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를 만든 건
꼬장꼬장한 아버지의 지독한 잔소리
일요일이면 아침 7시부터 깨워 청소를 시키셨지.
결혼하지 않고 빌붙어 사는 자식들 때문에 골병든다던 늙은 아버지의 한숨 소리.
지금의 나를 만든 건 어머니의 한결같은 집밥
어린 나에게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고 따라다니던 엄마
병들었을 때도 머리 위로 큰 하트를 그리며 배웅을 하던 엄마의 가녀린 두 팔.
지금의 나를 만든 건
비닐봉지 안의 튀김 오뎅과 매콤한 떡볶이 한 트럭
달콤한 자판기 커피와 쓰디쓴 커피잔이 산처럼 쌓여 피 속을 탁류처럼 흐르네.
지금의 나를 만든 건
매일신문의 여행 특집 기사와
도서관의 책 몇 줄
세로줄 글씨의 작은 삼중당 문고 책 몇 권
레코드 가게 언니의 질타
그리고 다정했던 우리 언니의 흰머리
벽돌같이 무거웠던 서른넷의 책가방
푸른 새벽녘 발걸음
그 언저리 누군가의 기도
버스 안에서 남몰래 흘렸던 뜨거운 눈물
어두운 지리산 자락, 자동차 안에서의 첫 키스
자꾸만 자신의 운명을 어두운 쪽으로 성급하게 몰아가던 젊음의 몽매함.
행복은 늘 저만치서 유혹하듯 손짓하고 있었지.
지금의 나를 만든 건
내가 아닌,
이 모든 순간을 섞어 만든 혼합 주스.
실수도 때론 위대한 창조가 되고
후회도 때론 인생의 묘미가 된다.
# 한 줄의 글로 시작된 습작 詩는 단어의 나열형으로 구상되다가 조금씩 살을 덧붙이면서 산으로 가버렸다.
에세이로 쓰기 적당하지 않은 것은 내 멋대로 시로 써본다.
시가 더 어려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가끔 입 안에서 시로 맴도는 말들이 있다.
#습작시 #취미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