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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다 Dec 10. 2023

블로그와 기록과 작가의 시간

기록에의 강박, 닿지 못하는 좌절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여행 포스팅을 하는 것은 재능의 낭비일까. 작가 지망생이 맛집, 카페와 소소한 일상 포스팅을 하는데 시간을 다 뺏기고 있다니 때로는 나 자신이 한심하게 보인다. 여행, 맛집, 일상 블로거를 무시하는 게 아니다. 내가 가진 유한한 시간과 능력을 중요한 것에 쏟아붓지 못하고 흘려보내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그러면서도 놓지를 못한다.


기록에 대한 강박이 좀 있다. 내가 간 곳, 본 영화, 읽은 책, 나의 생각 등에 대해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강박적인 욕구가. 꼭 필요한 핵심만 콕콕 집어서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것까지 쓰고 싶고 많은 사진을 담고 싶어 한다. 몇 개 빼려고 하면 아까워서 고르다가 시간이 지나간다. 중요한 것만 간추리지 못하고 부수적인 것에 더 신경이 분산되고 있는 형편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별것도 아닌데 시시콜콜하게 다 기록으로 남기려는 욕망에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다. 강박적인 기록의 습관에서 내가 건져올릴 것은 무엇일까.


문제는 그 모두를 담아낼 정도로 부지런하지 않다는 것. 그래서 좌절하고 늘 시간에 쫓기는 기분이다. 그러다 아예 맥을 탁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택하기도 한다. 요즘 계속 제대로 된 글쓰기를 하지 못하고 있다. 짧은 몇 문장만 스치고 지나갔다. 꼭 길게 쓰려고 하지 말고 짧은 글쓰기도 괜찮지 않을까. 요즘 사람들은 길면 아예 읽지 않는다고 하는데. 호흡이 긴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은 연습 부족일까, 재능 부족일까.



나의 최고 취미이자 주요 활동 무대인 블로그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블로그라는 장과 블로그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해서. 현실계와 같이 여기도 진실한 사람이 있고 위선적인 사람이 있다. 재미있는 사람도 있고 진지한 사람도 있다.


블로그 이웃은 가상 세계의 연인이라 더 부담이 없기도 하고 때로는 현실의 친구보다 더 나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친밀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소셜 인연은 시절 인연이다. 어느 순간 블로그를 떠나는 사람도 있고 새로 블로그를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 생과 사가 함께 있으니 또 하나의 세계이다. 


블로그란 현실 세계의 축소판이 아니라 확장판일지도 모르겠다. 현실적으로 내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관찰하고 인연을 맺고 그러다 멀어지기도 한다. 만나고 싶어도 바로 만나기 힘든 가상의 인연이라 때로는 공허하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나의 세계는 소셜 네트워크 속에서 더 넓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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