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또는 자주 마십니다
樂 7. 커피와 알코올이 주는 위안
인생의 낙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내 인생의 즐거움을 6가지 모아 보았다.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밑천이 떨어지려고 하는 것을 겨우 쥐어짜서 일곱 번째 낙을 찾았다. 어쩌면 너무 내 생활에 자연스레 밀착되어 있기에 특별한 낙이라고 여기지 못한 것도 같다. 커피를 매일 마시고, 알코올도 종종 찾는다. 그것은 생활의 작은 위안이자 가벼운 중독이기도 하다.
매일 커피를 서너 잔 이상, 어떨 때는 다섯 잔도 마실 때가 있다. 내 나이를 생각하면 골다공증 예방을 위해 좀 줄여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지만, 생각으로 그칠 뿐이다. 먼저 아침에 일어나면 네스프레소 캡슐로 룽고 한 잔 내린다. 캡슐은 주로 네스프레소에서 여러 가지 캡슐을 사서 재어 놓는다. 네스프레소 캡슐에 싫증이 나면 일리를 사거나 스타벅스 호환 캡슐을 주문한다. 처음 네스프레소 캡슐을 먹을 때는 아르페지오를 제외하면 너무 맛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지금은 익숙해졌다. 아주 가끔 원두를 사서 핸드드립으로 마시기도 하지만, 집에서 내리는 것은 귀찮기도 할뿐더러 카페에서 마시는 것과 차이가 나기에 원두는 구석 자리에서 곧 잊히고 만다.
출근해서는 주로 카누 다크로스트를 1~2잔 마신다. 여러 가지로 바빠서 당이 당길 때는 맥심 모카골드를 한 잔 마신다. 마시고 난 후 텁텁함이 싫지만, 힘들게 일한 후 마시는 맥심 한 잔은 달콤한 위로가 된다. 퇴근하면서 저렴한 음료 체인점에 들러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그렇지 않을 때는 집에 와서 저녁을 먹은 후에 커피를 한 잔 마실 때가 많다. 오후에 커피를 마시면 잠이 안 온다고 마시지 않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꿋꿋하게 커피를 마신다. 디카페인 커피는 너무 맛없기에 잘 마시지 않지만, 네스프레소 아르페지오 디카프는 마신다. 피곤할 때는 커피를 마셨는데도 저녁을 먹고 나면 바로 뻗어서 잘 때도 많다. 물론 수면의 질이 높지는 않을 것이다.
임신했을 때도 하루에 1잔은 마셨을 정도로 커피를 좋아했다. 남들은 커피를 마시면 피부가 까만 아이가 나온다고 하던데, 우리 집 애들은 피부가 희다. 블랙커피가 다이어트와 두뇌활동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며 줄곧 커피를 가까이해 왔다. 아마 내 뱃살의 30프로 정도의 지분은 커피의 프림이 아닐까. 고등학생 때부터 믹스 커피를 많이 마셨으니 말이다.
커피를 좋아하고 오래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커피 취향이 고급지진 않다. 물론 물 탄 것 같은 싱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지나치게 쓰거나 산미가 많이 나는 커피는 즐기지 않지만 까다롭지 않게 아무 커피나 마신다. 가끔은 주말에 드라이브 가서 예쁜 카페에 앉아 스콘이나 휘낭시에를 곁들인 커피를 마시는 것은 여행에 버금가는 즐거움을 준다.
술은 일주일에 평균 2-3회는 마시는 것 같다. 주종은 맥주이지만 스파클링 와인이나 소비뇽 블랑을 가끔 마시기도 한다. 소주는 못 먹고 막걸리는 잘 받지 않는다. 하이볼이 맛있어서 일본에서 산토리를 사 와서 조제해서 마셔봤는데, 아무리 해도 파는 것 같은 맛이 안 났다. 왜 그럴까? 하이볼은 제주도 예쁜 카페에서 마실 때가 최고로 맛있었던 것 같다. 주로 집에서 혼술을 즐기는데, 술이 약해서 한 잔만 마시면 얼굴이 빨갛게 되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후로는 직장 회식에서도 꼭 술을 권하지는 않기에 체면을 유지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당황스러운 것은 술 한 잔 하고 물 마시러 나왔는데 딸이 "엄마, 술 마셨어?" 하면서 물을 때, 진짜 부끄럽다. 이제는 묻지도 않지만 나도 가능하면 아이에게 아름답지 않은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다. 가끔 술을 끊을 거라고 다짐하고 1주일 이상 마시지 않을 때도 있다. 술을 끊으려면 장 볼 때 술을 사놓지 않으면 된다. 술이 없는데 나가서 사 오는 것은 귀찮으니까. 물론 가끔 치킨 집에 생맥주를 같이 주문할 때도 있기는 하다.
내가 어쩌다 알코올을 이렇게 가까이하게 되었나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애주가인 아버지를 보면서 술 마시는 남자를 경멸했고, 그런 만큼 술을 잘 마시지 않았다. 그런데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건 아닌 것 같다. 대학교 때 친구들과 가끔 레몬소주를 마셨고 짝사랑에 괴로워할 때도 술로 잊으려고 했다. 속이 울렁거렸지만 토할 정도로 마시지는 않았다. 그토록 싫었던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가는 건 아닐까.
언제부터 혼술을 즐기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10년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인데, 최근 몇 년 동안 자주 마신 것 같다. 결혼생활이 괴롭다고, 사는 게 힘들다고, 친구가 없어 외롭다고, 일하기 싫다고, 애들이 속 썩인다고 핑곗거리를 찾아 술을 마셨다. 깡술만 마시는 게 아니라 안주를 같이 먹게 되고 저녁 늦게, 또는 저녁 대신으로 먹을 때가 많기에 전부 살로 비축된다. 삶의 힘겨움을 알코올에 의존해서 푸는 것이다. 맥주 한 캔 또는 와인 한 잔으로 다른 사람이 몇 배를 마신 것 같은 효과를 낳는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기분이 살짝 좋아진다. 그렇지 않을 때는 좀 더 마실 때도 있다. 오늘은 산토리를 많이 붓고 하이볼을 한 잔 만들어 마셨다. 맛이 없어서 반쯤 먹다 버렸다. 기분부전증이 있는 내가 알코올에 의존하지 않고도 좋은 기분과 평온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건강하고 지혜로운 방법으로 백해무익한 술을 끊을 수 있기를 바란다. 습관처럼 술을 마시고 알코올에 의존하는 나약한 인간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 만약 내가 술이 세서 맥주가 음료가 된다면 가볍게 한두 잔 마시는 것은 괜찮겠지만, 술이 약한데도 자꾸 마시는 것은 문제다. 습관의 고리를 끊고, 커피 대신 몸에 좋은 차를 마시자고 다짐해 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