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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다 Apr 02. 2023

나에게 시간이 더 많았다면





나에게 시간이 더 많았다면 제목만 써놓은 50편의 글을 완성했을 것이다.

그리고 쓰고 싶었던 해(年) 지난 여행의 기록들을 들추어 하루에 몇 꼭지씩 써서 다 비워냈을 것이다.

그러면 조회 수는 오르고 글을 부지런히 써냈다는 만족감에 내 마음은 뿌듯했을 것이다.



나에게 시간이 더 많았다면 옷장에 차고 넘치는 오래된 옷과 가방들을 예전에 정리했을 것이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는다면 책장에 가득 차고도 바닥에까지 널려있는 책들을 일부는 비우고, 잘 찾을 수 있도록 도서관 책처럼 분류해서 정리했을 것이다.

뒹구는 먼지와 오래된 책 속에서 먼지 다듬이와 책벌레는 자신의 자취를 남기지 않았겠지.

그리고 옷장 문과 팬트리를 열 때마다 깨끗하게 정리된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나에게 조금 더 시간이 있었다면 해야 할 일들을 미루지 않고 뚝딱 해치워서 두 발 뻗고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었을 것이다.

아이에게 짜증을 내지 않고 좀 더 다정하게 말을 건네고, 원하는 대로 매일 새로운 음식을 차려냈을지도 모른다.

아이의 운동화를 빨고 흰 셔츠를 다림질하며 의외의 용돈도 척 건네며 기분 좋게 만들었겠지.


몇 년째 말로만 하던 그림 노트를 꺼내어 스케치를 하고 색칠을 했을 것이고, 피아노를 못 치면서도 '짐노페디' 한 곡은 마스터했을 것이며, 침대 옆의 쌓인 책 열몇 권은 이미 다 읽었을 것이다.



매 주말 동안 나는 그토록 바빠서 시간이 하나도 없었던가.

지난 주말에는 세탁기 3번, 건조기 2번 돌리고 빨래 널고 아이들 네 번의 끼니를 챙겼다. 청소기를 대충 밀고 벚꽃을 보러 두 번 산책했다. 영화와 OTT 드라마를 보고 맥주를 마시고 친구와 언니에게 전화해 하소연을 하느라 도통 짬이 안 났다. 


퇴직했다면, 혹은 전업주부라면 나는 벌써 책 몇 권 분량의 글을 쓰고 수많은 책들을 읽었을 것이다.

실제로 휴직했을 때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위로는 달콤하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나를 위로한다.

정말 시간만 있었다면!


주어진 시간을 대충대충 쓰면서 시간을 핑계로 자신을 합리화하는 인간이여.

나와 같은 사람이 나 하나는 아니기에, 위대한 작가는 그토록 희귀한 것이 아니겠는가.



#끼적임   #모든사람에게재능과시간이주어진다면  #시간은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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