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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다 Jun 29. 2023

유월의 산책




  점점 더 멀어져 간다. 건강한 돼지가 되고자 하는 꿈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배만 볼록 튀어나온 오겹살 금복주가 되어 비실거리고 있다. 체력은 떨어져 매일 여기가 아프네, 저기가 아프네 골골거리며 밥만 먹으면 드러눕기 일쑤였다. 아니면 앉아서 컴퓨터를 오래 하니 점점 허리도 안 좋아진다. 나이를 먹을수록 건강관리의 필요성을 체감하게 되고, 낡은 기계처럼 남은 생애 고장 안 나고 몸을 쓰려면 적당히 운동도 해야 되고, 먹거리도 신경 써서 챙겨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는 있다.


  원래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보니 필요성만으로 무거운 몸을 움직이기는 힘들다. 운동을 할라치면 어쩌면 그렇게 오만 가지 변명이 생기는지, 늘 날씨가 좋지 않거나 너무 덥고 너무 피곤하고 아이들 챙겨야 되고 등등 갖가지 이유가 운동과 나 사이를 더 멀어지게 한다.

  몇 해 동안은 겁이 많아 발전이 없는 수영에 오기가 발동하여 배웠다 말았다 열심을 떨었다. 그다음에는 다이어트한다고 일주일에 3번 이상 걷기를 했다. 파워워킹은 아니었지만 여유롭게 걸어도 안 걷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산책 정도야 뭐 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마는, 가벼운 걷기라도 꾸준히 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오래간만에 산책을 하러 나섰다. 동네 산책을 하기 전에 이렇게 여러 번 각오를 다져야 하다니 우스운 일이 아닌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면 누가 하지 말라고 해도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습관이 되도록 루틴을 만들어야 하는데, 습관이 되었다고 생각했던 일도 바쁜 일상에 쫓기다 보면 금세 무너져 버린다. 산책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장마가 예고되어 계속 비 소식이 있으니 비 오기 전에 좀 걷고 싶었다. 2주째 주말에 집에만 있어서 좀이 쑤시던 차였다. 오랜만에 강변을 따라 산책하노라니 비슷한 듯 조금씩 달라진 풍경도 흥미롭고 주변 식물도 좀 더 유심히 관찰하게 된다. 한창 열심히 걷던 시절만큼 멀리까지 걷지는 못했지만 땅을 박차고 걷고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유월의 강변에는 세(勢)는 꺾였으나 건재함을 과시하며 노란 군무를 선보이는 금계국 덕분에 환하다. 6월 말이 되니 금계국의 꽃이 시들고 씨앗이 여물었으나 늦게 핀 꽃인 듯 아직 낭창하게 피어있는 꽃들이 제법 많았다. 언젠가 금계국의 씨를 채종 해가던 사람을 본 곳이 여기였던가. 금계국은 번식력이 강해서 토종 식물을 밀어내는 외래종이라고 하는데, 한때 많이 볼 수 있었던 루드베키아보다 요즘은 더 흔히 볼 수 있는 꽃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봐와서 낯익은 개망초도 여전히 군락을 이루며 피어 있었다. 예전에는 몰랐다. 개망초도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꽃은 그대로인데 보는 눈이 바뀌었구나. 누군가는 계란꽃이라고, 이름을 몰라서 바보꽃이라고 불렀던 개망초. 작고 순수하지만 생명력 강한 이 꽃에 왜 '개망초'라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 붙었을까 찾아보니 이 또한 외래종이었다. 순수 야생초인 줄 알았는데 헛다리 짚었다. 빈 공터마다 흔히 볼 수 있는 풀이나 훤칠한 키에 해맑은 얼굴은 아름답다. 외래종이 토종을 제치고 번식하는 것과 괘를 같이하는 것인지 한국인의 외모도 점차 서구화되고 있다. 서구적인 이목구비와 두상, 골격까지 변하여 몇십 년 전의 모습과는 다르다. 땅에서 나는 식물과 온갖 먹거리가 달라지니 그 땅에서 자란 것을 먹고 자란 사람들의 모습도 변하는 것일까.



  분홍 토끼풀도 시들고 있었지만 아직 불그스름하게 퍼져있고, 이름 모를 솜털 같은 풀도 흔히 볼 수 있다. 작은 솜방망이같이 생긴 풀인데 번쩍이는 비늘 같은 풀이 자라면 민들레 홀씨처럼 허옇게 변하는 것 같았다. 이름이 궁금해 렌즈로 이미지 검색해 보니 강아지풀이라 나온다. 이런 엉터리 같으니라고. 과학이 발전했네 뭐라 해도 이미지 검색은 아직 갈 길이 멀었다.


  화려한 주황색 원추리꽃도 많이 보이고 오다 보니 연보라색 비비추 꽃도 풍성하다. 이쪽에 원래 비비추가 이렇게 많았던가, 올해 새로 심은 건가 궁금해하며 발길을 서둔다.



  오늘따라 까치들이 바닥에 앉아 모이를 쪼는 모습이 눈에 많이 띈다. 비가 내리기 전에 미리 비축해 두려는 것일까. 사람이 가까이 가도 날아가지 않고 자기 일에 열심이다. 그러다 사진을 찍는다고 소리를 냈더니 일부는 쌩하니 날아가 버린다. 푸른 연미복을 입은 모습이 지휘자 같다. 오늘의 지휘는 까치, 누구에게 반가운 소식을 전해줄까 했더니 울지도 않고 내내 먹이만 쪼고 있다.


  어린 메타세쿼이아도 제법 자랐고 버드나무는 강물에 멱을 감으려는 듯 살짝 허리를 숙이고 있다. 우리 어린 시절에 많이 보이던 송충이는 어디로 갔을까. 학교 가는 길에 나무에서 떨어져 꿈틀거리는 송충이를 보노라면 내 어깨에 떨어지기라도 한 듯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기 바빴는데, 이제는 잘 보이지도 않는 송충이가 괜스레 생각이 난다.



  초록색을 좋아하지만, 초록만 있다면 무슨 재미일까. 더러 꽃이 섞여 있어야 더 아름답고 산책할 맛도 난다. 6월 말 강변의 풍경은 아름답다고 하기에는 다소 평이하다. 꿈꾸듯 아름다웠던 벚꽃의 계절을 한참 지나면 장미가, 장미가 지면 수국이 피고 꽃들은 계절을 알려주듯 피고 지고 다음 타자에게 바통을 넘겨준다. 어렸을 때는 무관심했던 자연의 변화가 자꾸만 눈과 마음에 들어오는 것을 보면 나이가 들어 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때가 가까워 오나 보다.



  곧 비가 올 것처럼 습한 대기 속에 하루살이는 떼를 이루어 부유하고 있다. 저들은 알고 있을까. 내일이 없다는 것을. 사람의 삶도 길어 보이지만, 자연과 우주가 이루는 세계 속에서는 찰나일 뿐인 것을. 오늘 나를 괴롭히는 고민과 괴로움도 무겁지만 어느 순간 가벼워질 것을 기억하자.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는 것 같아 발걸음을 서둔다. 바깥에 빨래를 널어놓은 것도 아닌데 왜 이리 허둥대는지. 이 또한 평소의 습관이겠지. 집에 가면 마라톤이라도 하고 난 사람처럼 생색을 내며 샤워를 하고 시원한 맥주캔을 뜯을지도 모르겠다. 어디서 맥주캔 따는 경쾌한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운동했으니까 괜찮다며 맛있는 음식을 찾을 것이다. 시험을 앞둔 아이들에게는 어떤 음식을 해줄까 고민하며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것 봐. 비가 더 많이 내리기 시작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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