는 것도 아니고 충분히 다 가진 친구인데 갑자기 그렇게 나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아직도 가끔 생각난다고 한다.



중년 이후에 이렇게 친구와 멀어지거나 반대로 아이들 다 키우고 연락이 닿아 다시 인연의 끈을 잇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오래 쌓아온 정이 갑자기 벽으로 다가온 것에 적잖이 당황하고 이해가 가지 않지만, 서로가 표현하지 않았지만 조금씩 조금씩 마음의 벽을 쌓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소통의 부재는 오해를 낳고, 오해는 오랜 인연을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뒤늦게 배웠다.


'시절 인연'이라는 말이 언젠가 유행했다. 사람의 인연이란 게 남녀 관계뿐 아니라 친구 관계도 시작과 끝이 있고 만남과 이별이 있다. 오래 살아온 부부도 어느 순간 남남이 될 수 있고, 격하게 다투지 않아도 조금씩 멀어지다 어느 날 연락이 끊기는 친구도 있다. 너 없으면 죽고 못 살 것 같이 뜨겁게 사랑했던 연인도 그럴진대, 친구 사이야 말해 무엇하랴. 누가 우정을 황금빛으로 칠했나. 30년 우정은 변치 않는 황금이 될 수도 있으나, 어느 순간 유리처럼 부서질 수도 있다. 다만, 그것이 어느 한 사람만의 잘못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그냥 너의 상황과 나의 상황이 다르고, 서로의 가치관과 생각이 달라서 그렇게 된 것이니 인연의 멀어짐에 더 이상 연연해하며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도록 하자. 끊어진 인연을 억지로 붙여도 얼마 가지 않아 또 끊어질 것이니, 여기까지가 너와 나의 거리.


그래도 태종대에 가면 친구가 그리워질 것 같다.




#우정 #시절인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