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도시의 아파트는 그야말로 주차난이 심각하다. 1 가구 2 자동차 이상인 집이 많다 보니 늦게 들어오면 주차할 곳도 없고 이중 주차는 기본이다. 지하, 지상, 도로변 할 것 없이 차로 넘쳐난다. 정시에 퇴근하고 아침에 출근하다 보면 이중 주차된 차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한다. 기어 중립으로 되어 있으면 다행인데, 요즘 나오는 차나 외제차는 기어 중립으로 시동을 끄기가 안 되는 차도 있다고 한다.
내 차를 가로막고 있는 차를 밀다가 안 밀리면 차주에게 전화를 해야 되는데, 전화번호 표시가 없는 차도 간혹 있다. 그러면 지각할까 봐 애간장이 탄다. 관리실에 전화해서 해결한 적도 있다. 어떨 땐 이중주차되어 있는 차 세 대가 쪼르륵 붙어 있어서 밀 공간이 부족하거나 잘 밀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보통 아침을 먹지 않거나 커피 한 잔 가볍게 마시고 내려오는데 이중 주차된 차가 떡 하니 가로막고 있으면 평소에 하지 않던 근력 운동을 하는 셈이다. 쉽게 밀리는 차도 있지만, 큰 차는 기합을 넣으면서 밀기도 하는데 어떨 땐 내가 차력술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최근 며칠은 경차가 세워져 있을 때가 많아 가볍게 밀고 출근했다. 출근하기 싫은 월요일이나 휴일 다음날이면 왠지 차를 미는데 더 억울한 마음이 들거나 괜스레 한숨이 나올 때가 많다.
주차장에서 몇 분을 까먹고 아파트 정문에서 나갈 때 또 몇 분을 소비할 때도 많다. 겨우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국도를 따라 달리다 보면 내 앞의 차가 너무나 정직하게 제한속도 60km를 지키고 있다. 속도 제한 구간에서 어떨 땐 앞차가 40-50km로 달릴 때가 있는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며 나쁜 생각이 들었다. 박아버릴까. (나 소시오패스인가? 어쩌면 내 뒤의 차도 내 차를 보며 같은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언어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뇌를 잠식하는지, 얼마 전에 읽은 베스트셀러 단편소설집에 나왔던 '죽어버릴까'가 나도 모르게 '박아 버릴까'로 바뀌어서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순간 움찔하며 의식의 표면에 불쑥 떠오른 낱말을 지우개로 지우려고 했다. 운전하다 보면 성격 나온다는데, 나도 모르게 점점 거칠어지는 것은 왜일까.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 때문만이라고 단정 짓지는 못하겠다. 요즘 갱년기 우울증인지 자꾸 울화통이 터지고 심화가 돋는다. 겉으로는 아닌 척하는데 속은 썩어 들어간다. 차라리 화내고 윗사람이든 누구든 기분 나쁘면 박아버리는 것이 정신 건강에는 좋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성질 죽이며 운전해서 오늘도 무사히 직장 생활하고 퇴근하면 홈, 스위트 홈이 기다리고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말 안 듣는 사춘기 애들 둘을 거의 혼자 키우고 있다 보니 고단한 직장 생활, 그 인내의 보람이 가정에서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래 힘들게 돈 벌어봐야 뭐 하겠냐는 의문이 들 지경이다. 이런 날은 저녁 식사 준비도 하기 싫어서 배달을 시키거나 대충 때우게 된다. 고단한 출퇴근길 혼자 '죽어버릴까, 박아버릴까, 아니면 떠나버릴까', 삼 단 멜로디를 혼자 되뇌며 오늘도 직딩 시지프스는 바윗돌을 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