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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다 Dec 12. 2022

휴직, 여행, 다시 돌아감




  내 생애 첫 해외여행은 마흔두 살 때였다. 둘째 아이도 조금 커서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니 그제야 나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숨 가쁘게 지내온 몇 년 간의 시간. 이제 한고비를 넘겼다고 타이트하게 조였던 고삐를 느슨하게 풀고 나를 찾고 싶어 져서 1년간의 휴직을 감행했다.

  휴직하고 싶다고 했더니 남편은 쉬고 싶으면 쉬라고 선뜻 말했지만, 정말 내가 휴직을 할 줄은 몰랐다고 고백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살림이 아니었고 알뜰한 아내였기에 내가 경제적인 활동을 쉴 거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그냥 직장인의 투덜거림으로 여겼나 보다.


  특수교사로서 만 6년. 직장 생활이 너무 힘들고 적성에 맞지 않다는 회의감도 들었고 다른 길을 찾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슬며시 들었다. 그동안 열심히 일하며 아이 둘을 낳고 기르느라 힘들었으니 1년쯤 휴직하는 것은 으레 받을만한 보상이라 여겼다. 돈이 없으면 아껴서 살고 나중에 복직해서 또 벌면 된다는 생각에 결단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한동안은 아침에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날 듯이 마음이 가볍고 즐거웠다. 공책에 적힌 인생 버킷리스트를 참고하면서 일 년 동안 하고 싶은 것도 적어보았다. 쉬면서 책도 읽고 여러 가지 취미 생활을 하는 것이 두어 달은 몹시 행복했다.

  하지만 취미 생활도 돈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아이들이 어렸고 시골 살림이니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남편의 적은 월급으로 4인 가족의 생계를 꾸리는 것은 늘 빠듯했다. 30만 원 조금 넘는 육아휴직 수당으로 개인 용돈과 취미 생활을 하는 것은 아무리 알뜰하게 살아도 힘들었다. 물론 아무도 안 만나고 집에만 있는다면 괜찮겠지만. 의료보험을 복직 후에 내는 것으로 유예하니 조금은 나아졌다.


  출근하지 않고 취미 생활하면서 놀면 좋을 것 같았는데, 몇 달 쉬어보니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일단 존재감이 희미해지면서 스스로가 무능하고 무가치하게 느껴졌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나는 뭘 할 수 있지? 생각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전에는 공부를 더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영문학 학위나 특수교육 석사학위를 받아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곰곰이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여 직업을 바꿀 엄두도, 그럴 분야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결론은 이미 마음속에서 내려져 있는 것이었다.

 '이 나이에 이만큼 벌 수 있는 직업이 어디 있겠어. 퇴근도 5시 전에 하고 방학도 있는데...'

  같은 아파트에 사는 조선족 아주머니가 나를 보고 "선생질하세요?" 하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배운 게 '선생질'밖에 없고 잘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교사는 성직도 전문직도 아니다. 전문직이라고 주장하지만 사회적 위상이 전문직으로 대접받지 못한다.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데, 힘들고 어려워도 해야지 어떡해. 세상에는 월급도 쥐꼬리만큼 주면서 치사하고 더 힘든 일도 많다는 것을 나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렇게 몸부림을 치고 반항을 해 봤지만 배운 게 이것밖에 없어서, 결국 스스로의 쓸모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교사로 돌아갈 결심을 했다.

  지금은 힘들고 어려워도 일할 수 있음이 감사하다.

  



 

 청년 시절부터 해외여행에 관심이 많아서 배낭여행에 대한 책을 읽고 꿈을 꾸었다. 단순히 선망하는 것으로 그쳤지 현실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때는 돈도 떠날 용기도 없었기에. 일을 하면서는 시간이 없었고 가끔 가까운 국내 여행만 갈 뿐이었다.


  휴직을 하면서 해외여행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떠난 첫 여행지는 일본이었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참 좋았고 그다음으로는 베트남에 다녀왔다. 해외여행에 첫 발을 디디고 나니 유럽도 가고 싶고,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았다. 시작이 힘들지 그다음은 어렵지 않다. 다만, 눈치가 보일 뿐이다.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 준비만 잘하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어를 잘하면 좋겠지만 기본적인 영어 실력으로도 여행은 가능하다.


  남편이 여행을 좋아하면 온 가족이 함께 여행을 떠났겠지만, 남편은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돈을 싸주면서 가라고 해도 해외는 안 가겠다, 나중에 아이들이 커서 아빠를 모시고 가면 따라가겠다고 선언한 남편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과 혹은 친구, 언니, 가끔은 혼자 여행을 간다. 그렇게 해외로 떠난 것이 횟수로는 20회,  25개국 70여 도시 정도 되니 부지런히 다닌 편이다. 아직 못 가본 곳이 너무 많고, 가더라도 패키지로 가거나 짧은 자유여행으로 가서 다시 가고 싶은 곳도 무척 많다.

  내가 방학을 기다리는 이유도, 출근하기 싫고 몸이 아프고 힘들어도 꿋꿋이 버티며 일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여행이다. 여행은 나를 살아있게 하고 꿈꾸게 한다. 여행이 있는 한, 아직 내 인생은 설렘이 가득한 청춘이다. 나는 오늘도 떠남을,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을 꿈꾼다.




 #에세이    #휴직과복직    #여행의의미  #워라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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