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타고난 고기 사랑

고기가 좋아

by 류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막내는 크면 고깃집에 시집보내야겠다고. 어릴 때는 입이 짧아 마음에 드는 반찬이 나오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으려고 해서 끼니때 엄마와 실랑이를 했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회색 줄무늬가 있는 동그란 포마이카 밥상 앞에서 술래잡기를 하던 엄마와 나.


종갓집 장남이었던 아버지는 시골에서도 귀하게 자라 소고기만 드셨다. 돼지고기를 싫어하시는 아버지 때문에 우리는 스무 살이 된 이후에야 처음으로 돼지고기를 맛볼 수 있었다. 요리를 잘하시는 엄마는 손만두를 빚을 때도 잡채를 만들 때도 다 소고기를 넣어 만드셨다. 소고기 중에서도 나는 특히 불고기를 좋아했는데,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상 자주 먹을 수 없어서 아쉬웠다. 가끔 불고기가 밥상에 올라올 때에도 온 가족이 배불리 먹을 정도로 양이 많지 않았다. 부모님과 아이 넷, 여섯 식구가 먹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엄마는 늘 우리에게 양보하며 남는 것만 드셨다. 불고기가 입에 잘 맞았던 나는 고기 한 점 더 집어먹고자 아버지 눈치를 살피곤 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너그러운 편이 아니라, 내가 고기만 먹는다고 자주 야단을 치셨다.


엄마가 즐겨 쓰시던 까만 프라이팬에서 조리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불고기를 식탁에 올리면 수라상을 받은 듯 마음이 넉넉해졌다. 내가 싫어하는 다른 반찬은 먹지 않고, 오직 갓 지은 흰 쌀밥과 불고기만 배불리 맘껏 먹어봤으면 하고 꿈꾸기도 했다. 그나마 얼굴 예쁘고 천진난만한 막내딸이라 더 많이 얻어먹지 않았을까. 아버지는 나와 젓가락 싸움을 하다가 막내딸을 고깃집에 시집보내야겠다고 성급하게 결정을 내리셨다. 하지만, 나는 늙도록 독신주의를 고집하다가 고깃집과는 영 상관이 없는 떡방앗간 며느리가 되었으니 참 아쉽다.


결혼 후 친정엄마는 우리가 갈 때마다 늘 불고기를 해주셨다. 하지만, 이미 나이가 들어 소화능력도 떨어지고 불고기가 더 이상 귀한 음식이 아니게 되니 어릴 때 그 맛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심지어 불고기 좀 그만하라고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몇 년 전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니 누구도 나를 위해 좋은 불고기감을 사서 미리 양념에 재우고 온 집안에 고기 냄새를 풍기며 불고기를 구워주지 않는다. 다만 아이를 위해 고기를 굽는 내가 있을 뿐, 누구에게도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중년의 아줌마는 그제서야 불고기에 깃든 엄마의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식구도 많고 소고기는 비싸니까 자주 먹을 수 없어 엄마는 종종 닭국을 끓이셨다. 요즘 말로 하면 닭백숙이나 닭곰탕이라 할 수 있겠는데, 식구들이 넉넉히 먹을 수 있도록 물을 많이 붓고 닭 한 마리를 푹 고았다. 추억 속의 닭국은 부드러운 살코기나 닭을 우려낸 그 국물이 요즘 먹는 닭백숙과는 정말 달랐다. 기름이 둥둥 뜬 뽀얀 국물에 굵은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추고 밥을 말면서 숟가락으로 그릇을 휘휘 저어 보면 하얀 닭의 살점은 그닥 많지 않았다. 그래도 국물이 맛있었기에 엄마가 닭국을 끓인 날은 밥을 많이 먹었다. 잡곡 혼식을 부르짖던 시대였으나 아버지가 쌀밥을 좋아하셨고 시골에서 농사지은 쌀을 보내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맛있는 쌀밥을 닭국에 말아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닭과 관련하여 또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할머니 댁에서 제사를 지냈지만, 가끔 작은할머니 댁의 제사에 갈 때가 있었다. 작은집 제사와 우리 집 제사는 음식이 좀 달랐다. 그날 통째로 익힌 커다란 닭백숙을 발견한 오빠와 나는 정신줄 놓고 둘이서 그 야들야들한 살을 다 발라 먹고 뼈만 남았다는 일화가 한동안 이씨 집안에 떠돌았다. 한참 지나서도 작은 할머니는 우리를 만나면 '그 때 너희 둘이 대단했었지' 하며 웃으실 정도였으니까. 아마 큰언니와 작은언니도 우리처럼 먹고 싶었으나 체면 차리느라 못 먹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먹는 데는 남 눈치 보면 손해라니까.


내가 지금 제일 사랑하는 육류가 된 치킨을 처음 먹었던 기억도 어렴풋이 난다. 가끔 아버지가 월급날이나 얼큰하게 술을 걸치고 사 가지고 오시던 식은 치킨. 치킨집이 잘 없을 때여서 그랬는지 갈색 종이봉투에 담긴 치킨 한 마리는 얼마나 고소하고 맛있던지 맛의 신세계였다. 엄하기만 하셨던 아버지였으나 술에 취해 집에 올 때는 항상 먹을 것이 손에 들려있었다. 가장 자주 사 오시는 것은 국화빵이었는데, 큰길에서 집까지 오느라 온기는 없어지고 한 뭉치가 되어 눅눅해졌지만 먹을 게 있다는 게 그저 좋았다.


이렇게 가뭄에 콩 나듯이 소고기, 가끔 닭고기만 구경하던 내가 처음으로 삼겹살과 목살의 맛을 알게 된 건 대학에 가서였다. 고기는 비싸더라도 질 좋은 고기를 고집하던 엄마는 비계가 많이 섞이거나 질긴 고기는 잘 사오지 않으셨다. 물론 돼지고기가 들어간 김치찌개도 먹어본 적이 없었다. 좁은 집에서 벗어나 세상에 나가 처음 만난 삼겹살은 문화적 충격이었다.


‘어쩌면 저렇게 비계가 많은 고기를 먹을 수 있지? 무슨 고무 같아.’


하지만, 삼겹살과 달리 돼지 목살은 정말로 맛있었다. 돼지 목살의 맛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서른이 넘어서 다니기 시작한 성당의 수련회에서였다. 목살을 잘못 사면 퍽퍽할 만도 한데 질 좋은 목살을 구입한 덕분인지 소고기인 줄 착각할 정도로 맛있게 먹었다. 싱싱한 상추에 달큰한 쌈장을 올리고 갓 구운 목살을 싸서 먹는 그 맛! 그 후로도 그날의 돼지 목살만큼 맛있는 목살을 먹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마 돼지고기도 소고기만큼 맛있을 수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삼겹살의 맛에 눈 뜨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였다. 지리산 인근 지역으로 발령받아서 회식으로 삼겹살을 많이 먹기도 했고, 무엇보다 삼겹살을 사랑하는 남편을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 서민적인 음식을 좋아하고 노포 맛집을 사랑하는 남편. 신선한 지리산 흑돼지 삼겹살은 잡내 없이 고소해서 대구에서 온 친구들도 그 맛에 반해 삼겹살을 먹으러 일부러 원정을 올 정도였다. 잘 익은 김치와 통통한 콩나물무침과 함께 솥뚜껑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삼겹살을 보면 소고기를 좋아하는 나도 군침이 꿀꺽 넘어가기 마련이다. 아직도 남편은 외식을 하자면 무조건 삼겹살을 외친다.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 썰고 싶은 마누라 속도 모르고.


"여보, 나 소고기 먹고 자란 여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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