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많이 읽지도 않으면서 책을 좋아한다고 할 수 있을까. 최근 몇 년 동안 책과 많이 가까워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연간 평균 독서량은 30-40권에 불과하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 정도 읽는 게 어디냐고 위안을 하다가도, 내가 지향하는 것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독서량에 분발해야겠다고 다짐하는 편이다. 유튜브를 잘 보지도 않는데 시간은 누구에게 도둑맞은 느낌이고, 책 읽을 시간과 집중력은 늘 부족하다. 내 작은 공간에 자기 순서를 기다리며 쌓여있는 책들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저걸 언제 다 읽지.
최근에 구입한 책들이 꽤 많은데도 몇 장 읽지도 못하고 도서관에서 다른 흥미로운 책을 빌려볼 때도 많다. 어쩌면 북 인플루언서나 인스타의 북스타그램에 솔깃하여 이것 조금 저것 조금, 결국 완독은 요원한지도 모르겠다. 밀리 연간 구독도 하고 한동안 윌라로 오디오북도 들어봤지만 종이책을 읽는 것보다 더 완독률이 떨어진다. 출퇴근시간이 길지 않기도 하고, 전자매체에 대한 완고한 거부감과 종이책에 대한 선호 때문인지 아직 습관으로 정착하지 못하고 가끔 생각날 때만 찾는 뜨내기손님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나는 독서 자체를 즐긴다기보다는, 책을 읽으면서 좀 더 나은 내가 되어가고 있는 듯한 자기 만족감과 책 자체가 주는 느낌을 좋아하는 것 같다. 책이 가득한 공간이 주는 느낌을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바깥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이 안은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온전히 나로 머물 수 있는 곳. 꿈꾸는 바보를 위한 지적이고 안온한 보물상자 같은 공간. 거기다 잔잔한 음악과 차가 곁들여진 북카페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불행히도 내가 사는 곳은 지방의 소도시라 북카페가 별로 없다. 겨우 두 곳을 알고 있는데, 오후 5시까지 하는 게 고작이다. 거기다 한 곳은 주말엔 문을 열지도 않는다. 그래서 북카페에 대한 로망과는 달리 자주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책을 읽기 위해서라면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조용한 카페나 도서관에 가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어쩌면 밖에 나갈 필요 없이 집에 꽤 많은 책을 가지고 있으니 집을 북카페처럼 꾸미는 방법도 있을 것이나, 정리되지 않은 서가와 생활의 더깨가 쌓인 장소는 북카페와는 분위기가 너무 다르다.
우연히 시간이 되어서 다른 동네의 북카페에 가 보았다. 작은 곳이었지만, 작가 초청 북토크도 자주 열리는 곳이라 신선했다. 유명한 작가의 북토크에 참석하는 기분은 어떨지 새삼 궁금하기도 하다. 정말 좋아하는 작가를 만나면 무척 설레겠지? 내가 좋아하는 한국 작가는 누구일지 딱 꼬집어 얘기할 수 없는 것은 잠시 잊어버리자. 마음속 상상의 북카페에 몇몇 작가를 초대해 떨리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듣고 사인을 받는다. 작가의 필체가 궁금해진다.
북카페는 아니지만 기억에 남는 책이 있는 공간으로는 부산의 창비가 있다. 창작과 비평사에서 나온 책을 구입할 수도 있고, 무료로 볼 수 있는 책도 책꽂이에 가득 꽂혀있어서 적당한 자리에 가서 읽을 수도 있다. 엄선된 몇몇 작가의 작품세계를 전시해 놓은 작가의 공간도 있었고 인테리어마저 훌륭했다. 다만, 카페가 아니어서 음료를 즐기며 독서의 세계에 빠질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