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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다 Oct 15. 2022

브런치북과 글쓰기와 외로움





  카카오 브런치의 글을 읽다 보면 젊고 다양한 직장인들의 톡톡 튀는 글이 많다. 상대적으로 내가 나이 들었다는 자각이 든다. 젊은 사람들로 가득 찬 직장에 제일 나이 많은 것으로 선두를 다투는 위치에 있을 때(더군다나 관리자급도 아닌)의 그런 느낌은 이제 나에게 익숙하긴 하다. 승진을 못하면 능력 없는 자가 되어 쭈그러져 있거나 왕년의 잘 나가던 시절을 초년병에게 되풀이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보았던가. 그저 내 위치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는 것으로 족했다. 


  나이 들고 신선한 감각이 부족하다는 자각에도 불구하고 나는 과연 브런치에 계속 글을 올릴 것인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블로그와 달리 브런치는 본격적인 글을 쓰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작가'라는 이름으로.



  에세이와 일기의 중요한 차이점은 독자의 유무. 일기는 혼자 쓰는 고백이오, 에세이는 독자가 있는 글쓰기라고 했다. 그러면 독자가 없는 에세이는 에세이가 아닌가. 독자가 있어야(많아야) 내 에세이가 글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일까. 오래 관리한 블로그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과 댓글을 남겨주면 든든하고 따뜻한 위안이 된다. 그에 반해 브런치는 정말 허허벌판에 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누군가 공감을 눌러줘도 과연 이 사람이 내 글을 읽기는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지혜로운 글쓰기 선배님은 브런치에서는 공감이나 댓글 신경 쓰지 말라고 미리 조언해주셨다. 브런치 플랫폼의 출간 작가들은 구독자는 많지만 본인이 구독하는 글은 많지 않다. 자신의 콘텐츠와 글에 집중하지 다른 사람의 글 읽을 시간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 작가라면 자기 글을 써야지, 언제까지 남의 글만 읽으며 시간을 보내겠는가.


  친애하는 글쓰기 선생님은 초보 작가의 외로운 글쓰기를, 그 마음을 아시니 자신이 첫 독자요, SVVVVVIP 독자라고 하신 것 같다. 누군가 한 사람은 '마음을 다해' 내 글을 읽고 있다는 것이 한 줄기 위로와 눈물이 되어 마음을 밝혀준다.



  나의 큰 치부이자 비밀로 남겨뒀던 남편에 대한 글을 최근 올리면서 나는 무엇을 기대했던가.

  '정말 힘들었겠다', 이런 따뜻한 위로와 공감, 연민을 기대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마음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겠다. 하지만 사람들은 별로 남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 이 또한 지혜로운 선배님이 이야기했던 것.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반짝반짝 빛나고 폼나는, 있어 보이는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냥 어떤 지인처럼 지나온 내 시간을 솔직하게 글로 표현함으로써 (어두운 한 시대를 마감하는 기분으로) 묶어서 정리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음 인생을 시작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러면 그 시기를 글로 옮기는 것으로 소기의 목적은 달성되는 것이다. 실수투성이의 인생이라도 나름의 교훈은 있다.





  브런치북 프로젝트가 이제 일주일 남았다. 심지어 마감일인 다음 주말에는 아무 생각 없이 계획한 1박 2일 여행이 예정되어 있어 마무리할 시간도 부족하다. 포기할 것인가 시도해볼 것인가...



  시간에 쫓기면서도 막상 글쓰기를 시작하긴 어려워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펼쳤다. 그중에 마음에 부딪쳐온 구절들.



투명 인간으로 살지 않으려면 내 글을 써야 한다.

(강원국의 글쓰기 중에서)


각 신문사에서 주관하는 신춘문예는 12월에 마감을 하고 1월에 발표를 한다. 되는 사람보다 안 되는 사람이 해변의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것이다. 그 확률은 낮은 것이어서 심장을 뛰게 한다. 나 역시 신춘문예에서 많은 고배를 마셨다. 투고하고 온 날은 이상하게 추웠고 그 추위가 날씨와는 상관없는 추위라는 것도 참 이상했고, 그리고 결과를 기다리는 그 며칠을 미쳐버릴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바람에 떠다니는 기분으로 살았다.
  하지만, 떨어지는 것은 절대로 중요한 일이다. 당선되지 않았다는 것은 당선의 의미만큼이나 중요하며 역시나 안 되었다는 것은 되기 위한 과정으로도 중대하다. 내가 그리는 그림이 남에게 이해될 수 없다는 것도, 내가 간절히 바라는 마음만으로 도달할 수 없다는 것도, 그리고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커다란 상실감과 오기 또한 필요하다는 것까지도 알게 해 주니까. 낙선된 다음에 쓰는 글은 태도부터 달라질 수밖에 없다. 안 될 수도 있는 일에 말도 안 되는 확률이 도사리고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한 사람의 어느 한 단면은 바뀐다. 그 상황은 자신의 현재를 확대해서 볼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내부의 힘까지도 뭉근하게 키운다. 어딘가에 떨어져 보지 않는 우리는, 어디에선가 망해보지 않은 우리는 결코 성장할 수 없다.
출처 : 혼자가 혼자에게, 이병률(P.13-14)




#브런치글을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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