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결혼해서 '백년해로(百年偕老)'한다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한 집에서 살지만 꼭 필요한 말 외에는 하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 그것이 싸우지 않고 함께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수도 있다. 각방을 쓰지만 최소한 부부로서의 기본적인 예의는 지킬 것, 술 먹고 외박하지 않고 12시까지는 집에 들어올 것, 어디를 1박 이상으로 가게 될 경우 반드시 소재를 밝힐 것, 공동생활비와 아이 양육비는 공평하게 반반씩 부담할 것이 결혼을 유지하기 위해 내건 조건이었다.
어쩌다 보니 주말마다, 금요일 퇴근해서 일요일 오후 늦게까지 남편이 홀어머니에게 효도한다는 명목하에 자유롭게 시댁에 머무는 것을 허용했다. 가는 것을 말릴 수가 없었다. 마치 집에 있으면 숨이라도 막히는지 주말이나 연휴만 되면 사라지는 것을 어찌한단 말인가. 주말 독박 육아와 살림이 힘들기는 했지만, 한 공간에 있는 것보다 따로 있는 것이 더 편하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대신, 내가 해외여행을 갈 때는 남편이 아이들을 챙긴다. 국내 여행은 애들 때문에 가능하면 당일치기로 가까운 곳에 간다. 그래도 도시락이든 배달이든 아이들 밥 챙기는 것은 거의 내 몫이다. 이렇게 서로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맞춰 가면서 파국을 모면했다.
헤어져야 할 이유는 너무 많은데, 같이 살 이유는 두세 가지뿐. 하지만 그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질긴 인연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다. 끊어질 듯 가볍게 잡고 있는 손을 놓지 못한다.
이혼을 포기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양육비 때문이었다. 처음엔 내가 원하면 이혼해 주고 양육비도 줄 것처럼 말하더니, 그가 준다던 양육비는 두 아이 합쳐서 50만 원이었다. 월급 받아서 두 집 살림을 하는지 술값으로 다 날렸는지, 주식이나 도박을 하는 것도 아닌데 맨날 마이너스 통장이라고 징징거리며 생활비의 반도 안 내던 인간이었다. 아이가 커갈수록 아이 밑으로 드는 돈은 늘어나는데 이대론 도저히 안 되겠다고, 설득해서 조금씩 더 받아내는 데도 서로 불만이 있었다. 생활비 반반씩 내자고 해도 계산하기 어렵다, 자신에 비해 내가 돈 많은 것 알고 있다는 등 갖은 핑계를 대며 이래저래 빠져나가기 일쑤였다. 당시 한 달에 100만 원 전후로 나에게 주는데, 이혼하면 남편도 집도 구하고 생활비를 따로 부담해야 되니 50만 원만 준다고 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아빠와 살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보내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독박 육아에 살림만 해도 버거운데, 한창 돈 들 일이 많은 중고등학생 2명에 50만 원을 준다니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왔다. 지금까지 가족에게 인색하게 굴더니 이혼할 때라고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는 인간이었다. 내 월급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닌데, 안 쓰고 알뜰하게 살아온 나에게 어쩌면 이렇게 무책임한 말을 할 수가 있을까. 양육비 청구 소송을 낸다고 해도, 남편이 안 주면 그만이라고들 하더라. 실제로 이혼하고 나서 양육비를 잘 안 줘서 힘들어하는 여자들이 많다고 들었다.
경제적으로도 어렵지만, 이혼하고 나면 아이 봐줄 사람도 없고 돈도 없으니 좋아하는 여행도 제대로 못 가고 인생이 그대로 나락으로 떨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여행 못 가는 것이 뭔 대수냐 싶겠지만, 그런 생각까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직장과 집만 오가다 우울증이 오고, 아이들에게도 화풀이를 할 것 같았다. 모든 것을 혼자 책임지고 혼자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무섭게 옥죄어왔다.
