樂 8. 내 멋대로 홈베이킹
특별한 이유 없이 마음이 무겁고 어깨가 처질 때, 저 멀리서 사소한 몇 가지 걱정거리가 마음을 어지럽힐 때, 이상하게 한숨이 연거푸 나올 때 나는 간단한 빵을 만들었다. 빵을 만들거나 빵을 이용한 간단한 요리를 하면 자연스럽게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최근 읽은 책인 소설가 백수린의 에세이 '다정한 매일매일'에서 작가는 (나처럼) 대충 빵을 굽고 누구에게 선물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빵의 생명은 사실 재료의 정확한 계량인데 그걸 마음대로 무시하고 단지 빵 굽는 과정을 즐기기 때문이다. 작가님은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 하나에 맛있는 음식을 떠올리듯이, 빵 하나에 문학 작품 하나를 연결해 이야기를 멋지게 풀어나간다. 안 그래도 빵을 좋아하는 내가 어떻게 이 책에 빠지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어쨌든 15년째 초보인 나는, 어디서 베이킹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다. 발효빵은 먹기는 잘 먹지만 만들지는 못한다. 인터넷에서 보고 집에서 취미로 만드는 것이라 어디 가서 빵 만든다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이다. 하지만, 아이들 어릴 때는 베이킹한답시고 머핀이나 쿠키 등을 만들어 여기저기 선물하기도 했다. 초심자의 용기랄까. 아마 받는 분들은 좀 곤란했을지도 모르겠다. 빵 만들기에 대한 의욕은 어린 시절 엄마가 집에서 만들어주신 피자나 도넛, 무엇보다 카스텔라의 추억 때문에 더 고취되었다. 그 시절 엄마들의 발치에도 못 따라갈 정도이지만, 아이들 어릴 때는 작은 컨벡스 오븐으로 간식을 만드는 것이 무척 보람되고 재미있었다.
이런 베이킹 의욕을 가로막는 것이 있다면 베이킹은 다이어트의 확실한 적이하는 것이다. 물론 요즘은 쌀 베이킹이나 노밀가루 베이킹 등이 레시피가 시중에 떠돌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건강 레시피는 맛이 덜하다는 것이다. 나도 치아바타나 포카치아, 캄파뉴 등 건강빵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런 것은 초보인 내가 만들어보니 영 못 먹겠더라. 역시 빵에는 버터가 들어가 줘야 맛있다. 오일 베이킹은 개인적으로 선호하지 않는다. 코코넛 오일을 사용해서 베이킹을 해보았는데 역시 버터를 못 따라온다.
영화 '줄리 & 줄리아'에서 8년간 소설가를 꿈꾸며 뉴욕에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줄리는 어느 날 회의를 느끼고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다. 주제는 요리. 르 꼬르동 블루 출신의 유명 셰프 줄리아의 요리 책을 보며 따라 하면서 블로그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줄리는 꿈에 가까이 간다.
"직장 일은 무슨 일이 생길지 짐작도 못하는데 요리는 필요한 재료를 넣으면 결과가 확실해서 좋아."
하지만 요리를 해본 사람이라면 같은 재료를 넣는다고 같은 요리가 나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특히 인스타나 숏츠에 나오는 영상을 따라 했는데 결과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줄리는 특히 버터를 극찬하면서 토마토 브루스케타를 만들 때 버터를 듬뿍 넣어서 바게트를 구워줘야 맛있다고 했다. 버터의 향기가 가득 풍기는 주방은 가라앉은 기분을 달래주는 마법 같은 향기이다.
가장 간단한 빵 만들기로 유명한 스콘. 일단 재료가 간단하고 만드는 방법이 쉽다. 잘못 만들면 퍽퍽하기도 하지만, 커피와 곁들여 먹으면 맛있다. 예전엔 초코칩을 넣어서 굽거나 대파, 크림치즈, 옥수수 등 여러 가지 재료를 사용해서 변화를 주기도 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스콘은 생크림이 들어간 플레인 스콘이다. 안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잼을 바르지도 않는다. 그냥 커피만 준비하면 오케이.
또 하나 의외로 간단한 것은 치즈 케이크다. 바스크 치즈케이크를 한 번 만들어 본 적이 있는데, 질 좋은 크림치즈만 준비하면 만드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물론 전문가가 만드는 것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집에서 먹기에는 괜찮았다.
아이들이 크면서, 그리고 베이킹의 뒷 설거지가 귀찮아서 베이킹을 하는 횟수는 확 줄었다. 그런데도 베이킹 도구는 버리지 못하고 있다. 가끔 빵 굽는 향이 그리워질 때면 스콘을 굽는다. 버터향이 공기 중에 퍼지면 한숨 대신에 미소가 머물고, 잠시 걱정은 안드로메다로 사라진다. 다만, 너무 자주 버터 향을 호출하면 급격하게 붓는 뱃살 때문에 더욱 우울해질 염려가 있으니 자중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