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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다 Mar 10. 2024

나는 왜 힘든 길을 선택할까

비극의 주인공처럼



 짧지 않은 시간 내가 살아온 궤적을 되짚어본다. 꼭 이렇게 살아야 했을까? 선택의 갈림길마다 왜 나는 평탄한 길을 두고 더 힘든 길을 선택했을까? 뻔히 고난이 예기되어 있는 길, 쉬운 길 말고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 것은 어떤 심리일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내가 너무 싫어져 가슴이 답답해진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는,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누구에게? 나를 인생 실험의 대상으로 삼고 어떤 결과를 도출할 것인지 모험해 보고 싶었던 것일까? 어쩌면 나는 스스로가 특별한 사람임을 입증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전설의 그룹 들국화의 '내가 찾는 아이'의 가사에 나오는 '흔히 볼 수 없'는 그런 사람. 나 말고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조금 삐딱한, 꽈배기처럼 꼬여 있는 것처럼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


 사람들이 말하듯 내 인생에도 소설이나 인생극장 같은 이야기가 있다. 인생의 마디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하는 길 말고 어려운 길을 선택했으니까.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와서 대학에 떨어지고 후기 대학이나 전문대를 가거나 재수를 해도 됐는데, 그냥 대학 따위 가고 싶지 않다고 포기했다. 당시 유행했던 책 제목처럼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가정 형편상 유치원에 가지 않았지만)에서 배웠다고 거만하게 선포했다. 일해서 독립하고 싶었지만 일자리를 구하긴 쉽지 않았다. 거듭되는 실패를 통해 많이 깨진 후, 이 모든 것은 쓸데없는 책을 많이 읽은 탓이라고 생각하며 활자 혐오에 빠지기도 했다. 당시에는 형편이 어렵거나 성적이 안 된다면 몰라도 대부분 대학은 나와야 된다고 생각하던 시대였다. 누가 종용한 것도 아닌데 나는 왜 대학을 포기하고 삐딱선을 탔을까?


 수많은 실패를 겪고 난 뒤 겨우 독자 노선보다 일반 노선을 택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힘들게 공부하여 대학에 가고 임용시험에 합격했다.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밝은 절정기였다. 가족들은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도 않아 나는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오체불만족인 사람과 '너는 내 운명'을 외치며 결혼해 버렸으니, 그 무슨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가족과 친구들은 말했다. 넌 착하지도 않으면서 왜 착한 척하냐고. 나이는 많지만 이제 선생이 되었으니 선 봐서 좋은 데 시집가면 되는데 왜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냐고 했다. 원래 말리면 더 활활 불타오르는 게 사랑 아니던가. 그렇게 나의 인생은 겨우 '보통 사람들'과 비슷한 삶으로 회귀하려는 시도를 포기해 버렸다. 종교적인 열정이 아니라 뒤늦게 사랑에 눈먼 자의 자발적인 선택이었다.


 최근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직장을 옮기면서, 더 좋고 편한 자리가 있었는데 부탁하는 말 한마디 하는 게 어려워서 더 힘든 자리에 가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일에 대해서 열정적인 사람도 아니다. 이제 쉬엄쉬엄 일하면서 책 읽고 글 쓰고 자기 계발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일 욕심이 많은 것도 아니면서 너무 심심한 자리는 또 싫었으니 그것이 나를 불편함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늘 툴툴거리며 후회한다.


 나이 든 대학생이 되었을 때 교양 영어 과제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짧은 영어 소설의 일부분을 읽고 뒤에 이어질 결말을 써보라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우리말로 쓰는 것이었는데, 내가 쓴 글에 대한 교수님 피드백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너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것 같다는 식의 이야기였는데, 주변을 보니 다들 행복하고 훈훈한 결말이 많았다. 그런데 내가 쓴 이야기는 슬프고도 구질구질한 불행의 서사였다.

 사고 패턴이 이러니 나는 늘 불행을 선택했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 미치도록 슬퍼진다. 구제받을 수 없는 죄인처럼 불행과 슬픔에 묶여 헤어날 수 없는 것일까.


 인지심리학 이론에서 자동적 사고, 스키마 등의 이론을 들어봤다. 인생을 통틀어 이렇게 살아왔으니까, 이미 각질처럼 굳어진 사고의 틀은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 의식적으로 계속 노력하고 수정해 가는 수밖에 없다. 다음 선택의 갈림길에서는 좀 더 현명하게, 더 나은 것을 취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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