무엇보다 아이의 눈물. 언제나처럼 싸우고 냉전하다 그렇게 지나갈 줄 알았던 부모에게서 고성이 오가고 이혼 얘기가 나오고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된 큰 아이가 진짜 이혼할 거냐며 엉엉 우는 것이었다. 친구 부모님 중에도 이혼한 케이스가 있다고 처음에는 담담하게 말하던 아이였다. 부모의 이혼으로 사춘기의 아이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고 비뚤어지면 어떡하지 걱정이 되었다.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마음의 그늘을 왜 죄 없는 아이들이 지고 살아야 하나. 그래, 지금까지 참은 게 억울해서라도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더 버틸 수 있다. 자존심이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모멸감이 꿈틀대도 꾹꾹 눌러주며 하루하루 살았다. 살다 보니 좀 괜찮은 날도 있었고 서로 웃으며 농담할 수 있는 날도 오더라.
점, 사주, 타로 등으로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려는 분들이 있다면 말리고 싶다. 행복한 사람은 그런 곳에 잘 가지 않는다. 어떤 마음으로 그곳에 가는지 나도 알지만, 결정은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자신이 하는 것이다. 점쟁이, 역술가라고 해서 이혼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미래를 알고 다가오는 액운을 모두 막는 것도 아니다. 나는 운보다 마음에 모든 해법이 있다고 믿기로 했다. 현실은 냉정하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나의 따뜻하지 못하고 밀어내는 냉정한 태도, 여우 같지 못하고 곰 같은 성격의 마누라를 만나서 남편도 힘들었을 것이다. 서로가 취미도 다르고 성격도 잘 맞지 않아 이런 일이 생겼지만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둘 다 같을 것이라고 믿는다. 세상 어느 누가 내 아이를 애들 아빠만큼 사랑할 수 있을까. 말뿐인 사랑이라고 해도 말이다. 부족한 인간이지만, 그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남편의 외도에 대한 심증은 있었으나, 물증은 없는 상태로 우리는 법적 효력이 없는 한 장의 각서에 합의를 하고, 서로 조심하면서 부부 사이는 좀 더 나아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술에 취해서 12시 넘기기 직전에 귀가한 남편이 식탁에 핸드폰을 두고 간 것을 발견했다. 만약 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다.
순간 조금 망설였지만, 진실을 알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에 핸드폰을 열어 카톡을 확인했다. 어떤 여직원에게 자꾸 놀러 오라고 한 카톡이 몇 개, 여러 여직원과 함께 술을 마신 것을 알게 되었지만,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 남편이 그들에게 엄청 애교스럽게 말한다는 것도. 문제는 어떤 여자에게 보고 싶다고 사랑의 긴 고백을 한 톡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몇 달이 지나도 톡을 확인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 여자가 지난 사건의 주인공인지, 아니면 외박은 다른 사람과의 원 나잇 스탠드였는지도 나는 모른다. 육체적인 관계가 있었든 없었든, 남편에게는 혼자 좋아하는 여자가 있었던 것이다. 불쾌한 진실이었지만, 마음에 묻어두기로 했다.
남편이 가끔, 아니 자주 남처럼 느껴진다. 가족보단 자신의 꿈이 먼저인 사람. 원래도 말을 잘 했지만, 몇 해 전부터 책을 많이 읽고 더욱 달변이 되어버린 사람. 자신의 동굴에 있을 때 외에는 자꾸 말을 걸어서 우리는 모두 귀찮아한다. 남편은 소통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기도 해서 가끔은 깜짝 놀란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그런 사람을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남편은 어느 날 훌쩍 꿈을 찾아서 우리 곁을 떠날 것만 같다. 아니면 현실 감각이 없어서 사기를 당할지 몰라도 그것은 그의 몫.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그때까지는 아이들에게 최선의 모습을 보이고 싶다. 그리고 작별하는 날이 오면 원망이나 미움 없이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싶다. 그는 전원 속에서 그의 꿈을 위해, 나는 내가 꿈꾸는 여정을 향해 그렇게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황혼의 이혼이 될지, 머지않은 시기의 졸혼이 될지는 모르지만, 컴퓨터 하드에 이혼서류 저장해 두고 마음속엔 이혼장 하나 품고 있다. 우리 사랑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것을, 그도 나도 알고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