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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다 Aug 26. 2023

나이 든 특수교사의 넋두리

이 또한 지나가리라




먹고살기 참 힘들다고 생각되는 교육계 현실이다.

올해 들어 옮긴 학교에서 1학년 아이를 3명 맡게 되었다. 물론 그 아이들이 전부는 아니다. 학교생활이 처음인 1학년을 동시에 케어하기엔 힘에 부쳤다. 매일매일이 전쟁 같은 학년 초의 하루하루들.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고 있으면 교실에선 또 다른 아이들이 밀고 싸우고 난리다.


새로운 공간에서 적응하기가 힘든 것 같아 놀이시간에 운동장으로 데리고 갔다. 운동장에서도 친구끼리 시소도 같이 타고 어울려 놀면 좋으련만, 서로를 경쟁자로 여기는지 같이 놀려고 하지 않는다. 또래와의 놀이보다 어른의 돌봄에 더 익숙한 아이들이다. 지치지 않는 1학년과 같이 시소를 타다 보니 고관절 아래가 아파온다. 아프고 배겨서 일어나 두 팔로 푸시업을 하면서 아이가 탄 시소를 움직인다. 이것이 나의 근력운동인가. 이러다 오십견 오면 어떡하지.



한 아이에겐 가슴을 맞았고(다행히 타격은 크지 않았다) 한 아이는 화장실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는다. 도와주는 실무원이 없을 때 용변을 보니 뒤처리는 나의 몫. 기분이 안 좋은지 벽에 가서 쿵쿵 머리를 찧는가 하면 어떨 땐 바닥에 드러누워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땡깡을 부리는 아이도 있다. 지나가는 관리자나 학부모가 볼까 봐 괜히 창밖을 힐끔 쳐다보았다.


여러 가지 전략을 써 보지만 효과도 없고, 통제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스스로의 무능함이 느껴져 괴로웠다. 하루가 일주일처럼 느껴지면서 입에서 단내가 나는 것이 새 학교에서의 3-4월이다. 체력이 너무 달려서 퇴근하고 나면 바로 뻗어서 한숨 자고 일어나야 한다. 직장에서의 움직임만으로 5-6000보가 넘는 3월이 지나고 나니 서서히 서로를 알아간다. 조금씩 아이가 쓰는 비언어적 행동의 의미를 미루어 짐작하게 되고, 아이도 교사와 학교 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진다. 그렇다고 해도 항상 평화로울 수만은 없는 교실이다.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나의 직업이나 학생들에 대해 써보라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헌신적이고 훌륭한 특수교사도 아닌데, 하루살이처럼 겨우 살아가면서 교직생활에 대해 쓰기는 늘 부끄럽기만 했다. 가명을 쓴다고 해도 특수아동에 대해 쓴다는 것이 그 부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행여 엉뚱한 오해를 받을까 두렵기도 했다.

특수교육은 민원이 많은 분야고 의도와 다르게 해석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살아오면서 내 아이보다 내 학생들에게 훨씬 더 친절하게 대했지만, 사소한 말이나 작은 일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작금의 현실이다. 나중에 퇴직하고 나서 어쩌면 '내 인생의 아이들'에 대해 쓸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주변의 다른 특수교사들은 다들 성실하게 전문성을 발휘하는 것 같은데, 나는 갈수록 스스로의 부족함을 여실히 느끼게 된다. 손톱만큼 자라는 아이들이라지만, 오랜 시간의 지도에도 불구하고 어떨 때는 문제행동이 더 심해지는 것처럼 보일 때 더욱 그러하다. 결국 나는 교육이 아닌 단순 '보육'을 하고 있는 것일까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약한 모습을 학부모나 일반 교사들에게는 절대 내비칠 수 없다. 우리는 '전문가'니까.



올해가 역대급으로 힘들다고 투덜거렸지만, 어쩌면 몇 년 전에도 그러했고 크고 작은 일들로 늘 나는 힘들었을 것이다.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고 했던가.

어쩌면 방학이 있어서 그 어려움을 다 잊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만이런거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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