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
무채색이었던 겨울이 차디찬 손으로 옷깃을 여미게 하더니 언젠가부터 따뜻한 햇볕과 부드러운 바람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간다. 아파트 화단에 동백꽃이 시들고 하얀 매화꽃이 피기 시작했다. 바쁜 3월이라 눈 깜짝할 사이에 고속촬영하듯 매화꽃이 기운을 잃고, 연노랑 산수유꽃이 축제처럼 톡톡 터지더니 어느새 절정을 지났다. 샛노란 개나리가 바통을 이어받아 만개하고, 우아한 목련이 함박웃음을 짓는다. 남쪽 지방에는 벚꽃도 어느새 꽃망울을 보이며 사람들을 유혹할 준비를 하고 있다.
자연의 시계는 이렇게 어김없이 봄을 맞이하는데, 나이 든 몸의 시계는 좀처럼 봄을 따라잡지 못하고 매일 피곤에 젖어 주말만 기다리고 살았다. '일하기 싫다, 일하기 싫다, 아침이 오는 것이 두려워' 하면서...
평일 아침은 늘 일어나기 힘들긴 하지만, 이처럼 아침이 괴롭긴 몇 년 만이던가. 힘든 시간을 보내며 자신의 무능력함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깨닫고 어쩔 수 없이 겸손해졌다.
그리하여 잠시 심연에서 벗어나고자 밤마다 인기 드라마나 영화에 심취하거나 블로그로 여행의 추억을 되새겼다. 이럴 땐 책과 활자는 얼마나 무력한가. 적어도 내게는 말이다. 어떤 사람은 책을 읽으면서 현실의 고통을 잊는데, 나는 그런 류의 사람은 되지 못한다. 최소한 영상을 보는 동안은 모든 것을 망각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누군가 영상이 대중에겐 마약 같은 것이라 하였는데, 예술적인 마약이라면 현실의 고달픔을 잊을 수 있는 건전한 몰입이 아닐까.
한겨울에는 결코 오지 않을 것 같았지만 올해도 마침내 봄이 오듯, 괴로운 시간도 낯섬이 조금씩 베일을 벗고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해지면서 조금은 감내할 수 있는 힘듦으로 바뀌어가는 중이다. 한숨 돌릴만하다 싶으면 또 현실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님을 확인시키듯 나를 물어뜯지만, 폭풍처럼 스쳐 지나갈 것임을 믿어보려고 한다. 내 안의 긴 어둠을 몰아내고 다시 일어나라고, 웅크리지 말고 기지개를 켜고 나오라고 밖에서 봄이 손짓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하든 봄은 마침내 오고야 만다고.
매화와 산수유, 목련과 개나리가 피어있는 길을 한없이 걸었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따뜻한 봄의 선물이다. 자연이 무상으로 베풀어주는 이 치유의 힘에 의지하여 마음의 위로를 얻는다.
그냥 걸었다.
아직 새 잎이 돋지 않은 메타세쿼이아는 묵묵히 굳건하게 제 갈 길을 가라고 응원한다. 때가 되면 메타세쿼이아에도 푸른 잎이 돋고 언제 헐벗었냐는 듯 무성한 잎을 자랑할 것이다.
살아 깨어나는 봄이 좋아 지천을 쏘다니고 들어와 다디단 잠에 빠져든다. 감사함에 글이 차오른다.
나를 감동시키는 건 자연.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하지만 내 마음을 늘 감동시키는 건 자연의 풍경이었다. 상처 주지 않는 어머니.
지금은 봄.
다시 봄.
봄의 선물을 누린다.