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안다. 그 사람이 돈이 좀 있는 사람인지 없는 사람인지는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짧은 시간에도 은연중에 드러나는 것이다. 몸에 걸친 것으로, 타고 다니는 차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옷 잘 입고 잘 꾸미는 한국 사람들은 '있어 보이는' 스타일을 좋아한다. 쇼핑할 때도 같은 값이면 있어 보이는 것을 사려고 하고,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을 만날 때면 더욱 없어 보이지 않도록 외모에 신경을 쓰기도 한다.
여기서 '있다'는 것과 '있어 보인다'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있다'는 것은 '돈이 많다', '재력이 있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고, '있어 보인다'는 것은 실제로 그 사람이 부자든 가난하든지 상관없이 부유하고 세련되어 보이게 하고 다닌다는 말이다. 속칭 '부티난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고등학교 때 반에서 아주 예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자신의 외모가 뛰어나다는 것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고 외모를 돋보이게 하도록 옷에도 신경을 썼다. 교복 세대가 아니어서 비교적 자유롭게 옷을 입던 시절이었다. 패션에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빼어난 외모로 '있어' 보일 텐데, 그 친구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소풍 때 입고 갈 옷을 사기 위해 여러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러 다녔다. 그런 모습을 보면 예쁜 그녀가 졸지에 없어 보였다.
실제로 형편이 따라주지도 않으면서, '있어 보이기 위해' 가진 것 이상의 소비를 한다면 점점 사는 게 어려워져 반대로 없어 보이게 되지 않을까.
아는 사람 중에 실제로는 수십 억 재산이 있는데도 무척 오래된 좁은 아파트에 계속 살면서 옷도 할인매장에서 만원 짜리 티셔츠를 사 입고 몇 천원도 아끼는 사람이 있다. 때로는 초라해 보이고 자린고비처럼 여겨질 때도 있지만, 검소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기도 하다. 부모님이 시장에서 일하며 알뜰하게 절약하며 자녀를 길렀기에,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서 돈을 허투루 쓰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다. 보통 사람의 소비 습관은 식습관처럼 그 사람이 자란 가정환경과 관계가 깊다.
그렇게 말하는 나는 어느 쪽이냐면, 예상하셨겠지만 없어 보이는 편이다. 비싼 가방은 돈 낭비라고 생각하고 잘 사지 않으며, 저렴한 옷을 사도 오래 입는다. 가끔 언니에게 물려받아 입기도 한다. 뭔가 가꾸고 꾸미는 것은 몹시 귀찮다. 그러다 한 번씩 정신이 번쩍 들면 쇼핑을 하기도 한다. 요즘 학생들은 옷 잘 입는 선생님을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 때다. 나이도 들었는데 옷도 우중충하고 꾀죄죄하면 아이들이 학교 오기 싫어할까 봐 외모에 신경을 쓰는 척하는 것이다.
실제 이상으로 자신을 과포장하고 브랜딩 하는 시대에 어쩐지 조금 없어 보이는 나는 그래서 인기가 없나 보다.
옛날엔 휴대폰 가게에 가서 "제일 싼 거 주세요" 하면 안 봐도 교사라는 말이 있었다. 자가용도 교장 선생님이 타는 차보다 한 단계 낮은 차를 타고 대부분 국산 차를 몰았다. 요즘은 그런 것 없다. 학교 주차장에도 비싼 외제차가 많고 얼리 어답터인 교사도 많다. 다들 시집을 잘 갔거나 원래 집이 잘 사는지 있어 보인다.
생계형 교사인 나는 주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늘도 최저가를 찾는다.
그래도 휴대폰만은 최신 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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