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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다 Oct 25. 2022

나는 왜 같은 말을 반복할까

의무감과 좋아서 하는 것



  '나는 말을 잘 못해서…'

언젠가부터 말하기 전에 이런 쉴드를 치고 시작할 때가 많아졌다. 특히 부담되는 자리일 때 더 그러하다. 이런 말을 반복한다는 것을 자각했을 때 문득 서글퍼졌다. 나는 왜 이렇게 자신 없는 말로 스스로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것일까. 사람들로부터 주목받는 것이 싫어서, '내 말은 중요하지 않으니 귀 기울이지 마세요', 이런 뜻으로 하는 말일까.

카페에 가도 구석자리에 앉아야 마음이 편안한 사람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말을 잘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믿지 않는다. 겉으로는 감탄할지라도 말을 너무 번지르르하게 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전부 내주지 않는 사람이 많다. 솔직하고 마음을 담은 간결한 말로 족하다. 진실되고 변함없는 마음은 어떤 사람이든 감동시킨다. 하지만 내게는 그런 '한결같은' 진실함이 있는 것일까 자문해 본다.

  지난주부터 매일 1편 글을 써서 브런치북을 마무리해야지 생각했는데 지난주 통틀어 딱 1편 썼다. 이왕 시작한 것에 끝맺음을 해야겠는데 마음뿐 쉽지 않다. 진짜 쓸려고 하는 글은 안 써지는데 다른 글은 막 쓰고 싶기도 하다. 하기야 여행 글도 써야지 말만 할 뿐 늘 적체 상태인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독서도 글쓰기도 운동도 다 힘든 요즘이다. 뭐든 좋아서 해야 되는데, 의무감으로 시작하면 하기가 싫어지는 게 사람의 마음. 

운동도 한동안 그랬다. 수영만큼 지독시리 못하면서도 내 마음을 매혹시킨 운동이 또 있었던가. 물에서 노는 건 좋지만, 코로나 이후로 안 가게 되니 자꾸 핑계만 늘고 다시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 나이가 드니 수경 자국이 많이 남아서 팬더가 되는 게 싫다거나 여름엔 사람이 많아서 가기 싫고 지금은 입수 전후의 추위가 몸서리쳐져 못 가겠다고 핑계는 매일 비슷하다. 한동안 열심히 걸었던 산책도 덥다고 혹은 춥다고 많이 느슨해졌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은 몸이 안 좋아 치료를 받으면서도 계속 운동을 하는 분들이 많다. 좋아서 하는 것이니 고통도 이긴다.

  책도 마찬가지다. 책이 좋아서 읽는 것이 아니라 뒤처지지 않으려는 의무감으로, 때로는 지적인 자극이나 무뎌가는 감성을 일깨우기 위해 읽을 때가 많은 것 같다. 독서가 의무가 되어선 안 된다고 했는데, 요즘은 책 읽는 남편 때문에 경쟁심으로 읽기도 한다. 책을 읽지 않을 때는 읽고 싶은 책도 정말 많고 서로 먼저 읽어달라고 손짓하는 것처럼 매혹적인 자태를 뽐낸다. 그런데, 일단 읽기 시작하면 금세 흥미를 잃어버리기 쉽고 그러니 완독률이 떨어진다. 독서가들은 완독률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데, 완독하지 않으면 그 책을 읽었다고 얘기하기 힘드니 참고 꾸역꾸역 읽거나 그것도 힘들면 금세 포기하고 다른 책을 읽기 시작한다. 한꺼번에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병렬 독서를 다독가들은 권하는데 그렇다고 진도가 빠른 것도 아니다. 이 책 저책 읽다 보면 산만하고 집중이 잘 안된다. 이번에 도서관에서 빌려온 6권의 책은 1권만 완독할 정도로 최악이었다. 책은 다 나름대로 흥미롭고 좋았는데 앞에 조금 읽다 보면 도무지 몰입이 안 되는 걸 어쩌랴. 그런 책은 던져버리고 진짜 나를 몰입하게 만드는 책을 읽어야 되는데, 지금은 잠시 쉬어갈 때인가 보다.

내가 정말 책이 좋아서 읽은 것은 어릴 때였다. 그 시절 책 속에서 발견한 행복의 조각을 다시 맛보고 싶다. 외롭고 누추하고 심심한 시간들을 잊게 할 몰입의 즐거움을 책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면, 내 전화를 받지 않는 30년지기 친구를 대신하고도 남을 것이다.

  글쓰기에 대해서는 '강원국의 글쓰기'를 읽던 며칠 전까지만 해도, 글을 잘 쓸려고 욕심을 부리니까 쓰기가 힘든 것이라는 작가의 말에 공감을 했다. 그냥 무작정 쓰자, 잘 쓸려고도 하지 말고 글의 구성도 생각하지 말고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일단 적어보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적은 몇 줄이 한 장이 되고 살을 덧붙여 한 편의 글이 되도록. 그런데, 작은 단상이 두세 장의 에세이가 되기 위해선 많은 독서와 사색을 통한 기본적인 지식의 데이터 베이스나 풍부한 이야깃거리가 있어야 된다. 그것이 부족하니 몇 줄 쓰다가 발행하지 못할 일기 같은 글만 양산하는 것이다. 

오늘도 데일리 루틴은 저 너머로 던져버리고 몇 시간이나 블로그를 하다가 결국 써야 할 글은 쓰지 못하고 12시가 넘어 버렸다. 처음엔 흥미롭게 느껴졌던 내 이야기에 내가 벌써 싫증이 난 것 같다. 임시 목차마저 얼마나 빨리 썼던가. 그때, 모든 게 반짝반짝 신선함을 잃지 않았을 때 써제꼈어야 한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나의 이야기를 써서 이 세상에 내 지문을 찍고 말겠다는 처음의 집중력이다. 매력적인 빛깔은 다소 퇴색되었지만, 용두사미가 될지언정 글을 마칠 수 있기를 바란다. 내 관심분야에서 재미를 찾아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일을 마무리 지으려는 의무감이라도 좋은 내적 동기가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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