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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다 May 07. 2024

잠 못 드는 밤 글은 내리고



아, 또 비가 내리고 있다. 지긋지긋한 비. 

비도 오고 바람도 불고 내일 또 출근해야 하는 내 마음은 아기처럼 울고 있다. 

이렇게 비가 오는 밤에 글이라도 주룩주룩 내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단편적으로 오가는 생각들이 글로 이어지지 않음이여.

안 그래도 글선생님들은 내 글이 너무 짧다고 하는데, 머리에 든 게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문단으로 이어지지 않고 스치는 바람처럼 한 문장 한 문장 떠올랐다가 제풀에 스러진다.

언제 글이 쓰고 싶었고 나만의 책을 내고 싶었던가. 그런 소망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의 것이었나.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으나 열정은 잠시 반짝거리다 금세 꺼져 버린다. 

홀짝홀짝 맥주를 마시고 영화를 보고 생각나면 책을 읽고 아주 가끔 산책을 하며 영감을 기다리기도 하지만, 그분이 오시지 않네.

이럴 땐 단무지가 되고 싶다. 단순 무식 지멋대로 의자에 앉아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처럼. 글이 뭐 별건가요 하면서.


하필이면 비도 오는 밤에 한쪽 손에는 비닐과 음식물 쓰레기, 다른 손에는 20리터 쓰레기 봉지와 종이 쓰레기 뭉치를 들고 분리수거장으로 갔다. 비를 좀 맞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돌아오면서 어쩐지 처량한 생각이 들었다. 혼자라는 것이 빗방울처럼 부딪쳐왔다. 쓸데없는 자기 연민에 잠깐 한숨을 쉬었다가 다음 순간 힘이 센 스스로가 대견스러워졌다. 


한때 반대를 무릅쓰고 열렬히 사랑하여 결혼한 남녀는 이제 그 온도를 잃었다. 남자는 사무실의 다른 여자를 위해서는 친절하게도 밤 12시 회식 끝나고 한 시간 거리의 집까지 모셔다 줬다는데, 법적인 아내를 위해서는 한낮의 20분의 운전도 마다한다. 몸이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나를 향한 그의 친절도 나의 차가운 분노도 남아 있지 않은 지금, 우리는 서양식 부부처럼 쿨하게 행동한다. 각자의 집에서 따로 인생을 살면서 가끔 전화하고 아이를 핑계로 일주일에 두세 시간 왕래하고 어버이날은 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챙기고 있다. 

인생이란 참 당연한 것도 없고 늘 항상성을 유지하지도 않는다. 관계라는 것이 지옥이 되기도 하고 그러다 돌변하여 힘이 되기도 한다. 지금은 그저 흐르는 대로 지켜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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