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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다 Jul 12. 2023

내가 사는 살림

살림이 힘들어도 기본은 해야지 어떡해




  오늘도 칼같이 퇴근해서 집으로 오면서 아파트 앞에 호떡 트럭이 있는 것을 보았다. 얼마 전 호떡 먹고 싶다던 아이 생각에 호떡을 사고 시원한 아이스크림도 몇 개 샀다. 퇴근하면서 동네 마트를 종종 들리는 것도 항상 내 일이다. 남편은 신혼 이후로 점점 장 보기를 꺼려했으며 장 보기는 언젠가부터 대부분 나의 담당으로 넘어와 버렸다. 간단히 목을 축이고 몹시 피곤할 때는 누워서 쉬기도 하지만, 오늘은 남편이 술 약속이 있어서 저녁 준비는 혼자 해야 했다.


  결혼 18년 차 정도 되면 역할 구분이 어느 정도 정해진다.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서로 합의점을 찾기까지 오랜 기간의 다툼이 있었다. 그나마 갱년기 전후로 나의 요리에 대한 열정이 많이 식으며 평일의 저녁식사 준비는 좀 더 일찍 퇴근하는 남편이 맡아서 하는 날이 점점 늘어갔다.

오늘은 간단히 남은 반찬을 이용한 볶음밥 요리로 메뉴를 정하며 세탁기에 빨래를 넣는다.




  흔히 여자들의 전속 용어인 것만 같이, 현재도 여자들이 더 자주 사용하는 '살림'에는 어떤 뜻이 있을까.  



    살  림
1. 한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일
2. 살아가는 형편이나 정도
3. 집안에서 주로 쓰는 세간


 두 번째는 경제적인 면을 이르는 것이고, 세 번째는 집에서 사용하는 살림살이를 얘기하는 것이라 일단 제쳐두고, 첫 번째를 살펴보기로 하자. 한 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일이라니, 너무 광범위하지 않은가. 이는 의식주에 관련되는 집안일에 그치지 않는다.


살뜰하게 집안일을 잘 돌보고 식구들 잘 챙기고 가계를 잘 경영하는 여자를 두고 '살림을 잘한다'라고 말한다. 집안이 깔끔하고 정리가 잘 되어있으며 김치나 밑반찬도 잘 만든다. 옷 손질이며 저축, 집안 대소사 챙기기, 남편 내조, 아이 교육에 이르기까지 '살림 잘하는 여자'라는 가치는 슈퍼우먼이 되도록 우리를 몰아세웠다.




  자기 자신을 보고 '이 정도면 살림 잘하는 거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보다 많은 여자들이 살림을 잘한다고 자신 있게 큰소리를 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살림을 의식주와 관련된 '집안일'이라는 협의의 뜻으로 사용할 때, 집안일이란 게 해도 해도 끝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림은 해도 표시가 안 나고 그렇다고 안 하면 더욱 표시가 나기에 적당히라도 해야만 하는 속성을 가진다. 치워놓고 나면 하루도 지나지 않아 금방 어지럽혀지는 마법 같은 도로아미타불을 아이가 어린 집에서는 대부분 매일같이 체감할 것이다.




  전업주부인 경우에는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이 어린이집이나 학교로 갈 정도로 컸으면 집에서 음악을 들으며 차를 마시거나 동네 아줌마들과 수다도 떨고 취미생활도 하면서 여유롭게 보낼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방학 한 달 동안 여유롭게 쉬고 싶은데 아침 먹고 나면 점심, 점심 먹고 나면 저녁 식사시간이 득달같이 찾아오고, 중간중간에 청소와 빨래, 기타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하고 보면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버린다. 그러니 옛날 드라마처럼 남편이 "집에서 뭐 했어? 그것도 안 하고." 이런 말을 하면 간이 큰 사람이다.




워킹맘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다. 같이 출근하는데 아이들 아침 준비에 행여 지각할까 봐 종종거리며 바삐 움직여야 한다. 우리 집만 그런가? 여자가 출근 준비에 시간이 더 걸리는데도 아무리 주장해도 고쳐지지 않는 부분이라 포기하고 내가 준비한다. 일하고 퇴근해서도 취미생활을 하러 어디 들리기도 힘들다. 아이들이 전화해서 저녁 메뉴를 묻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는 외식이나 배달을 시키기도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살림은 여자의 손길을 기다린다.


우리 어릴 적엔 2020년이 되면 가사 로봇이 생겨 모든 집안 일과 심부름을 해줄 줄 알았다. 여자를 편하게 해주는 가전제품이 생겨도 건조기 필터 청소나 로봇 청소기 사용 후 먼지통 청소와 걸레는 사람이 빨아야 한다. 마치 내가 가전제품의 시녀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젊은 부부의 경우 남편의 가사 참여도가 높다고 하나 '남자가 여자를 도와준다'라는 식의 개념으로 접근하고 완전히 평등하게 집안일을 하고 살림을 사는 경우가 있을까 모르겠다.





  분명히 말은 '살림'인데 왜 여자는 살림을 하느라 지치고 죽어나는 걸까. '살림을 놀이처럼'이라는 말을 들으면 나도 즐겁게 살림을 하고 싶은데 왜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일까.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은 일을 하면서 요리도 잘하고 집안 정리도 똑 소리 나게 하던데 설마 보이는 것과 실제는 다를지.


주부가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힘들고 지치는 살림 말고 몸 살림, 마음 살림의 건강과 여유가 넘치는 삶을 꿈꾸어 본다. 아이들이 커서 독립하고 나면 그런 삶이 가능할까 싶지만 그때가 되면 건강이 따라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오랫동안 살림을 하느라 여자의 몸은 자신을 성의껏 돌보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스스로를 대접하고 나부터 사는 살림을 해야지. 

그래서 우리 집은 깨끗하지 않다.




얼마 전 둘째가 툭 던지듯 말했다.

  "엄마, 제발 정리 좀 해!"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도 정리는 하고 싶은데 늘 피곤하고 바쁘다. 갑자기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는 문구 덕후 둘째.

  "이번 방학 때 정리를 좀 해야겠어. 엄마, 같이 하자."

갑자기 방학이 다가오는 것이 두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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