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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다 Dec 01. 2022

장돌뱅이 인생

매년 인사 이동철에 다가오는 고민



  인사이동을 위한 전보 내신철이다. 학교를 옮기느냐 마느냐 기로에 서서 고민에 휩싸이는 시기이기도 하다. 학생들이 입시를 위해 '내신' 관리를 하듯 학교에 몸담은 교사들도 전보 내신을 내고 이동을 한다. 사립학교는 그렇지 않지만 공립학교 교사는 보통 한 학교에 5년까지 있을 수 있다. 그렇게 만기까지 5년을 꽉 채우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다니는 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1년 후에 이동을 희망하기도 한다. 큰 도시 지역에는 보통 8~10년의 지역 만기가 있어 근무한 지 10년이 지나면 인근 지역으로 나가야 한다. 운이 좋으면 1년 후에 다시 들어올 수도 있지만 대개는 그렇지 못하다. 지역 만기가 없는 시골도 있다. 도시에서 출퇴근하기 용이한 군 지역은 인기가 많아 가기 어렵다. 지역 만기가 다 되어가는데 갈만한 곳이 없으면 고민에 휩싸인다. 이는 일반 교사보다 자리가 적은 특수교사, 보건교사, 영양교사면 더 그러하다. 아는 사람끼리 서로 얘기해서 둘이 바꾸어 원서를 내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분이다. 

  집에서 가깝거나 원하는 학교에 자리가 있는지 알아보고 전보를 희망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만기를 다 채우지 않았다면 다른 곳에 원서를 내서 발령이 나야 갈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은 불확실하다. 자리가 날 것이라 생각했던 곳에 내신을 냈지만 미발령으로 못 가게 되기도 하고, 자리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곳에 전임자의 타시도 발령으로 빈자리가 나기도 한다. 여러 곳에 전화해서 알아보고 신중하게 전보 내신을 내도 희망하는 곳에 못 가는 경우도 많다. 마음은 이미 다른 곳을 향해 있는데 희망지에 가지 못하면 한동안 마음이 신산하다.

  지역 만기가 아직 되지는 않았지만, 아이가 고 3이 되기 전에 나갔다가 들어오면 좋을 것 같아 작년에 인근 지역에 내신을 냈는데 떨어졌다. 거의 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2순위로 밀린 것이다. 올해도 인근 시골 지역으로 이동하려고 여러 교육청이나 학교에 전화를 했다. 내 성격에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해서 이런 것 묻는 것도 스트레스받는 일이다. 어떻게 작년보다 더 자리가 없다. 빈자리는 조금 있지만 일이 너무 많은 곳이나 교육청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곳이 대부분. 나는 올해 또 이 학교에 있어야 하나. 아니면 힘든 자리라도 옮겨서 고생을 해야 하는 걸까 생각은 자꾸 엎치락뒤치락한다. 

  일반교사와 달리 특수교사는 가르치는 학생이 매년 바뀌는 것이 아니므로 그것이 아동을 잘 파악하고 일관성 있게 지도할 수 있는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졸업하거나 입학하는 학생이 없으면 지겹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한 학교에서 3년이 딱 적당한 것 같다. 학생들도 같은 선생님이 계속 가르치는 것보다는 변화를 주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나이가 들수록 변화에 대한 스트레스도 커서 새로운 학교로 옮기고 다시 적응하고 이런 것이 힘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변화 있는 삶을 좋아하는 편이다. 너무 잦은 변화는 힘들지만, 적당한 주기의 변화는 삶에 생기를 북돋운다. 하지만 처음의 긴장됨과 어색함은 어쩔 수 없이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익숙한 장소에서 아는 사람들과 근무하다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에 맞춘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나이가 든 평교사일수록 더 그러하다.

  이제 어떤 학교에서는 관리자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축에 든다. 나이가 많은 선생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조기 퇴직을 하신 건지 명퇴를 하신 건지 아니면 시골에 계신 것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아주 많은 학교에 가면 더 늙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위축되기도 한다. 시스템은 자꾸 바뀌고 없었던 것이 새로 생겨서 때로는 신규가 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계속 수업 연구해서 흥미로운 수업을 만들고 행정적인 일 처리도 잘하는 교사가 된다는 것은 노력을 요하는 일이다.

  이제 조금은 편해지고 싶은 나이. 학생들과 실랑이를 하다 보면 내가 많이 늙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무릎을 굽혀 바닥에 앉아 있다가 일어설 때는 특히나 더. 내가 과연 정년퇴직을 할 수 있을까, 가끔 자문해 본다. 62세 정년퇴직을 위해선 부지런히 운동하면서 건강 관리도 하고 트렌드도 모르는 구닥다리는 되지 않으려고, 국가의 녹을 받는 공노비로 의무는 다하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너무 열심히 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너무 나태해서 스스로가 한심하게 여겨질 정도가 되지 않도록 중도의 길을 걷는다. 물론 열정이 있다면 더 열심히 하면 좋겠지만. 요즘 젊은 특수교사들은 똑똑하고 열정적인 선생님들이 많아서 보기 좋다. 

  오늘도 나는 머물 것인가 떠날 것인가 고민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는 선생님들과 통화를 하며 정보를 교환하기도 했다. 몇 년마다 근무지를 옮기니 지속적인 인간관계를 맺기가 쉽지 않다. 같은 학교에서 나름 친하게 지냈던 동료와도 다른 학교로 이동하면 서로 연락을 안 하기 마련이다. 직장에서 만난 인간관계는 그렇게 깊지 않고 서로 예의를 차리는 선에서 끝날 때가 많다. 장돌뱅이 인생에 직장이 달라져도 연락처에 남아 간혹 소식을 묻는 사람들이 다 귀하다. 이 떠돌이 인생이 서글프게 느껴질 때면 따뜻한 차 한 잔을 나누며 괜스레 싱거운 농담을 건네본다. 스치는 인연도 소중하니까.


#인사이동  #만기  #장돌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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