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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다 May 12. 2024

매혹되지 않는 영혼



어딘가에 깊이 빠진 적이 언제였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항상 미적지근한 영혼은 어디에도 깊이 몰입되지 않는다. 글쎄, 누군가가 작정하고 덤빈다면 오히려 피할 것 같다.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면 처음엔 호기심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 사람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흥미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다고 생각되면 관심이 이어지지 않는다. 남녀노소, 대상이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관계 없이 그러하다. 나이가 들어서 가수나 연예인에게 빠지는 중년도 많던데 영화배우나 작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 누구도 나를 깊이 매혹시키지 못한다.


나는 깊이 있는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는 차가운 인간인가 잠시 비애에 젖기도 한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세상엔 '금사빠'도 있고 냉혈한도 있는 것 아니겠나. 너무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은 딱 어중간한 사람. 한때 내가 다정한 사람이 아닌 것이 부끄러웠다. 누군가의 그런 지적이 몹시 아프게 여겨져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마음의 온도는 의도적인 노력에 따라 좀 나아지기는 하겠지만 선천적인 기질과 자란 환경에 많이 좌우되는 것임은 분명하다. 다정하지 않은 사람이 다정하게 보이려 노력하는 것은 몹시 피곤한 노릇이다. 잘 보이려는 노력은 관계의 초반에 집중되기 마련 아닌가.

사람 뿐만 아니라 어떤 취미에도 깊이 빠지지 못한다. 책에 집중하기에는 너무 산만하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의 저자(최은영, 이나가키 에미코)가 무척이나 매력적이고 마음을 홀리는데도 불구하고 책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심지어 단편소설집도 그렇다. 하기야 늘 그랬던가. 

시간이 없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어영부영 시간을 흘려보내고, 책을 못 읽었다고 청소를 못했거나 겨울옷을 정리하지 못했다고 후회한다. 청소와 정리가 끝난 후의 뽀드득한 윤기는 나를 매혹시키지 못한다. 깔끔함을 선망하면서도 게으름을 이길 정도로 몰입하지 못하는 분야인 것이다. 


그 어떤 것도 나를 사로잡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문득 슬퍼진다. 어쩌면 이것도 나이 듬의 반증일지도 모르겠다. 99프로가 되지 못해도 20프로의 집중력이라도 남아있음에 감사하면서 남은 시간을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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