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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다 Aug 21. 2023

육아는 적성에 맞지 않아서

애 보느니 밭 맨다고



아이를 위해선 그 무엇도 아깝지 않다는 어머니를 많이 만났다. 어린 아기를 돌보는 것이 때로 힘들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아이가 사랑스럽고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아이가 어릴 때 최대한 함께 있어 주기 위해 3년의 육아 휴직도 불사하고, 오히려 더 오래 옆에 있어주지 못해 안쓰러웠다는 그녀들.

현실적인 이유로 출근하게 되거나 육아휴직이 끝나 복직하게 되는 워킹맘은 아이를 두고 출근하는 것이 못내 가슴 아프고 일하면서도 아이가 눈에 밟혔다고 한다.



그래, 어쩌면 나도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일을 하면서 몇 번이나 아이의 사랑스러운 얼굴이 아른거리고 휴대폰의 사진을 꺼내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하루 종일 아이 얼굴만 보고 집에 있으면 미칠 것 같았다. 집안일하고 아이만 돌보며 산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답답했다. 그것은 아마 내가 시골에서 아이를 길러서 아이와 함께 갈만한 곳이 별로 없었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곳에 자리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드는데, 당시에는 이런 나의 감정이 부끄러웠고 고민스러웠다.


아이와 함께 하는 온전한 시간은 주말이나 방학만으로도 충분했다. 출산 휴가가 끝나고 몸은 힘들었지만 빨리 출근하고 싶었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진심으로 육아는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걸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친정집은 멀리 있었고 비교적 근거리에 계시는 시어머님은 다른 일은 해도 아이는 봐줄 수 없다고 하셨다. 다행히도 좋은 이모님을 소개받아 아이를 맡기고 출근을 할 수 있었다. 육아 경험이 많은 젊은 이모님은 엄마인 나보다 더 상냥하게 아이를 돌봐주어서, 때로는 엄마보다 이모를 더 좋아하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다.


술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는 남편은 누가 만나자고 하면 거절을 못 하는 사람이라, 퇴근 후 독박 육아를 할 때도 많았다. 친구들도 멀리 있고 마음으로 의지할 데가 없어 가슴이 아려오면 저녁이라도 아이를 업고 하염없이 걷다가 돌아왔다. 그런 모습을 본 어떤 이웃은 한때 나를 이상하게 봤었다고 한다. 어쩌면 나는 그때 우울증 초기였는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예쁜 건 예쁜 것이고, 몸과 마음이 힘든 것은 또 별개니까. 나이만 많았지 육아나 살림에 대해 아는 것도 없는데 이런 모든 것들이 생경하고 힘에 부쳤다.


내가 육아휴직을 한 것은 두 아이를 낳고 아이들이 조금 크면서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을 때였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이 힘들어 번아웃이 왔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아플 때는 편하게 집에 데리고 있을 수도 있고,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있는 시간에는 취미생활도 할 수 있어 활기를 되찾았다. 나중에는 1년이라는 육아휴직 기간이 길게 느껴지기도 한 걸 보면 나는 집에서 놀 팔자는 아닌가 보다.



지금까지 살면서 아이들에게 다정한 엄마가 되어주지 못한 것 같아 남모를 고민을 하고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남들에게 있는 모성이 내게는 몇 프로 부족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이러한 심리에는 남편이 공헌한 바도 있다. 남들은 아무 불평 없이 다 하는 것을 왜 혼자 투덜대면서 하느냐고 화를 내곤 했으니까. 자신의 엄마 세대와 아내를 비교하니 내가 형편없이 느껴졌을 것이다.


지금은 말할 수 있다. 남편도 철이 없었고, 나도 어렸다. 나이 많은 철부지. 우리 다 초보 부모였다. 부모에게서 받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오히려 불평하면서 커왔던지라 우리가 부모가 되면 그보다는 잘할 줄로 생각했던 것이다. 우리 아버지가 그렇게 별것도 아닌 것에 혼을 내고 잔소리를 하신 것이 삶에 지쳐서 그랬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우리 세대도 마찬가지다. 부모교육을 따로 받지도 않고 몇 권의 육아서와 인터넷 정보 등으로 아이를 키우고 쉽게 부모가 된다. 우리의 부모됨은 우리가 자란 가정환경에 많이 기인된다. 따뜻한 가정에서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가 다정한 부모가 될 확률은 더 높은 것이다.



하지만, 모성은 다정함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육아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모든 어미가 자식을 방임하는 것도 아니다. 모성이 부족하다고 자신을 힐책하는 모습에서 오히려 모성을 발견할 수 있다.

남들에게는 외계인같이 보이는 아기를 너무 예쁘지 않냐고 주변에 사진을 보여주고 자랑을 하는 모습에서, 곤히 자다가도 아이가 울면 젖을 주거나 달래주는 모습에서, 다음날 출근을 해야 되는데도 아이가 아프면 밤을 새우며 간호하는 모습에서 모성은 빛이 난다.


그렇게 아이 둘을 키웠다. 때로 작은 일에 화를 내고 짜증도 부리고 잔소리도 퍼붓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를 부모답지 않다고 질책하진 말자. 육아가 적성에 맞지 않더라도 이 세상 누구보다 우리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바로 엄마인 나일 테니까.




#모성애   #육아   #부족하지만내가니에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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