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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다 Feb 24. 2023

혼자 천천히 걷기

나의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예전에 '걷는 사람 하정우'라는 책을 읽고 그가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국토대장정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시작한 걷기. 한강 강변을 따라 걷기도 하고 그가 좋아하는 하와이에서 종횡무진 걸어 다녔던 그는 내 머릿속에 젊은 청년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해가 지기 직전 매직 아워에 걷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였는데, 마치 그 모습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감동적으로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나의 닉네임 류다(溜达)는 중국어로 '산책하다, 어슬렁거리다'라는 뜻이다. 중국어는 하나도 모르지만, 어쩌다 알게 된 이 말이 '산책하다'라는 뜻이라는 걸 알게 된 후 큰 고민 없이 닉네임으로 정했다. 어슬렁 어슬렁, 서두를 것 없이 천천히 산책하는 사람. 


  건강을 위한 걷기라면 좀 더 빨리 걸어야 되겠지만, 그렇게 하지도 못한다. 걷기를 생활화하는 어르신들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나를 앞질러간다. 마음으로는 파워워킹하고 싶지만, 흐느적거릴 때가 많다. 대회 나갈 것도 아닌데 속도에 조급해하지 말고 땅을 내딛는 걸음걸음,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주변의 풍경, 지저귀는 새소리와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의 손길을 느끼며 자신의 페이스대로 걷는 것,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걷기이다. 


  걷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내가 매일 만보 걷기를 하거나 일주일에 2-3번 이상 걷는 것도 아니다. 한때는 살을 빼기 위해서 열심히 걷기를 실천한 적도 있었지만, 게으름의 소치로 최근엔 일주일에 한두 번 겨우 걸을 정도이다. 취미라고 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굳이 '취미'는 빈도가 아니라 마음의 기울어짐 정도라고 내 마음대로 정의 내려본다.


  칸트처럼 오후 3시에 정해진 경로를 걷는 것보다 나가고 싶은 시간에 새로운 길을 탐험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여행을 즐겨 하는지도 모르겠다. 낯선 땅의 낯선 길을 걷노라면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살아있다는 것을 이보다 확실히 느낄 때가 잘 없다. 오후의 산책도 좋지만 밤의 산책이나 가끔은 비 오는 날의 산책을 즐긴다. 얼마 전에는 저녁에 걸으러 나가는데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챙겨서 버스를 탔다. 뭔가 가슴이 답답해서 새로운 길을 걷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침 야경을 보려고 생각해둔 곳이 있었다. 대나무 숲길이었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공원의 대나무 숲길을 혼자 걸었다. 조명은 있었으나 조금 어두웠다. 그 시간, 그 날씨에 강변의 대나무숲을  혼자 걷고 있노라니 내가 제정신이 아닌 사람같이 생각되기도 했다. 조금 무서웠지만 내가 사는 도시의 길이니 가능한 것이었겠지. 


  내가 유일하게 주저하게 되는 길은 인적이 드문 산길을 혼자 걷는 것이다. 무릎 관절도 안 좋고 체력이 약한 편이라 산을 잘 타지는 않는데, 가끔 등산이 하고 싶어진다. 비교적 높지 않은 산을 택해서 가는데 같이 갈 사람이 없을 때가 많다. 거의 즉흥적으로 가게 되고, 나와 보조를 맞추어 천천히 걷는 사람이 잘 없기에 혼자서 가게 되는데, 사람이 하나도 없는 산길을 혼자 걷다 보면 와락 겁이 날 때가 있다. 갑자기 멧돼지나 뱀이 튀어나오면 어떡하나, 영화에 나오는 사이코패스가 나타나면 어떡하지, 가다가 다리를 삐면... 등등 온갖 시나리오가 뇌리를 스친다. 갈만하다 싶으면 가고 아니면 돌아 내려온다. 무모하게 용감함을 자랑하기엔 나는 너무 소심한가 보다.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고 있다. 걷기에 좋은 날씨다. 코끝을 스치는 바람에도 봄의 속삭임이 느껴진다. 나는 오늘도 가보지 않은 길을 혼자 걸었다. 그 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따뜻한 햇살이 부드럽게 나를 감싸 안았다. 


#나의취미는걷기   #나는걷는다   #직립보행인간   #새로운길을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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